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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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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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기.png
본 문서는 日本을 다루는 문서입니다.

この文書は日本に関する文書でございます。
Sakura mon 2.jpg
만약 당신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공산당 짱깨, 다께시마를 불법점거하고 계속 사과 강요하는 춍들, 계속 핵실험해대고 미사일 날리는 공산당 춍들, 2차대전 때 주적이었던 코알라 고래충 섬양키(이)라면, 이 문서에서 탈출하십시오.
이 틀을 보고도 계속 남아있다가 이 문서에서 다루는 국가에게 살해당해도 디시위키에서는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모든걸 바쳐도 안아까울 자신들 머리를 쓰담쓰담해주는 천조국|, 자신들을 쓰다듬어주는 또다른 서양국가을(를) 좋아하는 사람일 경우, 이 문서에서 다루는 국가을(를) 찬양하십시오.
디시위키는 이 글을 보고 느끼는 기쁨을 함께 축하해주지 않습니다.


ㄴ 걱정되서 말하는건데 모든국가 혐오틀이 그나라 관점에서 쓰였듯이 이틀도 쪽국관점에서 쓴거지 필자는 절대 파오후 일뽕이 아니다.

독일 탈락은 쌤통이다.jpeg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망하는 것은 쌤통입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온갖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놈들입니다. 천벌을 받아 멸망해버려야 할 존재입니다.
마치 승부조작으로 이기려고만 발악하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학살 당한 것처럼 말이죠!
물론 이번엔 독일이 이기긴 했지만... 히밤!
세이콘짱.png 주의.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너무나도 이중적입니다.
대표적으로 김성근과 세이콘이 있다.
일본 국기.png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것은 사실 군대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서술하는 국가는 사실 군대인 척하는 유사집단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국기.png
독도는 일본땅.png 주의! 역사를 지좆대로 왜곡한 허위사실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절대로 이 내용을 맹신하지 마십시오.

100% 역사왜곡의 제왕인 일본극우새끼들이랑 중국나관중이랑 벨기에높으신 분들 같이 까야 할 놈의 빠돌이가 왜곡한 내용입니다.
실제 역사는 이와는 전~~~~~~혀 다른 내용임이 틀림없으니 믿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둠의 노사모.png 일본는(은) 사실 한국에게 깊은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일본는(은) 사실상 한국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존나 싫어한다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꼬우면 관심 끄던가 병신들아 ㅉㅉ

"일본는(은) 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는 것일까?"
어둠의 노사모.png 한국는(은) 사실 일본에게 깊은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한국는(은) 사실상 일본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존나 싫어한다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꼬우면 관심 끄던가 병신들아 ㅉㅉ

"한국는(은) 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일본을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는 것일까?"
어둠의 노사모.png 한국과 일본는(은) 사실 서로에게 깊은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는(은) 사실상 서로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존나 싫어한다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꼬우면 관심 끄던가 병신들아 ㅉㅉ

"한국과 일본는(은) 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서로을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는 것일까?"
Dannylee.png
주의! 이 문서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문서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공존합니다.
그 2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다크홈3.jpeg
흔드르라 이리야.gif !!!!
.
gmsemf.gif
헬조선 지옥불반도 국기.png 경고! 여기 있는 지역은 헬조선과 동급입니다!

해당 틀에 서술되는 곳은 디스토피아보단 그나마 낫지만 헬조선과 동등하거나 헬보딸에 준하는 국가를 다룹니다.
만약 으로 탈조선 있더라도 없으 하십.
Pauline+Baynes+Design+for+a+Poster+Map+of+Tolkiens+Middle+Earth+(1971).jpg 이 문서는 헬조선보다 낫지만 살기 애매한 곳을 다룹니다.

해당 항목에 서술되는 곳은 분명 헬조선보다 낫지만 유토피아보다 딸리는 곳을 다룹니다.
만약 이곳으로 탈조선을 하실 수 있으면 일단은 떠나십시오. 지만 방심시면 안됩니다.

ㄴ일본은 이 두개 사이인거같은데 혹시나해서 두개다넣었다. ㄴ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통은 준유토피아지만 지방 동네로 가면 헬조선급 후쿠시마같은 병신 동네는 디스토피아

아시아의 국가
북아시아 러시아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서아시아 레바논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아랍에미리트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예멘 오만 요르단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 조지아 카타르
쿠웨이트 키프로스 터키 팔레스타인 ·
남아시아 네팔 몰디브 방글라데시 부탄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 ·
동남아시아 동티모르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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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대한민국 몽골 일본 중국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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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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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5대 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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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 몽키밸리 중공 종북당 친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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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백 엄진근.png
일본 국기.png
일본의 지도.png
일본국
日本国
Japan
기본 정보
수도 도쿄 (사실상)
국가 입헌 군주제
대륙 아시아
면적 377,962㎢[1]
인구 126,958,472[2](2015.7 est.)
추가 정보
지도자 아키히토(천황)[3]
아베 신조(내각총리대신)
아소 다로(부총리)
GDP 549조 엔[4](2017 3Q est.)
건국 기원전 660년(민족신화)
1947년(일본국헌법 채택)
1952년(SF조약에 의한 GHQ 철수)
언어 일본어
민족 야마토 민족, 류큐 민족, 아이누 민족
종교 정교분리[5][6]
공식 홈페이지 일본국

개요

역사

일본의 역사
Circle Ainu.png
Circle Japanese Emperor.png
Circle Edo Shogunate.png
Circle JPN.gif
선사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
죠몬 시대(縄文時代)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고분 시대(古墳時代)
아스카 시대(飛鳥時代)
나라 시대(奈良時代)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카마쿠라 시대(鎌倉時代)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센고쿠 시대(戦国時代)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安土桃山時代)
에도 시대(江戸時代) 일본 제국(大日本帝国) 현대 일본(日本国)
세키가하라 전투 메이지 유신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군정기

주소


고대

선사시대 일본 열도에는 죠몬인들이 살고 있었다. 죠몬인들은 수렵, 채집과 조잡한 농업을 경제기반으로 하여 살아가던 종족이었다. 이후 북방계 야요이인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일본을 건국한 첫 천황인 진무 천황. 일본애들 말로는 150년 가까이 살고 95년 동안 제위했다는데 글쎄... 진실은 저 너머에...

기원전 7~8세기경 국가가 성립되었으며 이 때 최초로 천황(덴노)라는 것이 등장했다. 첫 덴노는 진무(神武) 덴노라고는 하지만 사실 일본 내에서도 일본의 첫 덴노로 알려져 있는 진무 덴노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말이 많다. 일본 역사학자 대다수도 10대 덴노인 스진 덴노(BC 148~AD 29 : 그나마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스진 덴노조차 180년을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게 일본의 고대사이다)로 보는 것이 주류이고, 1~9대 덴노는 이주갑인상등을 하기 위한 주작으로 보는 것이 대부분.

는 건 완벽한 개소리 of 개소리이고, 실제로 일본에서 천황(덴노)이 등장한 건 중국(당나라)으로부터 천황 칭호를 수입해서 본격적으로 쓴게 정설이다. 그 이전까지 일본에서는 닥치고 대왕(大王 - おおきみ, 오오키미)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ㄴ 알았으니까 출처좀. 개소리 of 개소리라고 할만큼 확신에 찬 반박을 한다면 출처 정도는 껌이겠지? 그럼 출처 내놔바바.

ㄴ동아시아 문명권에서 하늘의 '황제'라는 칭호가 처음 나온 국가가 중궈니 일본이 천황이란 칭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일본이 중궈애들 왕 칭호를 배껴썻다는걸 여실히 증명하는 팩트지

실제로 황제 칭호를 전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쓴 나라는 중국 진시황때부터이지 절대로 일본이 아님을 밝혀둔다.

문명 성립 시기만 보면 중국은 당연하고 한반도보다도 짧은 역사를 지녔지만 이에 대해서 이상한 자부심을 갖지 말도록하자. 기원전 4400년에 파라오가 출현한 이집트와 기원전 7000년 경부터 문명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이라크 지역)이 현대에 어떤지를 생각해보면 국가의 잘 나가고 못 나가고와 그 지역의 역사의 길이와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당장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미국의 역사가 워싱턴 때부터 겨우 240년이다.)

죠몬인들은 일본 열도에서 1만년 이상 주류종족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나, 기원전 4~3세기경에 한반도와 중국에서 넘어온 야요이인들에게 숫적, 기술적으로 압도당하여 주류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야요이인들은 일본 열도에 선진화된 기술들을 이식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쌀 농사와 청동기 등이 있다. 이같은 문명의 전파는 일본 열도에 농업을 기반으로 한 고대 부족국가가 형성될 환경을 조성하였다.

초기의 일본 역사는 큐슈 및 혼슈 서쪽에서 서서히 혼슈 동북부로 영향력을 넓혀간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왜국(倭國)은 이미 기원전 중국의 '한서'에서 그 국명이 등판하지만, 최초로 중국과 정식으로 국교를 맺은 일본의 왕국은 야마타이국이었다. 야마타이의 여왕인 히미코는 당시 중국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이었던 위(魏)나라의 천황인 조비에게 사절단을 보내 후한 대접을 받고 왜왕으로 책봉받았다. 이 야마타이국은 큐슈에 위치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큐슈 야마토론 떡밥의 주 소재가 됬으나, 지금은 혼슈의 키나이 지방에서 야마토가 출발했다는게 다수론이다.

키나이의 비옥한 평야를 기반으로 수립된 일본 최초의 고대국가인 야마토는 주변의 잡부족국가들을 쓸어담아 세력을 확장한 후, 지옥불반도의 백제와 친교관계를 맺고 긴밀한 동맹관계를 형성하였다. 우호적인 외교적 관계를 토대로 양국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백제로부터 대륙의 선진화된 문화를 전수받기에 이른다.

고대 헤이안의 도시구조

7세기 후반 일명 당나라 따라하기 유행의 영향을 받은 쇼토쿠 태자에 의해 다이카 개신이 단행되어 대거 수입한 중국의 제도를 기반으로 한 중앙집권국가가 완성된다. 당시 일본은 수차례 수도를 바꾸다 결국 오늘날의 쿄토인 헤이안(平安)에 안착하게 되었는데, 헤이안은 당시 일본의 권력이 집중된 정치도시로 리즈시절 인구가 약 20만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따라하기 운동은 헤이안 시대 일본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국뽕적인 조류인 국풍(國風)운동에 의해 사그러들고, 9세기 말 당나라에서 황소의 난과 안록사의 난이 일어나 중국 상황이 개막장이 되자 견수사, 견당사와 같은 견중국사절단 제도가 영구히 폐지됨으로 그 종지부를 찍게 된다.[7] 일본에서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축소됨으로 인해 그 반동으로 고유 문화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헤이안 시대는 일본 문화가 그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시기이다. 일본의 고유문자인 가나가 이 시기에 확립되었고,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인 '겐지 모노가타리'가 이 시대에 집필되었다.

헤이안 시대의 주역은 경쟁 가문들을 박살낸 후지와라 가문이었다. 후지와라 가문은 천황을 사실상의 바지사장으로 만들고, 중앙의 막강한 정치권력을 기반으로 전국에 '장원'이라 불리는 가문 사유지를 두고 이를 확장하였다.

이 장원제도는 일본이 대륙국가와 다른길을 걸어가는데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 장원들은 물리적 거리, 그리고 교통상의 문제로 인해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그 관리권이 위임되었고 장원을 위임경영하면서 부를 획득한 지방 유력자들이 호위무사를 고용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사무라이의 기원이 된다. 또한 일본은 중국의 제도를 카피하면서 중국의 고유 사회제도인 양천제(良賤制)를 도입했지만 장원제도의 영향으로 양천제(그리고 노비제도)가 일본의 인문환경에 맞지않아 폐기되었는데 이 또한 지방권력의 강화에 그 원인이 있다.

중세

일본 최초의 쇼군 미나모토 요리토모

국가의 중앙집권체제와 강력한 지방세력의 공존이라는 모순적인 권력구조 상황은 헤이안 시대 일본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심화시켰고, 결국 장원체제 하에서 발달한 무사 계층이 12세기에 왕과 중앙귀족을 나가리로 만들고 지들끼리 나라를 해쳐먹게 되었다. 일본의 권력을 차지한 무사들은 천황과 중앙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헤이안의 기존 조정을 폐지하지 않고 존속시키는대신 무사들을 축으로 하는 또 다른 군사정부를 수립하였는데 그 군사정부를 '막부'라고 부른다.

최초의 막부는 카마쿠라 막부로 미나모토 요리토모에 의해 설립되였다. 미나모토 가문은 절치부심 끝에 타이라 가문을 권력에서 밀어내고 일본의 실권자가 되었다. 그러나 카마쿠라 막부는 그 권력이 미약하였다. 카마쿠라 막부의 실질통치력이 미쳤던 지역은 일본 동부의 일부 지역들뿐이었고, 대부분의 지역은 사실상 막부의 통치권력 바깥에 있는 지역유지들의 소왕국들이었다. 결정적으로 13세기 몽골의 침략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카마쿠라 막부의 재정이 소진되어 쇠퇴해버렸다.

카마쿠라 막부의 세력 약화를 감지한 조정의 고다이고 천황이 아시카가 타카우지를 앞세워 막부에 황금죽창을 선사하여 이를 멸망시켰으나, 죽창질의 선봉장인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통수를 쳐서 결국 고다이고 천황은 카마쿠라 막부와 함께 사이좋게 망하게 된다. 결과에 승복할 수 없었던 고다이고 천황이 수도인 쿄토를 버리고 쿄토 남쪽의 요시노에 분조를 수립함에 따라 일본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조정이 둘로 나뉘게 되지만, 고다이고 천황의 분조인 남조는 얼마가지않아 아시카가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일본의 새로운 집권자가 된 아시카가 타카우지는 쿄토의 '무로마치'라는 금수저 동네에 막부를 차리는데, 이 막부가 '무로마치 막부'이다.

무로막치 막부는 일본 역대 막부들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정권에 속하는데, 이는 카마쿠라 막부를 창업한 미나모토 요리토모나 에도 막부를 창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달리 막부 설립자 아시카가 타카우지의 자체세력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력기반을 토대로 다른 지방충들에게 강제력을 동반한 영향력을 행사한 미나모토나 도쿠가와와는 달리 아시카가는 지방세력에 강제력을 행사할 능력이 종범이었기 때문에 지방세력과의 친밀도를 올리는 친목좆목질로 통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이 취약한 중앙권력 자체가 훗날 센고쿠 시대 도래의 원인이 되었다.

중국에서 명나라가 들어선 이래로 일본은 왜구문제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명나라가 조공무역제도를 도입함으로 인해 명나라와의 무역로가 막히는 사태가 일어난다. 중국의 이와 같은 조치로 인해 타격을 받은 일본의 무로마치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명나라에 조공을 하여 책봉까지 받고 감합무역을 하려고 굽신거렸으나 명나라의 일본 취급은 여전히 안습했고 중국에서 왜구활동은 지속되었다.

외교상황도 좋지 않았지만, 내부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상기한 대로 무로마치 막부의 권력구조는 매우 취약하였고 결국 오닌의 난이라 불리는 지방충들의 세력다툼을 막부가 중재하는데 실패하여 국가는 사실상의 무정부상태에 빠졌고 이로 인해 전국에서 다이묘들이 미쳐날뛰게 된다. 이 각지에서 소규모 다이묘들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였던 시대를 전국(戰國)시대, 일본어로 센고쿠 시대라고 부른다.

센고쿠 시대에 영지 내 군소세력들을 잘 수습하고 두각을 드러낸 다이묘로는 오다 노부나가, 타케다 신겐, 우에스기 켄신이 있었다. 하지만 타케다와 우에스기가 사이좋게 병걸려 뒤진 덕분에 라이벌이 사라진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하...ㄹ 뻔 했다. 하지만 심복이었던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혼노지에서 '통'수를 맞고 '통'구이가 되었고 일본의 통일은 노부나가의 밥상에 가장먼저 숟가락을 얹은 오다 노부나가의 심복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달성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저를 빠르게 얹기는 했지만 근본없는 똥수저 출신이었고, 라이벌인 은수저 출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다 노부나가의 빵셔틀 경력이 더 길다는 점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를 계승할 명분이 취약했었다. 실제로 도요토미가 노부나가가 남겨놓은 세력을 장악하자 동쪽의 도쿠가와는 딥빡했고 결국 양측은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인 오다 노부카츠와 팀먹었기 때문에 명분론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영지의 규모도 도요토미 직할령보다 도쿠가와의 직할령이 더 컸었고 실제로 도요토미 군과 도쿠가와 군이 맞붙은 전투에서는 도쿠가와 군이 우세를 점하였다. 하지만 오다 노부카츠가 단독으로 히데요시와 강화를 맺고 도쿠가와의 통수를 치는 트롤링을 선사하자 도쿠가와는 도요토미에 대항할 명분을 상실하고 이에 항복하였다.

이로써 최대의 라이벌을 격퇴한 도요토미는 최후의 반항세력인 시마즈 세력과 후 호죠 세력을 정리하여 일본을 완전통일하였다. 이에 만족하지 않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세력권을 일본 열도를 넘어 대륙까지 확장하고자 본인의 최측근 다이묘들을 앞세워 조선과 명 정벌을 시도하였으나 이에 실패하고 본인은 병사하였다.

히데요시가 죽자 도요토미 가문은 그 세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는데, 이는 무로막치 막부와 마찬가지로 도요토미의 통치기반이 취약했고 사실상 도요토미 정권은 히데요시 개인의 능력과 카리스마에 의해 유지됬던 것이기 때문이다. 기회를 엿보며 칼을 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가문의 통수를 세키가하라에서 멋드러지게 치고 일본 동부의 칸토 평야에 위치한 도시인 에도에 막부를 건설하였다.


근세

에도 성 복원모형

에도 막부는 이전 일본 군벌정권들에 비해 훨씬 더 안정적인 통치체제를 갖췄다. 우선 일본 영토의 약 1/4이 도쿠가와 가문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통치가문의 자체권력이 막강했을 뿐만이 아니라, 오랜 군벌통치의 전통과 경험에서 유래한 정교한 제도들이 등판했기 때문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산킨코타이 제도가 있었는데, 산킨코타이 제도는 지방충들의 세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막부거점도시인 에도의 경제력을 향상시키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수 있는 제도였다. 여하튼 이러한 안정적인 통치기반 하에 250년간 평화가 이어졌다. 그러나 18세기 중반부터 일본의 주력수출품이었던 미네랄이 고갈되고 이로 인해 나타난 사무라이 계층의 몰락문제나 기후변화로 인한 기근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막부의 위신은 추락하게 된다.

결국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을 개항시키기 위해[8] 군대를 끌고 강제로 문을 열어버리게 되자 천황파와 막부파의 내전을 거쳐 에도 막부는 망하고, 메이지 유신이 단행되어 드디어 천황이 다시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9]


근대

페리에 의한 개국으로 인해, 일본은 중화의 사대교린질서에서 벗어나 서양근대국제법질서로 편입하게 된다. 그 이후 메이지 유신을 통해 내부구조 개편을 성공적으로 단행, 적극적으로 근대화를 추구하게 된 일본이었지만 1868년 당시 일본은 삼류 후진농업국가에 불과했고 대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노무노무 많았다. 당시 일본엔 충분한 기술과 노하우, 그리고 자본이 축적되어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민간이 자체적으로 산업을 육성하기 힘들었고 이에 정부가 나서서 국영 산업을 육성하여 모범을 보인 후 국영기업들을 헐값에 (정부와 커넥션이 있는)기업가들에게 불하하는 방식으로 산업을 육성하였다. 또한 오오쿠보 도시미치를 비롯한 해외로 사절단을 대거 보내 구미국가의 기술과 제도를 배우고 들어왔다. 당시 일본의 근대화를 주도한 세력은 조슈번과 사츠마번 출신의 무사들이였다고 한다.

최초로 일본의 주력 수출품이 된 아이템은 실크였다. 1870년경 일본의 실크 생산량은 연 1000톤 수준이었지만, 40년 후에는 약 연 12,000톤을 생산하게 되면서 세계 1위 실크 수출국가가 된다. 일본의 상사들은 점차 영국과 미국 선사들을 따돌리고 대중국 무역에서 우위를 점해갔고, 산업의 쌀인 석탄생산량 증가도 연 두자릿수를 보이게 된다. 이와 같은 눈부신 국력의 신장을 근거로 일본 제국은 국제적인 세력권 다툼의 장에 뛰어들게 된다.

Japan-war icon.png
일본 제국의 전비지출
Finance-coin icon.png
전쟁 총 전비지출[10]
(A)
1년 세금수입[11]
(B)
A/B
청일전쟁 2억 3240만엔 1억 1843만엔
(1895년)
1.96
러일전쟁 18억 2629만엔 5억 3525만엔
(1905년)
3.41
1차대전 및
시베리아 출병
15억 5368만엔
만주사변 18억 8338만엔
2차대전[12] 2036억 3634만엔

류큐

류큐 왕국은 1609년 사츠마 번에 의해 복속된 이후로 줄곧 일본의 속국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류큐는 청나라의 속국이기도 하였다. 새로이 출범한 일본 제국은 류큐의 왕을 류큐의 다이묘로 격하시키고 보호국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에 청나라와의 외교문제가 발생하였으나, 대만 원주민에 의해 류큐 어민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일본 본국이 이에 시비를 틀고 대만에 출병하자 쓸데없는 외교문제를 더 만들고 싶지 않았던 청나라가 귀차니즘에 일본의 류큐지배를 용인해버린다. 결국 류큐를 둘러싸고 대결할 라이벌이 사라진일본 제국에 의해 류큐 왕실은 후작으로 봉해지고, 류큐 왕국은 폐지되어 오키나와 현이 된다.

조선

쇄국체제를 굳게 유지하던 중국과 일본은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그러나 조선_왕조는 중국과 일본의 개방에도 불구하고 쇄국정책을 유지했다. 당시 조선과 일본을 비교하면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반서양정책에 의해 쇄국화된 상태였고, 일본은 페리 제독에 의해 개방된 후 한창 근대화되고 있었다. 일본은 C급전함인 운요호를 보내 조선과 의도적으로 시비를 틀게 한 후 이를 빌미로 강화도 진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조선을 강제로 개항하였고, 강화도조약을 맺음으로서 조선을 자주지방인 독립국으로 만든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중국과의 불화가 심화되었다. 조선은 류큐와는 달리 청나라로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속국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조선이 자주지방이 된다는 뜻은, 사대교린질서의 청 속방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므로 청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조선을 잃은 것이다. 반면 일본도 조선을 일본의 세력권에 편입시켜야 일본 본토의 안보를 확신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중국과 일본의 대결은 필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임오군란이 일어났는데, 청은 사대교린질서에 입각해 덩저우에 주둔하고 있던 화이군 육영 3,000명을 조선으로 파견하였다. 청은 나약한 조선군대를 쉽게 진압하고, 대원군과 회담을 벌였는데, 회담을 벌이던 도중 우장칭은 대원군 납치계획을 완료하였고, 마젠종은 명령조로 사대교린질서를 들먹이며 대원군을 납치하게된다. 그리고 이후에 청이 조선을 보는 시각은 코메디스럽게도 근대 국제법질서에서 보는 종속국의 위치를 강요했다. 슈펠트 주청미국대사가 하도 사대교린같은 서양에 씨알도 안먹히는 개념을 조약에 삽입하지 말라해서 기존의 사대교린 질서가 아닌 근대 국제법질서에서 말하는 종속국(식민지)의 위치를 강요했던 것이다.

이후에 청불전쟁이 발발하자 청나라가 조선의 자국 주둔군 3000명 중 1500명을 차출해갔다. 이를 호기라고 생각한 일본은 조선의 개화파 일당을 사주하여 정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고종-민비세력의 카운터에 의해 조선의 개화파는 쫓겨나고 일본에도 그 불씨가 떨어져 일본 공사관이 반달당하는 사건을 겪게된다. 하지만 일본은 이 사건을 외교 테이블로 끌고가 조선으로부터 배상금을 뜯어내고 상시주둔군을 배치할 권리를 획득하는 등 단단히 호구를 잡는 한편, 조선에서 문제를 확장시키길 원치않던 청나라와도 텐진 조약을 체결해 중일간 대결모드는 소강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로부터 10년 후 조선에서 동학당이 대거 죽창을 들고 일어나자 버틸수가 없던 고종-민비정권이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고, 이에 일본도 텐진 조약에 의거하여 조선에 대규모 군세를 파병하였고 조선에 파병된 이들 양국군간 충돌이 일어나 결국 청일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이 전쟁에서 근대국가 일본은 전근대국가인 청나라를 원사이드로 쳐발랐다. 심지어 일본 해군과 전력이 엇비슷했던 청국 해군도 일본 해군에 대패하고 청나라의 주력전함 중 하나였던 진원함은 일본 해군에 나포되어 버렸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나라와 조선간의 주종관계를 청산시키고 청나라로부터 2억냥의 배상금과 청의 영토였던 대만, 요동반도, 팽호열도를 삥뜯었다. 이 중 요동반도는 중국에 눈독을 들이던 러시아가 칭구인 독일,프랑스를 꼬드겨 일본에 압력을 행사해 반강제적으로 중국에 반환시켰고 일본은 요동반도를 포기하는대신 3000만냥의 배상금을 추가로 획득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요동의 남만주철도가 호시이했기 때문에 러시아와 적대관계가 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때 일본은 러시아에 비해 국력에서 열세였고, 러시아도 쓸데없이 동아시아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싶진 않았기에 양측은 조약을 통해 충돌을 완화하고자 했으나 양측간 의견차이로 번번히 키배가 발생하였다. 이 와중에 조선왕조의 정치판에서는 일본과 손을 잡은 대원군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민비 라인이 친러노선을 밟았는데, 일본은 후자 파벌이 러시아 세력을 조선에 끌여들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조선 내 친러파의 주축인 민비를 제거하였다. 하지만 민비가 죽자 후덜덜해진 고종이 라사(러시아)의 공사으로 파천하면서 역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고종은 러시아를 새로운 천조국으로 떠받들고 러시아에 온갖 이권을 퍼주며 러브콜을 열렬히 보내어 일본의 심기를 자극하였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러한 고종의 러브콜을 쌩까고 고종이 퍼준 이권만 호구잡은채 일본과 야마가타-로바노프 협정을 체결하여 대조선외교에서 일본과 조정모드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된 고종이 씩씩거리며 러시아 공사관을 나와 자신이 조선의 황제임을 선포함으로 인해 일본과 고종과의 관계도 완화되게 된다.

그러나 대한제국 고종정권의 일관되지 못한 외교정책(박쥐외교)은 일본으로 하여금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에서 온건파가 강경파에 의해 실각하고, 실권을 장악하자, 그들은 어전회의를 열어 만주와 조선을 점령해야 된다는 모험주의적 노선을 주장했고, 그 노선의 일환으로 일본이 탐내고 있던 만주를 군사력으로 점거하고 조선의 용암포를 점령하자 일본은 안보에 중대한 위기가 도래했음을 통감했으나, 러시아와 협상을 벌이고자 만한교환론을 근거로 러일교섭을 벌이게 된다. 일본은 조선을 먹고, 러시아는 만주를 먹는다는 구상을 일본측에서 제시했으나, 러시아에서 "좆까, 다쳐먹을거야"하는 바람에 무산이되고, 결국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완공이전에 동아시아의 러시아 세력을 분쇄하기로 결의하였다. 따라서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던 뤼순 항에 있던 극동함대를 선제공격함으로 인해 러일전쟁이 발발하였다. 당시 러시아와 불화관계였던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밀어주었다.[13] 일본은 전비의 약 70%를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융자받았다. 반면 러시아는 전비의 약 60%를 독일과 프랑스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았다.

한 러일전쟁 만화

당시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언론 및 여론은 일본의 패배를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뒤집고 일본이 러시아군을 상대로 연전연승하자 점점 러시아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독일과 프랑스의 금융기관들이 러시아에 대한 대출을 거절하자 러시아는 전쟁 자금줄이 막혀버렸다.[14] 그러나 일본 또한 전비지출을 심각하게 한건 마찬가지라 일본은 봉천 전투와 츠시마 해전에서 러시아군을 패퇴시킨 후 포츠머스 조약으로 전쟁을 종결지었다. 이 조약으로 배상금을 뜯어내지 못한덕에 협상단이 일본 국내에서 쌍욕을 먹었지만 그 대신 일본이 원했던 남만주철도를 확보하게 되었고, 부가적으로 남사할린과 조선에서의 세력권을 손에 넣게 되었다. 러일전쟁 승전 전리품 중 하나인 조선은 1905년 일본의 보호령이 된후(사실 보호는 개뿔), 1910년 일본에 합병되었다.

양차대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영일동맹을 근거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여[15] 독일령 칭다오를 점령하고 중국에 21개조를 요구하여 1개조를 제외한 나머지를 관철시켰다. 그리고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제국령 태평양 군도들을 할양받고 적백내전에 그 어떤 국가보다 길고 굵게 개입하였다. 그러나 별 소득없이 시베리아에서 철수하였고, 칭다오도 곧 반환되었다. 당시 일본은 온건적인 민주주의 정권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관계도 일방주의보다는 협력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가 일본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민권운동가들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민권운동은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되어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그 결실을 맺었고 이로 인해 일본도 민주주의 국가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이 들어선 민주주의 내각은 그 권위가 취약하여 꼰대들의 무시를 한몸에 받았고, 결국 시퍼런 관동군 장교들이 본국 의회를 쌩까고 자기네들끼리 중화민국의 만주를 침략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내각의 사태를 확대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명령과 3개 사단의 증원부대 파병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동군의 정부지시없이 한 행동이 너무 성공적이었다는데 있다. 관동군은 병력규모상으로 만주의 중국군에 비해 열위에 있었지만 중국군을 영혼까지 털어버리고 1년 만에 만주를 장악하였다. 결국 일본 내각은 불가침, 주권존중의 협정을 중국과 맺게된다. 그 이후 장악한 만주에는 일본의 괴뢰정권인 만주국이 수립되었다. 어쨌든 이들이 한 행동이 너무 성공적이라 정부를 무시하고 군이 지멋대로 움직이는, 군의 민관통제가 안되는 것이 일본제국의 전통이 되어버린다.

이렇듯 그 입지가 불안불안하던 민주주의 정부는 결국 1936년 청년장교들의 대규모 쿠데타가 일어났으나, 천황의 거부로 실패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영향은 군부에 큰 인식변화를 일으켜 일본이 군국주의로 가는데 한몫하게 된다. 의회는 비록 존속되긴 했지만, 사실상 군부정권의 들러리가 되고 만다.

2차세계대전 중에는 중일전쟁을 벌이던 일본은 패망한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총독에게 장제스 루트를 끊을 것을 약속받았고, 마쓰오카-앙리 협정으로 인도차이나에 대한 일본군 통행이 가능했으나, 군부 병신들이 통킹지역의 진주를 단행한다. 그리고 일본 내각은 제국정책요강에서 소련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미국 역시 마찬가지지만, 미국이 참전하는 경우 추축국으로서 행동한다는 것이었고, 인도차이나를 계속 쳐먹는다는 것을 결의했다. 그것이 실행되자, 미국은 미국내 일본자산을 동결하기에 이르렀고, 2차 고노에 내각은 미국과의 전쟁을 회피하고자 친미파인 노무라 기치사부로 해군대장을 미국대사로 임명했으며, 헐 국무장관과 교섭을 시작한다. 그러나 유럽 순방에서 돌아온 마쓰오카 외상은 지랄하고, 수정안을 제출했는데, 그것은 미국과의 협의를 무효화시키고, 소련과 맞짱까자는 나찌적 주장을 했다. 이런 미친놈을 해고하고자 고노에 수상은 총사직하고 3차 고노에 내각을 출범시켰다.

3차 고노에 내각은 도요다 데이지로 해군대장을 외상으로 임명했고, 통제불능한 군부의 남 인도차이나 진주가 결정되자 루즈벨트 대통령과의 직접회담을 제의하게 이른다. 한편 히틀러는 일본이 미국과 짝짝꿍하는 것에 항의하였고, 독일이 계속 연합군을 좆바르자 교섭을 중지하였다.(;;) 이에 미국은 석유수출 중단과 루즈벨트 직접교섭을 사실상 거부했으며, 이에 일본은 제국국책수행요강을 9월 6일에 발표해 미,영국과의 전쟁준비 및 외교수단으로서 일본의 요구관철에 노력, 그 노력이 무산될 경우 개전을 결정한다는 것을 결의했다. 이에 고노에 내각은 일본정부의 방침을 미 정부에 제시했고, 미국은 헐노트를 전달했다.[16] 이 점에 관해 일본 육군은 존나 빡쳤고, 도조 히데키 육상과 고노에 수상, 도요다 데이지로 외상이 설전을 펼치다가 지친 고노에는 사표를 제출했다. 고노에와 도조는 황족을 수상으로 천거했으나 황족내각 형성에 반대로 도조 히데키가 수상이된다.(ㅡㅡ)


이윽고 군부정권은 구체적인 제국국책수행요령을 결정했고, 그 내용은 추축국과의 제휴강화, 인도차이나는 중일문제 해결시 철병, 미국의 인도차이나 진출 저지(...?) 및 미국의 일본 석유공급(...), 중일문제 불가침을 미국에게 요구한다는 상당히 정신병자적 내용을 결의했다... 그걸 받아든 헐 국무장관은 노무라 대사에게 추축국 탈퇴, 인도차이나 철병안하면 뒈진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당연히 도조는 이를 거부하고 진주만을 공격한다.[17] 그리고는 자신들과 비슷한 집단인 독일과 이탈리아와 동맹을 체결하고 아시아-태평양 곳곳을 휘젓다가 결국 대규모 공습과 원폭투하로 인해 항복하고 몰락한다.

현대

비록 제국은 처참하게 멸망했지만 일본은 다시 일어섰고, 오히려 이전 시대에 비해 더 선진화된 사회로 진보하였다. 세계대전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기술력과 잘 교육받은 노동력, 1억에 가까운 인구는 일본이 부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패전 이후 일본에서는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빠르게 회복되어 1952년에 전전(戰前) 경제수준을 회복하였다. 50년대의 한국전쟁특수[18]와 인도산 저가양품의 철광석 수입특수로 인하여 일본 경제는 빠른 발전을 구가하였고, 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연합군 총사령부를 앞세워 전쟁의 원흉인 재벌들을 죄다 철퇴로 찍어버렸으며, 이 덕에 일본의 트러스트 자본주의는 붕괴되고, 새로운 기회들이 생기게 되었다.

일본 국민들도 전전(戰前)의 파시즘적인 국민에서 전후(戰後)의 보다 평화주의적인 국민으로 바뀌어갔다. 일본 정부는 미국과의 모의 하에 일본군을 부활시키고 핵 무기를 확보 및 미국과 동맹[19]을 체결할 계획을 수립하기도 하였으나 이에 분노한 일본 국민들이 1960년에 대대적으로 안보투쟁을 일으켰고 결국 국민의 뜻에 굴복한 기시 노부스케 내각이 총사퇴함에 따라 재무장 계획이 백지화되기에 이르렀다. 현재까지도 일본은 주요국가들 중 유일하게 정식 군사조직이 없는 국가로 남아 있다.

안보투쟁의 영향으로 일본은 국가의 자원투자를 극단적으로 경제에 배분하게 되었고 이는 다른 분야에서는 문제점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국가의 경제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실보다는 득을 더 많이 가져왔고, 미국의 도움이 많이 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도시란 도시를 폭탄으로 쑥대밭을 만든 미군 덕에 일본에는 개발할 곳이 넘쳐났고, 강제적 재개발이 이루어져 수많은 투자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국은 극동 소련 방어선으로 일본을 밀어주기 위하여 유럽에 행해진 마셜플랜과 유사한 자금 지원을 일본에 함으로서, 일본은 그 돈을 투자자금으로 쑥대밭이 된 전국토를 일으키는데 사용하고, 이는 전쟁수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그리하여 일본경제는 60년대까지 10%대의 고성장을 보였고, 70년대에는 경제가 성숙기로 진입하였다. 선진강대국 클럽인 G7에 창립멤버로 가입하였고 1969년에 서독을 제치고 자본주의 진영의 제2경제대국에 등극하여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제1경제대국 타이틀을 넘볼 정도로 성장하였다.

일본과 독일의 저환율 수출로 인한 급속한 성장은 다른 경쟁국들의 경계심을 환기시켰고 결국 미국 및 기타 주요 경제국들과의 플라자협정이 체결됨으로 인해 엔화 및 마르크 환율이 떨어졌다. 본래 240엔/달러였던 환율은 하룻밤 사이에 220엔/달러로 20엔이나 떨어졌고 1년 후에는 120엔/달러가 되었다.[20] 버블 붕괴로 인해 경제는 침체하고 되었고 부실채권이 급격히 늘어나 많은 은행들이 파산하였다. 단카이 세대[21]의 은퇴라는 인구사이클 폭탄을 맞게 되었으나 일본의 정부와 사회가 이에 대한 대국적인 대처를 제대로 못함에 따라 장기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고이즈미 정권때 고강도의 개혁과 양적완화로 살아나는듯 했으나 리먼 쇼크로 일본은 또 한번 불황에 빠지게 되었고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한때 한물간 국가로 취급받게 된다. 하지만 이후 아베 신조의 집권과 아베노믹스라는 또 한번의 양적완화와 근본적인 구조개혁으로 일본은 장기침체에서 벗어나 다시 반등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베 신조의 집권과 함께 극우화도 진행된다는것음 염려스럽다.

미국의 좆집

노예들.jpg 주의. 이 문서는 노예에 대해 다룹니다.
일해라 일!
노력해라 노오오력!
열심히 일해서 주인님을 기쁘게 해드리자 새끼들아
노참.jpg

당나라 , 백제한테 문화 영향 받은건 있어도 가미가제 덕분에 몽골제국군 침략도 막고 외세 강압 거의 없었던 역사인데 미국한테 3번이나 꽤 크게 당했다

페리제독한테 강제개항 (근데 이건 이후로 존나 빨리 잘 발전해서 긍정적인면이 크다 자존심 별개로)

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 패배

1980년대 플라자합의로 경제떡실신...은 아니고 이 부분은 일본이 자멸했다는 말이 더 옳다. 그 이유는 일본은행이 금리 관리를 부실하게 해서 그렇다.

사실상 일본의 천적 = 미국

그래도 와패니즈 , 가쓰라테프트 이런 경우처럼 미국에도 일빠들 많고 도요타 자동차 잘 팔리고 그런다.

국토

일본 열도

일본 열도라고 불리는 네 개의 주 섬인 혼슈(本州), 큐슈(九州), 시코쿠(四國), 홋카이도(北海道)와 3000여개의 부속 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부속 도서로 분류되는 섬들 중 가장 큰 섬은 부속도서라고 하기엔 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오키나와 섬으로, 인구가 대략 150만에 이른다.

오키나와 섬은 류큐 제도의 일개 섬이다. 일본 남서쪽에 있는 제도라고 하여 난세이(南西)제도라고도 불리는 류큐 제도는 최대 섬인 오키나와 본섬을 주축으로 하여 오스미 섬, 토카라 섬, 아마미 섬, 미야코 섬, 야에야마 섬의 규모를 갖춘 섬들과 그 섬들의 부속도서들의 띠 형태를 이루고 있다.

혼슈 섬은 지옥불반도 면적보다 조오오금 더 크고 일본 인구의 약 80%가 거주하고 있다. 일본 열도의 중심 섬답게 도쿄, 오사카, 나고야의 3대 도시가 모두 이 섬에 위치해 있다.

인구가 두번째로 많은 큐슈 섬에는 일본 인구의 약 10%가 거주하고 있다. 최대도시는 후쿠오카이다.

Land Use Icon.png
일본의 국토이용비율
2010년
삼림&녹지 농토 육수(陸水)
비율 67.1% 12.4% 3.5%
도로 건축용지 기타
비율 3.6% 5.0% 8.4%

면적은 홋카이도가 일본 열도에서 두번째로 넓다. (남한보다 조금 작다) 홋카이도는 일본 본섬들 중 가장 정착역사가 짧은 섬으로, 본격적으로 개척된 시기는 메이지 시대이다. 일본 열도는 전 세계를 대국적으로 볼 때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속하나, 홋카이도 섬은 면적 제곱킬로미터 당 인구 수가 60명대로 식민화가 덜 이루어진 섬이며 자연생태계가 일본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섬으로 꼽힌다.

시코쿠 섬은 4개 본섬 중 가장 면적이 작고, 인구수도 제일 적은 섬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촌동네이자 그런 이미지를 가진 동네이지만 세토 연안에 접해있는 북부는 제법 도시화가 진척되어 있는 상태이며 본토에 비해서도 발전수준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일본 4대 섬은 모두 도로와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홋카이도는 세이칸 터널을, 큐슈는 칸몬 터널을, 시코쿠는 아카시 해협대교를 통해 혼슈와 연결되어 있다.

일본의 국토는 남북으로(토호쿠 지역의 경우 동서로) 협소한 지형의 중앙에 높은 산맥이 존재하여 지역을 다른 기후권으로 분할한다는 특성이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산맥으로는 중부 지방의 일본 알프스가 있다.

훗카이도 최북단에서 규슈 남단 가고시마 까지의 거리가 베이징에서 광저우 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길이는 은근히 대륙에 맞먹게 길지만 폭은 더럽게 좁다.

수도인 도쿄를 포함한 칸토(關東) 지역은 무려 4000만명이 살고 있다. 제 2의 도시[22] 오사카가 있는 칸사이(關西) 지방에 2300만명이 사는걸 생각하면 많은 인구가 도쿄에 몰려사는걸 알 수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 후쿠오카 권까지는 아우르는 일본의 태평양 연안 '태평양 벨트'에는 1억명에 이르는 인구가 거주하며, 도쿄에서 오사카에 이르는 태평양 연안지역에는 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거주하여 메갈로폴리스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태평양 연안권에 인구가 밀집해 있는 반면, 동해(日本海) 연안권은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일본의 20대 도시 중 동해 연안권에 위치해 있는 도시는 니가타 한 개 도시뿐이다.

이따금 수도권 집중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로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일본은 기본적으로 인구가 많기 때문에 도쿄 한 개 도시에 모든 국가적 기능이 몰빵된 수준까지는 아니다. 1990년대 이후로 도쿄 일극화 현상이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방의 오사카나 나고야, 후쿠오카 등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보다는 수도권 집중이 덜하다고 할 수 있다.

기후

일본의 기후대
쾨펜의 기후구분

일본 본토의 기후는 크게 태평양 연안지방 기후와 동해(일본해)연안지방 기후로 나뉜다.

태평양 연안지방은 태평양에서 흐르는 난류인 쿠로시오 해류에 직빵으로 맞는 덕분에 여름 기후가 정말 덥다. 오사카가 대구보다 더 더움.

반면 동해연안지방은 가장 더운시즌의 평균기온이 25도 수준으로 양호한 편이다.

동해연안지방은 설국(雪國)이라는 이명에 어울리게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하다. 여름 강수량도 적은편은 아니나 특히 겨울의 강설량이 엄청나서 많이 내리는 해에는 한달에 300mm 이상의 눈이 내리기도 한다.

그 외에 오키나와는 아열대기후이며(오키나와 본토 그 아래부터는 열대기후이다. 예시로 이시가키같은데는 일반적으로 낮은 기온이18도 이다.), 홋카이도는 대부분의 지역이 냉대기후이다. 홋카이도는 일본 본토와는 달리 여름이 시원한 대륙성 기후이며,

특히 홋카이도 남부는 겨울 기온이 그리 혹독하지 않으면서도 여름 온도가 대개 22~25도 선에서 유지된다.

겨울에는 한국보다 훨씬 따뜻하다. 기온이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는 북쪽지방을 제외하면 없다.

일본의 특수한 기후대로 세토내해(-內海)형 기후가 있다. 세토내해는 일본 열도의 혼슈 섬, 큐슈 섬, 시코쿠 섬으로 둘러쌓인 소규모의 지중해(地中海)로, 세토내해 연안지방은 남유럽-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지방의 기후와 유사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남유럽의 특산품인 올리브 등이 이 지역에서 재배되기도 한다.

그 이외에 내륙 산간지대에 내륙형 기후권과 산간지형 기후권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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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후 및 강수량
1981-2010년 평균
단위: 섭씨(기온)/mm(강수량)
도시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연간[23]
삿포로
(홋카이도)
온도 고점 -0.6 0.1 4.0 11.5 17.3 21.5 24.9 26.4 22.4 16.2 8.5 2.1 12.9
저점 -7.0 -6.6 -2.9 3.2 8.3 12.9 17.3 19.1 14.2 7.5 1.3 -4.1 5.3
강수량 114 94 78 57 53 47 81 124 135 109 104 112 1,107
도쿄
(칸토)
온도 고점 9.9 10.4 13.3 18.8 22.8 25.5 29.4 31.1 27.2 21.8 16.9 12.4 20.0
저점 2.5 2.9 5.6 10.7 15.4 19.1 23.0 24.5 21.1 15.4 9.9 5.1 13.0
강수량 52 58 118 125 138 168 154 168 210 198 93 51 1,529
카나자와
(츄부/호쿠리쿠)
온도 고점 6.8 7.3 11.0 16.9 21.6 25.0 28.8 30.9 26.6 21.3 15.5 10.2 18.5
저점 0.9 0.7 3.0 8.2 13.1 18.0 22.3 23.7 19.5 13.3 7.7 3.4 11.2
강수량 270 172 159 137 155 185 232 139 226 177 265 282 2,399
쿄토
(칸사이)
온도 고점 8.9 9.7 13.4 19.9 24.6 27.8 31.5 33.3 28.8 22.9 17.0 11.6 20.8
저점 1.2 1.4 4.0 9.0 14.0 18.8 23.2 24.3 20.3 13.6 7.8 3.2 11.7
강수량 50 68 113 116 161 214 220 132 176 121 71 48 1,491
타카마츠
(시코쿠/세토 해안)
온도 고점 9.4 10.1 13.4 19.5 24.1 27.3 31.2 32.4 28.4 22.8 17.2 12.1 20.7
저점 1.6 1.8 4.4 9.4 14.4 19.3 23.6 24.4 20.7 14.2 8.5 3.7 12.2
강수량 38 48 83 76 108 151 144 86 148 104 60 37 1,082
카고시마
(큐슈/남부)
온도 고점 12.8 14.3 17.0 21.6 25.2 27.6 31.9 32.5 30.1 25.4 20.3 15.3 22.8
저점 4.6 5.7 8.4 12.7 17.1 21.0 25.3 25.6 22.8 17.5 11.9 6.7 14.9
강수량 78 112 180 205 221 452 319 223 211 102 92 71 2,266
나하
(오키나와)
온도 고점 19.5 19.8 21.7 24.1 26.7 29.4 31.8 31.5 30.4 27.9 24.6 21.2 25.7
저점 14.6 14.8 16.5 19.0 21.8 24.8 26.8 26.6 25.5 23.1 19.9 16.3 20.8
강수량 107 120 161 166 232 247 141 241 261 153 110 103 2,041

인구

인구는 약 1억 2,700만 명으로, 세계에서 열 번째로 많다. 인구가 많지만 땅이 커서 대한민국보다 인구밀도는 훨씬 낮다고 한다.하지만 체감 인구밀도는 한국의 몇배 이상이다. 일본의 지옥불 수준인 체감인구밀도를 느끼고 싶다면 일본 여행을 해보라 합계출산율이 1.45인 저출산 현상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다만 체감인구밀도가 높아서 그런지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이 현상을 반기고 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위협을 느끼고 일본의 전문가들도 일본의 인구감소를 매우 걱정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일본의 인구감소를 좋은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다만 극심한 고령화는 예외. 이 문제는 기계화와 출산율 증가나 외국인 이민을 받아들여 해결할수 있으나 일본은 아마 전자를 택할것이다.


일본의 인구는 세계대전 종전인 1945년엔 7000만명 수준이었으나 전후 베이비붐으로 10년 만에 인구가 약 2000만명 증가한 바 있으며, 이후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2010년에 인구 1억 2800만여명의 고점을 찍고 감소세로 전환하였다. 현재는 매년 20만씩 감소하고 있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일본의 출산율은 1980년대 수준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고, 1990년대와 비교하면 오히려 증가한 수준이나 전전세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인생기한이 최근래에 도래하여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하여 인구감소세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근본적인 원인은 저출산에 있기 때문에 이의 해결이 인구감소문제 해결의 중요한 키포인트임은 확실하다.

일본의 영아사망률은 전 세계에서 모나코 다음으로 2번째로 낮은 수준이지만 이가 인구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인데반면 가임여성인구의 수는 매년 전년비 0.5%~1%의 감소율을 보이기 때문에 신생아의 수는 매년 줄고 있다. 1970년대 초반 연 200만명이었던 신생아 수는 1990년 122만여명으로 떨어졌고 2014년엔 100만 3539명까지 떨어져 연 100만명 라인을 위협하고 있다.

일본의 신생아 수의 감소는 인구의 고령화 현상으로, 인구 고령화 현상은 유아인구비중 및 노동인구비중의 감소와 노년인구비중의 폭발적 증가로 귀결되고 있다. 1995년 일본 인구에서 유아인구와 노동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6%, 69.5%였으나 2015년에는 각각 12.5%, 60.7%로 줄어든 반면, 65세이상 인구비중은 14.6%에서 26.8%로 폭증하였다. 이와 같은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는 세계사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것이다.

반면 2014년 기준 일본에 체재하고 있는 외국인의 수는 약 212만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5만명 증가하는 등 일본 내 외국인 인구는 증가세에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약 80%가 중장기체류자이다.

Population Icon.png
일본의 국적별 체류 외국인 수
2014년 말 기준[24]
국적 중국 한국+북한 필리핀 브라질 베트남 미국 페루 타이 네팔 대만 기타
인구 654,777 501,230 217,585 175,410 99,865 51,265 47,978 43,081 42,346 40,197 248,106
증감율 +0.9% -3.6% +4.0% -3.3% +38.2% +2.6% -1.3% +4.5% +34.3% +20.6% +7.8%

일본 인구의 외국인 인구 비중은 약 1.7%로 북미나 유럽의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 국내경기는 금융위기 직후에 비해 활성화된 데 반해 국내 노동력 공급은 이를 따라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본 산업계를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일본에서 외국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앞으로도 증가할 전망이다.

국가(國歌)


키미가요(君が代) - 일본의 국가

君が代は 키미가요 와 / 임금의 대는 千代に八千代に 치요 니 야치요 니 / 천년에서 만년까지 さざれ石の 사자레 이시노 / 작은 돌이 巌となりて 이와오토 나리테 / 큰 바위가 되어 苔の生すまで 코케노 무스마데 / 이끼가 낄때까지
헤이안시대 고금 단가집에서 유래한 국가로, 이 때문에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긴 국가.
라고는 하지만, 고전 시였던 키미가요의 갓-양식 국가화가 이루어진 건 1900년대에 와서이다. 이 국가에서 키미(君)를 누구로 해석하냐에 따라 국가의 의미가 달라질수 있는데, 키미가 가리키는 인물이 천황이라는게 거의 확고한 정설이다. 따라서 천황을 찬양하는 곡이 일본의 국가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범 시리즈 중 하나로 이미 비공식 지정되었다. 근데 정작 우익들이 더 바꾸자고 한다. 일본-전범국, 일본해-전범바다명, 욱일기-전범기, 키미가요-전범곡 까지 지정되었으므로 아마 다음타자로는 국화나 사쿠라가 전범화(戰犯花)로 지정될 확률이 높아보인다고 하나, 일본해는 국내에서도 국제적으로 동해(East sea)라고 불러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반론이 많고 전범바다명따위로 불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일본 제국이 미국과 중국에게 대차게 깨지고 도쿄재판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전범이라 낙인찍히고 처벌을 받았으니 전범국이라는 정의에는 부합할 것이다.(단 전범국이라는 용어 자체는 신조어) 자기네 나라 국가인데도 못부르는 놈들 천지다. 우리나라에서 이 노래 끝까지 부를수 있는놈은 100% 일뽕이니 주의하자. 대표적으로 조혜련이 있다. 근데 그런식으로 보면 한국도 애국가 4절까지 못부르는 놈들이 많고 그 미국과 중국마저 자기네나라 국가 1절밖에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최근에 새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치

ㄴ 이 문서가 더 중립적일 것이다.

불타는B동2.jpg 경고!! 여기 있는 지역이나 국가는 헬보딸입니다!

해당 항목에 서술되는 곳은 헬조선보다도 못한 지옥을 다룹니다..
만약 이곳으로 탈조선을 하실 것이라면 . .
일본국회문장.png
일본 국회의석현황
(2015년 12월 21일 기준)
정당 참의원
의석수
중의원
의석수
여당 자유민주당 115 해산
공명당 20 해산
합계 135 해산
야당 일본 민주당 59 해산
일본 공산당 11 해산
오사카 유신회 7 해산
유신당 5 해산
개혁결집회 5 0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당 4 0
일본을 건강하게 하는 회의 4 0
사회민주당 3 해산
생활당과 야마모토 타로와 동료들 3 해산
신당개혁 1 0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1 0
무소속 9 해산
합계 107 해산
결원 0 1
정원 242 475

일본은 입헌군주제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양 제도 공히 메이지 유신 시절부터 내려왔으나 과거 메이지 시대 당시에는 천황이 국가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권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존재하기도 하나 현대 일본의 입헌군주제 체제 하의 천황은 바지사장일 뿐이다.

천황에 관한 헌법조항인 일본국헌법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그 지위는 주권의 근간인 일본국민들의 총의에 의한다'[25]라는 모호한 수사를 통해 천황의 법적인 지위를 애매하게 규정해 놓았고, 이는 천황의 역할론에 대한 무수한 떡밥을 남겨 놓았다.

일본 헌법에는 국가원수가 누구인지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천황은 일본의 원수가 아니고 따라서 천황이 일본의 최고지도자가 아니라는 의견이 존재하나 입헌군주제 국가의 군주(이것도 법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다.)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일본의 최고지도자이자 원수라고 보아야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일본국헌법 제3조는 '천황의 국사에 관한 전 행위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 하며 내각이 (천황의 국사행위에 대한)책임을 진다.'[26]라고 규정하여 천황의 조건부 하의 국사(國事)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사행위'는 그 격이 높은 중대한 정치적 권한들로 총리대신(입법부-행정부의 최고위직)임명권, 최고재판관(사법부의 최고위직)임명권, 중의원 해산권, 헌법 개정권 및 법률, 정령, 조약 공포권 등의 권리가 포함되어 있는 개념으로, 사실상 국가원수와 같은 권한이므로 이와 같은 권한을 가진 천황이 국가원수라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헌법조항은 천황의 국사행위는 내각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는 조건을 따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천황은 내각의 관할하에 있는 국가원수가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하며 실제로 최소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천황이 국사에 직접관여한 사례는 없다.

이렇듯 천황의 역할론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작금의 천황에게는 실질적인 권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 명목적인 폼도 과거에 비해 내려앉았는데 일례로 제국시대 황실을 관장하는 행정기관은 궁내성으로 성(省)급 기관이었으나, 지금은 궁내청(廳)으로 그 지위가 격하되었다.

現 일본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安倍 晋三)

어쨌든 현대 일본의 실질적인 정치권력은 내각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내각의 수장은 총리대신으로, 총리대신은 일본 국회에서 의원투표로 선출되므로 사실상 의회 다수당의 수장이 총리가 된다고 보면 된다.

일본은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상원인 참의원의 정원은 242명, 하원인 중의원의 정원은 475명이다. 이는 영국의 양원의원 숫자보다는 적지만 미국의 양원의원 정원 수의 2배에 달하기 때문에 국회도 리스토라해야한다는 의견이 존재하는 한편, 미국은 연방제 국가이므로 비교대상이 못되고, 일본의 국회의원 1인당 인구수는 OECD 평균의 약 2배에 달해 국회의원 수가 많은게 아니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집권당이 잘 바뀌지 않기로 유명하다. 자유민주당이 창당이래 1993년 사태로 인해 잠깐 정권을 내준 기간과 최근 민주당에게 3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정권을 내준 기간을 제외하고 줄곧 집권해 오고 있는데, 이는 자유민주당이 정권을 잡은이래로 일본 경제가 급성장 가도를 밟으면서 당의 신뢰가 누적된것에 기인한다.(반면 1993년에 정권을 잃은 것도 이와 같은 성장세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소비세를 도입함에 그 원인이 있다.) 비록 근래에는 자유민주당의 지지율이 리즈시절에 비해 떨어졌지만, 경쟁당들은 그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아서 사실상 견제할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다. 게다가 현재 일본 야권은 그 이합집산이 매우 빈번히 일어나는 등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이다. 일개 가십거리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전통적인 야당 대표주자인 일본 민주당의 유신당 계열과의 합병-신당창당론까지 나돌고 있으니 말 다한 셈이다.

한편으로 정치적 무관심분자의 확장세도 일본 정치의 한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20대 청년들의 경우, 전체 인구의 약 1/3만이 2014년의 중의원 총선거투표에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해당 선거에서 30대 및 40대 중장년층 인구도 과반수가 투표를 하지 않는 등 기타 연령대에서도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나고 자란 세대들의 정치적 무관심, 그리고 일본의 기성정당은 물론 신생정당들도 임팩트있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함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다도 정치지수가 낮고 언론자유지수가 낮은 아주 미개한 곳이며 국민들 스스로 일당독재를 원하고 구호물자로 8명이서 죽 2그릇을 나눠먹어도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치는 노예들이 사는 나라다. 물론 뼛속까지 노예인 역센징들에겐 아주 이상적인 나라다.

파시즘이 퍼지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전체주의 파시스트가 잠들어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고도의 파시즘 국가다.

야스쿠니 신사는 현충원에 해당하는 곳인데 일본은 그런 곳에 자기 나라를 불태우고 역사상 유래없는 외국 지배를 당하게 한 민족반역자들을 현충원에 모시는 이상한 나라로 이런 나라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통탄'할 '노릇'이다.

민주주의제도 시행한지 90년이 넘었는데도 일당독재를 국민들 손으로 만드는 걸 보면 갓-본인들은 누구보다도 독재를 사랑하나보다

ㄴ 이건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이 커요, 2008년 이후 사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 민주당 세상이였습니다. 그때 민주당이 자민당과 달리 친서방, 탈아입구 정책을 폐기하고 친한, 친중 정책을 펴서 한국과 관계 매우 좋았었습니다.

ㄴ 저기, 그런데 혹시 일본인이신가요? 뭔가 말투가... 아, 당연히 나쁜 뜻은 없습니다. 순수한 호기심 때문입니다.

ㄴTojo go Home!

정부조직

일본 참의원 내부
일본 중의원 내부

일본은 중앙행정기관으로 내각과 이에 배속된 내각부와 11개의 성을 두고 있다. 일본국헌법 제65조는 일본의 행정권이 내각에 속함을 명시하고 있다.

  • 내각(內閣) : 내각은 일본 행정권을 담당하는 합의체로 일본 정부조직 하이어라키의 최상위에 위치해 있으며 총리대신과 국무대신(國務大臣)들로 구성된다. 국무대신이란 내각에 소속되어있는 행정기관들의 장(長)들을 일컫는 용어로, 법령상으로는 총리대신을 포괄하는 개념이나, 일반적으로는 총리대신을 제외한 각 성(省),청(廳),국(局) 및 위원회의 장관들을 지칭한다. 국무대신은 내각의 총리대신이 의원 중에서 임명, 그리고 파면할 수 있다. 국무대신은 무조건 문민이어야 하며, 내각의 국무대신 절반 이상은 국회의원이어야 하는데, 이 규정은 매우 잘 지켜지고 있다. 일본의 내각 국무대신들은 전수 내지는 거의 전수가 국회의원으로 채워지는 일이 비일비재한데다, 실제로 현재 아베 3차 개각의 모든 국무대신들은 국회의원들이다.
내각의 조직은 먼저 국회가 국회의원들 중 총리대신을 지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정부 수반의 지명은 국회의 내각총리대신 지명선거를 통해 이루어진다. 지명선거를 통해 가장 득표를 많이 한 의원 2명이 결선투표를 치르게 되며, 결선투표에서 당선된 의원이 총리대신이 된다. 물론 예외없이 의회 내 다수당에서 총리가 배출된다. 이 과정을 거쳐 배출된 총리는 친임식(親任式)을 갖는다. 친임식은 천황이 총리대신을 임명하는 일종의 의례이다. 의례를 마친 총리대신은 국무대신을 뽑게 되는데, 천황은 총리대신 이외에도 총리대신이 뽑은 국무대신들에 대해서도 친임식을 거행한다. 천황의 국무대신 인증식이 끝난 후 총리대신이 각 국무대신들에게 관할직무를 할당하게 됨에 따라 내각의 조직이 완성된다.
일본 현행 내각법 제2조에 의하면 국무대신 임명은 최대 14명이 한도이며, 예외적인 상황발생시 17명까지 지명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특별법에 의해 FM원칙은 사실상 무시되고 있고, 실제로 현재 아베 3차내각의 국무대신은 총 19명이다. 일본 내각법은 무임소장관(無任所大臣)을 배치할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


내각은 직속부속기관으로 내각관방(内閣官房), 내각법제국(内閣法制局), 국가안전보장회의(国家安全保障会議), 인사원(人事院), 부흥청(復興庁)을 두고 있다.

  • 내각관방은 주로 정보를 수집하여 내각 정책 수립의 어시스트를 하거나 내각(a.k.a 일본 정부)의 활동이나 정책을 대내외에 홍보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관청이다. 따라서 일본 내각을 대변하는 것도 주로 이 기관이 맡기 때문에 내각관방장관의 존안이 한국 언론에 실리는 일이 많다.
  • 내각법제국은 내각의 행정행위에 앞서 이에 대한 법적인 심사 및 그에 관한 사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다.
  • 국가안전보장회의(약어 NSC)는 국가안보 및 기타 민감한 중대사항과 긴급사항에 대한 정책을 조정하는 기관이다. NSC는 의무성과 방위성에서 차출된 60여명의 공무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정부조직으로, 소규모이지만 최근 일본 정권에 의해 중시되고 있는 기관으로, 2014년부터 국가안전보장국(国家安全保障局)이라는 부속기관이 신설되기도 하였다.
  • 인사원은 일본의 중앙행정기관이 고용하고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사무를 관장하는 조직으로, 한국의 인사혁신처에 대응된다.
  • 부흥청은 2011년 토호쿠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복구를 위해 발족된 비영구 정부조직이다. 대지진 발생 10주년이 될 2021년에 폐지될 계획이다.


내각소속 중앙성청 목록

  • 내각부 : 부속기관으로 궁내청, 공정거래위원회, 국가공안위원회, 특정개인정보보호위원회, 금융청, 소비자청을 두고 있으며 국가공안위원회에는 경찰청이 소속되어 있다. 2001년 중앙성청 개편당시 신설된 부서로, 주요 업무는 정부 정책의 기획 입안 및 통합조정 보조이다.
  • 총무성
  • 법무성
  • 외무성
  • 재무성
  • 문부과학성
  • 후생노동성
  • 농림수산성
  • 경제산업성
  • 국토교통성
  • 환경성
  • 방위성

행정 구역

일본은 1871년 전통적인 행정단위였던 국(國)과 번(藩)을 폐기하고 새로이 프로이센식의 현(縣)을 도입하여 국토행정의 최상위단위로 삼았다. 현은 초기 72개가 설치되었으나 합병과 폐지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47개의 도도부현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일본의 47개의 도도부현 중 일반 현은 43개이며, 이외 4개 현은 현(県)이 아닌 도(都),도(道),부(府)로 불리고 있다. 수도가 위치해 있는 도쿄는 도(都)이고, 그 영역규모가 다른 현들에 비해 유달리 크고 메이지시대에 본격적으로 개척되었다는 역사적인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홋카이도는 이 섬의 명칭과 마찬가지로 도(道)이며[27], 메이지시대 당시 일본 제2, 제3의 대도시를 핵으로 한 역사적인 중심지 오사카 부와 쿄토 부는 부(府)이다.

최근 일본 내에서 행정구역 통폐합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기존의 47개 현 체제 또한 통폐합하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과거 47개 현 제도를 폐지하고 13개의 광역구로 기초자치단위를 재편하자는 논의가 존재하였으며, 최근에는 오사카 시장인 하시모토 토오루가 기존의 현 체제 아래에서 주요 현 중 하나인 오사카 부(府)를 주변 광역권을 합병하여 오사카 도(都)로 확장하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일본일본의 도도부현
도(都)

도쿄도

도(道)

홋카이도

부(府)

교토부

오사카부

현(縣)

가가와 현

가고시마 현

가나가와 현

고치 현

구마모토 현

군마 현

기후 현

나가노 현

나가사키 현

나라 현

니가타 현

도야마 현

도치기 현

도쿠시마 현

돗토리 현

미야기 현

미야자키 현

미에 현

사가 현

사이타마 현

시가 현

시마네 현

시즈오카 현

아오모리 현

아이치 현

아키타 현

야마가타 현

야마구치 현

야마나시 현

에히메 현

오이타 현

오카야마 현

오키나와 현

와카야마 현

이바라키 현

이시카와 현

이와테 현

치바 현

효고 현

후쿠시마 현

후쿠오카 현

후쿠이 현

히로시마 현

도도부현의 하위행정단위로는 시(市), 정(町), 촌(村)이 있다. 시는 정령지정시, 중핵시, 특별시, 일반 시로 나뉘어지는데, 일반 시는 그냥 소규모 잡도시이며 규정상 인구가 4만을 넘어야 한다. 특별시는 모 반도와는 달리 인구 20만 이상이라는 그리 높지않은 조건을 충족하면 획득할 수 있는 행정적 지위이다. 특별시 상태에서 중요한 상업적 지위를 갖추거나, 혹은 인구 30만을 넘으면서 괜찮은 수준의 도시경제기반을 갖추면 중핵시로 승급할 수 있다. 정령지정시는 원래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만 지정된 최상급 도시 지위였으나, 높으신 분들이 하도 특례를 남발해대다보니 어느새 정령지정시 승격의 검토대상이 되기 위한 기본스펙요건이 인구 50만 이상까지 떨어진 상태이다. 정령지정시가 되면 구(區)를 설치할 수 있게된다. 현재 일본에는 20개의 정령지정시가 존재한다.

정은 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촌락이며, 촌은 그냥 말 그대로 촌이다. 최근에는 지자체간 합병이 활발해짐에 따라 많은 정과 촌들이 인근 주요도시들에게 흡수되어서 그 수가 과거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다.

외교

개요

일본은 과거 일본제국 시대부터 신중한 외교를 하기로 유명했다. 특히 임오군란 당시의 이토가 주도하던 외무부는 군부가 좌지우지하던 1940년까지 신중한 노선을 취했으며, 만주사변 이후에는 관동군의 침략질을 무마하느라 개고생한다. 또한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 중 하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 전후에는 주요5개국 중 하나로 굵직한 전후처리조약에 빠짐없이 참가했었던 일본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문민내각이 미국과의 전쟁을 끝까지 피해볼라고 했으나, 돌팍 도조 히데키가 군사내각을 열게 되고, 미국에 선전포고 후 패전하게 되며, 미국의 임시통치를 받게 되면서 그 외교적 위상이 밑바닥으로 추락한 바가 있다. 심지어 국제연맹을 대체하여 새로이 조직된 국제연합(UN)의 법에서 명기하고 있는 적국조항의 대상이 되는 굴욕까지도 겪었다.[28]

이러한 충격적인 외교적인 입지에 놓이게 된 일본이 국격의 제고를 위해 자본주의 이념을 공유하고 있는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밀착노선을 채택한 것은 옵션에서 택한 선택이 아닌 필수선택지를 취한 것이었을수도 있다.

당시 미국 또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본주의 진원지로서의 일본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이러한 양국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양국은 (미국이 우위에 있는)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1952년 미군정이 열도에서 철수한후 미국의 도움으로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한지 23년만인 1956년에 UN으로 복귀에 성공한다.

일본이 국제사회에 복귀하자 또 다른 초강대국인 소련 또한 일본에 손을 내밀었다. 당시 소련은 동아시아의 공산주의 대국인 중국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고 이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했다. 당시 소련은 공식적으로 양국간 전쟁상태를 끝냄과 동시에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던 남쿠릴 4개섬 중 2개섬을 반환하고 영유권 갈등을 종식시키고자 했다. 소련의 이와 같은 제안을 두고 일본 내에서 남쿠릴 2개섬으로 만족하고 영유권 종식을 끝내자는 의견과 남쿠릴 4개섬을 다 돌려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했지만, 일본과 소련이 가까워지는걸 경계한 미국의 압력이 영향을 미쳐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현재까지도 진행형 문제로 남게 된다.

자유중국과 공산중국 문제 또한 미국이 닉슨 독트린을 내세우며 대만과 일방적으로 단교해버리고 중국과 수교하자 일본도 미국 뒤따라서 공산중국을 유일한 중국의 합법정부로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미국 응딩이 쫓아다니는 일련의 모습을 국제사회에 내비치면서 당시 제2,3세계 국가들과 데탕트주의 국가들로부터 미국 2중대라는 비아냥을 듣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2중대 포지션을 취함으로 인해 일본이 냉전상황 하의 심각한 방위비 부담을 미국에 전가시키고 경제성장에 집중하여 상당한 성취를 이루어 낸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일본의 경제력이 미국을 위협할 수준이 되자 일본이 외교면에서 의존하던 미국이 오히려 일본을 견제하기 시작하였고 여기서부터 일본 외교는 난국에 빠지게 된다. 이 시기부터 일본은 아시아 방면의 외교를 활발하게 전개하기 시작하는데, 한 일본의 언론을 이를 두고 '탈구입아'로 표현하였다. 일본은 제1세계 일변도의 외교노선을 어느정도 탈피하고 데탕트 세력들과 제3세계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강화에 힘쓰게 되었는데, 일례로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일본을 무려 40회나 방문하기도 하였다.

일본은 막강한 경제력으로 인해 강대국으로 인식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면에서는 강대국들로부터 여전히 공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는 일본이 외국에 행사할 수 있는 두가지 주요 외교수단 중 하나인 군사력의 해외파병을 스스로 막은 탓이 크다. 1990년 걸프전쟁 당시 일본은 연합군 측에 재정원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2경제대국이 병력을 전혀 안보내냐는 비난만 사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계에서 자위대의 해외활동 확대안이 심도깊게 다루어졌고, 결국 헌법의 선을 넘지않는 한도내의 자위대의 해외활동(UN평화유지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90년대에 일본은 경제패권국 지위를 노리는 위치에까지 올라 미국과의 외교적 대립이 한층 더 가열되었으나 90년대 중반 일본이 버블경제가 꺼지고 침체국면을 맞은 반면, 미국은 IT호황으로 날아오름에 따라 다시금 미국의 패권국 지위가 공고화되었고 미일관계는 21세기에 들어 코이즈미 정권과 미국 부시 정권에 의한 신 밀월관계를 맞이하게 된다.

진행중인 이슈

유엔개혁

2016년 현재 일본은 제2의 UN예산 공여국으로 UN에서 가장 비상임이사국 직을 오래 역임한 국가이며, G4의 일원으로서 UN안보리 개혁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유엔 내 다른 1.5군 국가들인 독일, 인도, 브라질과 손을 잡고 줄기차게 UN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주장하는 UN개혁안의 목표는 앞서 언급한 4개국(G4)의 UN상임이사국 지위획득이다. 그러나 UN개혁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 위해서는 UN회원국 총수의 2/3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매번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여 개혁안을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을 포함한 G4국들은 주로 경제원조를 후진국들에게 제공하는 방법을 통해 이들 국가들이 UN개혁안을 찬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UN내에는 개혁안을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하는데 이들을 커피 클럽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UN상임이사국이 늘어나는 걸 반대하거나, 혹은 G4 내 특정국가가 UN내에서 그 권한이 증대되는걸 반대하는 세력들이다. UN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중국 또한 일본과 인도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1월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었다. 이는 1958년 UN가입 이후 11회차로, 일본은 전 세계의 그 어느 국가보다도 비상임이사국 직을 오래 역임한 국가가 되었다. 이로 인해 2017년까지 주어지는 비상임이사국 임기 동안 현 아베 정권은 일본의 숙원사업인 UN안전보장이사회 개혁안을 보다 더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집단자위권

최근 통과된 평화안전법제에 의해 2016년 5월 15일부터 일본은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법안이 실효를 얻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이 증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집단자위권을 두고 일본과 적대관계에 있는 중국이나, 혹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거나 일본의 주 동맹인 미국과 척을 지고 있는 러시아, 북한 그리고 역사와 영토적으로 아직 매끄럽지 못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 등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서방세계 국가들과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인도는 지지의사를 표명했으며 이와 별 이해관계가 없는 국가들은 중립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역별 외교관계

미국

럼프.jpg 주의.이 문서는 너, 나, 우리의 주인님에 대해 다룹니다.
모두 무릎 꿇고 주인님을 영접하도록 합시다.
주인님에게 밉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ㅋ
대미관계는 일본이 가장 중시하고 있는 국가 간 관계이다.

일본은 미국과 견고한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서로를 주요한 동맹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2015년 현재 일본에는 주일미군 전투병력 1만8천명과 전투기 130대 및 미7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다만 이는 공짜점심은 아니며, 일본은 2014년 주일미군주류경비로 1,848억엔을 주일미군 측에 지급하였다. 이 이외에도 방위성은 기지비용, 오키나와 기지문제 관련 특별예산 등 각종 명목의 주일미군 관련 예산을 집행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일본이 매년 주일미군과 관련하여 부담하는 비용은 7천억엔 규모에 이른다.

최근 중국과의 대립이 더 첨예해짐에 따라 관계가 더 밀접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전통적으로 일본과 관계가 좋지않았던 미국 민주당정권 통치하에 일어나고 있는 기현상으로, 다음 미국대선때 공화당이 정권을 획득하게 된다면 이러한 관계가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

일본은 100여 년 전부터 유럽을 모델로 노오오오력해온 국가인 만큼, 유럽과도 양호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의 중국 영토패권주의 비판결의도 일본의 물밑작업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만 유럽은 동아시아 지역에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이 적은데다 유럽 입장에서 이 지역 문제에 오지랖질을 행사해봐야 딱히 얻을게 없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반대로 일본도 마찬가지이므로 친목관계 그 이상은 아닌듯 하다.다만 중국,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함께 견고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현재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다오위댜오)를 두고 영토분쟁 중이다.

그 이외 동중국해 영토 및 EEZ 분쟁과 지역 패권다툼, 그리고 이를 위한 프로파간다인 역사문제 등을 둘러싸고 마찰을 벌이고 있다. 사실 근대시대 이후로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시절은 거의 없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원칙을 표면적으로는 지지하고 있지만, 뒤로는 대만을 밀어주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일본 공식통계가 있는데, 여기서 네오 조선왕조신민과 대한민국 국민은 같은 카테고리로 묶기도 하지만, 중국 본토인과 대만인은 철저히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다.

한편으로 일본과 중국은 밀접한 경제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본에게 있어서 중국은 제1의 무역상대국이며, 중국에서 있어서 일본은 제2의 무역상대국이다.

주소


중국의 일본사랑을 표현한 대도행진곡. 직접 일본 가서 일본인들 앞에서 열창해보자. 일본인들이 좋아죽는다.

인도

일본 해상자위대와 인도 해군이 인도양에서 공동훈련을 하고있다.

기존에도 일본과 인도는 +관계 하에 있었지만, 21세기 들어 자위대가 인도양 해군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일본과 인도의 우호관계가 전에 비해 보다 더 확장되었다.

인도는 국경분쟁문제, 그리고 중국의 전폭적인 파키스탄 지지외교로 인해 중국과 직간접적으로 마찰을 빚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최근 중국의 국력이 강성해짐에 따라 이를 견제할 필요성이 대두된 인도에게 있어 중국견제라는 외교적 대의를 공유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증진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인도의 주요 투자국 중 하나이다. 일본과 인도의 합작기업인 마루티스즈키는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거의 5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동남아

일본의 아시아중시외교정책이 가장 유효하게 작용한 지역이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지역민들은 세계에서 일본에 가장 우호적인 국민들로 조사되곤 한다.

일본과 동남아시아연합은 정기적으로 수뇌부회담을 열고 있다. 양 지역간 경제관계는 매우 밀접한데, 일본계 자본은 인도네시아에서 외국인직접투자 총액의 절반을, 타이에서는 총액의 3/4를 점하고 있다.

특히 2015년 국제적 분쟁지역인 스프래틀리 군도(남사군도)에서 중국과 필리핀,베트남 사이에 분쟁이 격화되자 미국과 일본이 가세하여 군사적으로 더욱 돈득한 사이가 되고있다.

한반도

현재 동해의 독도를 두고 자기네 땅이라 지랄 하는중에 있다.[29] 그 이외 전형적인 식민본국-식민지 갈등인 식민역사갈등도 진행 중에 있다.

일본의 민간사회에서는 혐한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는 파오후들을 중심으로 혐한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한일관계는 예전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우리만 그들을 보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을 볼 때, 그들도 우리를 보고 있는...마치 사루만의 눈알과 사우론의 부랄과 같은 관계가 된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도 대군주 Kim III 꿀꾸리우스의 핵미사일 장난감 문제와 인권문제, 그리고 일본인 납치문제 때문에 동결되어있다.[30]

군사

항공자위대의 주력기 F-15J
해상자위대의 이즈모급 헬기항모(혹은 헬기구축함)
Military Icon 2.png
자위대의 전력[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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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준
육상자위대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
무기종류 수량 함종 수량 배수량합계 기종 종류 수량
전차 690 구축함[32] 47 24만톤 F-15J/DJ 전투기 201
장갑차 970 잠수함 16 4만5천톤 F-4EJ 전투기 55
무반동포 2500 기뢰함 27 2만6천톤 F-2A/B 전투기 92
박격포 1100 초계함 6 1천톤 RF-4E/EJ 정찰기 13
야전포 500 수송함 11 2만8천톤 C-1 수송기 24
로켓탄 발사기 100 보조함정 30 12만6천톤 C-130H 수송기 15
고사기관포 50 KC-767 공중급유/수송기 4
육상자위대 항공전력 해상자위대 항공전력 KC-130H 공중급유/수송기 1
E-2C 조기경보기 13
기종 종류 수량 기종 종류 수량 E-767 조기경보관제기 4
LR-1 정찰기 1 P-1 초계기 9 CH-47J 수송헬기 15
LR-2 정찰기 7 P-3C 초계기 61
AH-1S 대전차 헬기 60 SH-60J 초계헬기 42
OH-6D 정찰헬기 48 SH-60K 초계헬기 44
OH-1 정찰헬기 38 MH-53E 소해/수송헬기 5
UH-1H/J 다목적헬기 131 MCH-101 소해/수송헬기 6
CH-47J/JA 수송헬기 55
UH-60JA 다목적헬기 36
AH-64D 전투헬기 11

현재 일본의 군사적 역량은 자위대라는 공식명칭을 가진 준군사조직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자위대는 공식적으로는 경찰조직이지만, 이 조직을 명목 그대로 경찰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거의 없으며 사실상 일본의 군대로 간주되고 있다. (그치만 일본의 높으신 분들이나 자위대 관계자들이 자위대를 '軍'이라고 칭하는게 금기사항인건 안 비밀)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원래 일본의 군사력을 거세하려고 하였으나 빨갱이들이 동아시아 대륙에서 활개를 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일본의 11시 방향지역인 모 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米막부 주도하에 경찰예비대가 창설되었다. 경찰예비대는 소화기로 무장한 75,000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었으며 동시기에 구 일본제국해군 패잔떨거지들을 규합하여 해상경비대를 조직하였고 이 해상경비대는 얼마 안가 경비대로 재편되었다. 이로써 육상의 경무는 경찰예비대, 해상의 경무는 경비대가 관장하는 체계가 완성되었고, 이를 관장하기 위한 정부기관인 보안청이 설치되었다.

그후 경찰예비대보안대로 리뉴얼되었는데, 1954년에 이들 보안대와 경비대를 합병하여 자위대를 발족시켰다. 두말할 것 없이 보안대는 육상자위대가 되었으며, 경비대는 해상자위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 제국군 시절엔 육군과 해군에서 분리되어있지않던 공군과가 독립하여 항공자위대가 추가됨으로써 오늘날의 자위대 체제의 기틀이 잡히게 되었다.

2015년 동아시아지역 군사력 현황

흔한 반도의 역알못들이 알고있는것과는 달리 미국은 일본 군사조직이 일본의 전수방어용 집단수준을 넘어 미국의 아시아 활동의 조력자로 활동하길 원했다. 그랬기 때문에 미 당국은 (명칭이야 어찌됬든)일본군의 부활 그 자체를 원했으나 60년대의 일본 안보투쟁의 여파로 미일상호방위협정 개정안이 좌절되면서 자위대는 전수방위조직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냉전 이후 1990년대부터 UN PKO활동에 자위대가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자위대의 활동범위는 일본을 넘게 되었고, 최근 아베 정권이 평화안전법제를 통과시키면서 다가올 2016년 5월 15일부로 일본 자위대는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일본국 헌법 제9조는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일본 자체적으로 특정국에 선전포고하는 등의 행위는 불가능하다.

현재 자위대의 장비현황은 위의 표와 같으며, 육전병력은 14만명 규모로 15개의 사단과 여단이 존재한다. 자위대는 비록 명목적인 숫자로 보면 주변국들에 비해 전투병력이나 병기의 댓수에 의해 열세인것처럼 보이나, 병기의 질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여타 동아시아 국가들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해상자위대의 함선 댓수는 137척으로, 중국 해군의 870척이나 대한민국 해군의 210척보다 적은것처럼 보이나, 해상자위대 함선의 90% 이상이 중대형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다 무장의 기술적 수준이 높기 때문에 대한민국 해군에 비하면 그 전력이 압도적이며, 중국 해군과도 전력이 비슷하거나 우위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정과 냉전시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자위대의 실질적 설계자인 미국의 의도에 따라 해상자위대에 몰빵한 결과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냉전시기 중국북괴를 견제해야 했으니 육군에 몰빵했다.

2016년 GFP 조사로는 무려 7위로 나오고있다

경제

예토전생틀.PNG 이 문서는 예토전생했습니다!

이 문서나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은 오랫동안 사망했다가 최근 다시 살아났습니다!

개헬본좆국의 만행과 병크로 나라가 불지옥나락에빠지고 국토는 과거 에도시대로 돌아갈지경에 이르렀으나 1950년대 들어서 소련의 성장을 막기위해 미국이 일본에게 물자와 돈을 조오오오오오오온나게 지원해줬고 한국전쟁때 미군,유엔연합군 군수물자들을 싹다 이곳에서 생산하게끔 공장을풀가동시키다보니 자연스레 일본의 경제는 성장하였고 1960년대 고도성장을 이룩할만한 발판을 마련하게된다.

1960년대 일본은 이케다 하야토 총리,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개씹하드캐리로 전세계 경제성장률 최상위권의 국가로 굉장한 고도성장을 이룬다.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전세계의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는 와중에도 일본은 1년을 제외하고는 전부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였고 1980년대에 1인당 gdp 1만달러를 돌파한다.(참고로 남조선도 이때의 석유파동을 잘피해가서 중선진국 반열에 오르게된다)

80년대까지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미국을 따라잡을 것처럼 보였지만, 주식,부동산 버블이 붕괴한 이래 대략 20년간 일본의 경제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였다. 엔화환율이 달러=120엔대를 찍은 1990년에 일본의 GDP는 미국의 50% 수준에 이르기도 하였다. 70%는 그냥 지나친 엔고로 인한 착시현상이니 별로 믿을만한건 아니다.이미 1990년부터 주가는 큰폭으로 하락했고 부동산은 1991년부터 하락세로 가고 있었다.

1995년 이후 일본의 경제규모는 480조엔 전후에서 미묘한 변동만을 줄곧 보여왔으며 2011년에 중국과의 경제규모순위가 역전됨에 따라 40년 만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 타이틀을 내려놓게 되었다. 2018년 현재 일본의 엔화 gdp는 550조엔으로 다시 성장중이다.

아베노믹스 실시 이후 gdp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회복을 넘어 확장 기세로 바뀌었다. 아직까지 물가상승률이 지지부진 하지만 엔고,브렉시트로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성장률이 높게 나온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약 1% 중후반을 정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정도면 선진국 중에서 ㅍㅌㅊ~ㅍㅅㅌㅊ는 된다. 한국이 2% 중후반 기어다니는걸 생각하면.. 다만 한국도 세계 경기의 회복으로 성장률 3%를 바라보게 되었다. 2018년 들어서서는 물가상승률도 1% 이상 나오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90년대 이후로 일본 경제를 라이벌로 보는 의식이 많아졌는데 사실 일본의 GDP는 한국의 3배에 이상이다.


G7국가 국부 비교
국가 1인당 순자산[33] 최상위10%가
점하는 부의 비중[34]
USA.png 미국 119,570유로 74.6%
JPN.png 일본 92,147유로 48.5%
CAN.png 캐나다 65,900유로 57.0%
GBR.png 영국 56,810유로 54.1%
ITA.png 이탈리아 47,400유로 51.5%
FRA.png 프랑스 43,420유로 53.1%
DEU.png 독일 42,050유로 61.7%

본래 일본에서는 버블붕괴이후 장기불황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러왔으나, 장기불황이 현재까지 이어짐에 따라 최근에는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용어가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비교적 많이 나오지 않는말이다.

'잃어버린 20년' 시기에 보인 평균소득 및 생산성 증가세의 정체는 불황도 불황이지만 인구구조의 변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현재 일본인들의 평균 연간노동시간은 90년대에 비해 1/4이상 감소하여 현재는 OECD가맹국 평균 노동시간 이하수준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1인당GDP 통계로 보면 일본의 생산성은 정체한 수준이지만, 노동인구 대비 GDP나 노동시간 대비 GDP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일본 경제가 20년동안 손가락만 빨고 있었던 건 아닌 부분이다. 또한 서비스 생산성은 정체했지만 반대로 제조업 생산성은 G7 중에서도 1위를 찍었다.

일본의 설비투자추이

다만 장기적으로 볼때 일본 경제가 2000년대 초반정도면 모를까 80년대 경제동물로 불리던 위엄을 되찾을 확률은 0에 수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일본의 경제는 미국에 비해 뒤쳐져 있는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래도 통계적으로는 아직 서유럽 수준은 된다. 일본이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업 분야의 급진적인 개선 혹은 확장적인 인구정책(=다문화 정책)이 필요하나 양쪽 모두 현재 상황 하에서는 요원해 보인다.

한편으로 설비투자의 해외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0년대에는 해외로 나갔던 제조기업들이 일본 국내로 U턴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으나,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그러한 기조는 사라졌다. 설비투자규모는 매년 매분기 소폭의 증감을 거듭하며 답보 중이며, 최근인 2015년 3분기에는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17년 최근에는 계속해서 일본으로 유턴하는 일본기업이 늘어나고있으며 역수입 비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아베노믹스

2012년 재출범한 아베 신조 정권은 독자적인 경제개혁안을 제시하였고, 이를 밀어붙였다. 매체물에서는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 혹은 경제관을 아베노믹스라고 칭하고 있다.

일본의 연 인플레이션율
2011년 -0.3%
2012년 -0.0%
2013년 +0.4%
2014년 +2.7%
2015년 +0.8%
2016년 -0.1%

아베 정권은 대규모 양적 양화정책을 밀어붙였는데, 이는 일본 경제의 고질적인 디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아베정권은 2013년 1월부터 매월 13조엔에 이르는 국채를 매입하였고 이에 시장이 반응하여 동년 인플레이션율은 +로 돌아섰고, 이듬해엔 무려 2.7%의 이례적인 물가상승률을 보여 일본 내 경제적 기대심리를 자극하였다.

양적완화의 여파로 엔화의 환율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아베 정권이 의도한 바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시 일본은 원전가동중지의 여파로 인해 무역수지가 대규모 적자로 전환되어 있던 상태였고, 또한 수출 산업은 일본의 경제주력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의 부흥 없이는 경제를 회생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때 달러당 70엔대까지 떨어진 엔화 환율은 2013년 4월 100엔/달러선을 되찾게 된다.

아베노믹스의 주요 골자 중 하나인 규제개혁은 예상보다는 지지부진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일본 내 구조개혁의 큰 걸림돌 중 하나로 지적됬던 농업 협동조합 개혁이 성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각종 개혁과 과감한 정책 등으로 인해 닛케이225 지수는 2만을 넘보는 수준까지 상승하였고 민간소비경제도 활성화를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베노믹스로 인한 경제훈풍의 지속가능여부에 대한 회의감이 존재하기도 한다. 인플레이션율은 2015년에 들어 급속도로 떨어졌으며, 아베 정권의 소비세 증세정책이 민간소비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재정부실도 숨겨진 복병 중 하나이다. 현재까지 아베노믹스 정책은 꽤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2017년 현재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확장세이고 일본은행이 경기변동을 단순 "회복"이 아닌 "확장"으로 확대시킨것을 보아 일단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장기적으로 더욱 높은 성장율을 위해서는 인구의 증가와 서비스 생산성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현재 일본 정부는 영주권 조건을 완화하고 일본의 전통이였던 종신고용제, 연공서열제를 줄임으로써 서비스 생산성을 끌여올리려 하고 있다.

2016년 선거를 앞두고 또 소비세 증세 년도를 늦췄다. 2017년에서 2020년에 증세하는 걸로 바뀌었다. 세금은 못 걷고 나랏돈은 시장에 계속 풀고 하면서 가까스로 버티는 거다. 증세하면 정책 반발이 심해지고 안하면 빚만 쌓인다. ㅉㅉ 2014년 무리하게 소비세 증가로 소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것을 보아 경기가 완벽할때 올리거나 올려도 증가폭을 낮게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통화

일본은 (¥/JPY)이라는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엔화는 메이지 시대에 은본위제를 채택한 화폐로 출범하였고, 이후 금본위제, 그리고 종전이후 미 달러에 대한 페그제를 거쳐, 1972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만큼 화폐인 엔화의 국제적인 위상 또한 제고할 필요성을 느껴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브리튼우즈 체제 성립당시에는 360엔, 페그제 폐지당시 엔화의 환율은 달러당 308엔이었으나 일본의 빠른 경제성장에 의해 환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졌고 플라자 합의 이후 환율이 달러당 150 미만으로 떨어졌으며 엔고 절정기인 1995년,2011년은 평균 80대선에서 놀던 적이 있었다.

엔화 환율이 밑바닥을 기는 현상은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때 재발하여 2011년 10월에 달러당 76.72엔이라는 역사적인 최저점을 찍은 바 있다.

현재는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에 의해 10년 전 수준인 달러당 120엔 수준으로 복원되었다.

2017년 현재 달러당 110엔 정도에서 거래되고 있다.


공공재정

일본 재무성 청사

일본은 작은 정부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이다.

2015년 일본 중앙정부의 일반회계 예상규모는 96조엔으로, 이는 GDP의 20%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 중 지방정부에 재분배된 예산금액은 18조엔 규모이므로, 사실상 중앙정부가 집행하는 예산액은 78조엔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지방정부의 예산재량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국가들 중 하나로, 지방정부의 세출규모가 중앙정부의 세출규모보다 더 크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출규모를 합산하면 GDP의 35~40%수준에 육박한다.

중앙정부의 일반세출은 주로 사회안전망 확충에 투자되었는데 이는 고령화로 인해 공공복지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2015년 올해 일본 중앙정부의 예산 중 1/3 가량이 이 분야에 투자될 것으로 보인다. 그 외 일반행정예산(6.2%), 교육 및 과학(5.6%), 국방(5.2%) 등이 중앙정부의 주요세출분야로 자리매김했다. 지방 정부의 공공복지지출까지 합산하면 GDP의 23% 규모에 이르러, 선진국들 중에서 중위권에 해당된다.


일본은 세계에서 공공채무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이다. 2014년에 공공채무 누적액수가 1,200조엔을 돌파하는 신기원을 수립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일본 GDP의 240% 규모를 넘는 수치이다. 2015년 일본 일반회계 재원 중 약 38%가 신규국채발행으로 충당될 예정이며 일반회계지출의 1/4이 국채관련 회계분야에 소진되었다. 이처럼 일본의 재정은 상당히 채무에 의존하게 있으며, 이는 세계의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성 하락에 일조하고 있다.

오사카역 인근 텐트촌
오사카는 일본에서 노숙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다만 그리스와 같은 [정부채무증가 -> 해외투자자에 대한 이자지급량 증가 -> 국부유출 -> 좆망!] 테크트리를 탈 확률은 희박하다. 2015년 기준으로 일본의 정부채권의 90.8%를 일본계 투자자 및 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등 자국민 국채보유비중이 높고, 일본 국채의 이자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일본 엔화는 경화인데다 일본이 이 화폐에 대한 정책을 집행할 전권을 가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태를 방조할 경우 이와 같은 재정부실은 언젠가 재정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일본 정부도 이를 중대한 문제 중 하나로 받아들여 재정건전화를 위한 노오오력을 국내외에 보이고 있으며 같은 맥락 하에 2017년부터 일본의 소비세율을 10%로 인상하는 안이 이미 확정된 상태이다. 하지만 2020년으로 미루어졌다. 폴 크루그먼의 조언에 따란 결과라는 말도 있다.


빈곤문제

세계화의 영향으로 선진국 노동자들이 신흥국 노동자들과의 임금경쟁압력을 받고 있고, 일본도 이의 예외는 아니다.

현재로선 일본 내부에 절대적 빈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상대적 빈곤은 심각한 수준이며 증가추세에 있다.

일본인의 16%가 연 가처분소득이 125만엔 미만인 상대적 빈곤층에 속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특히 편부모가정의 상대적 빈곤율은 50%를 넘어 선진국 중 최고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니계수로 보면 영국, 이탈리아보다 낮은 수치로, 프랑스, 독일과 같은 급이라고 한다.

2015년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 전체에 25,541명의 노숙자가 존재하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도쿄 도와 오사카 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의 경우 2012년에 시행된 전국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의 수는 13,262명이라고 하고, 미국의 경우 61만 명, 캐나다의 경우 23만 명에 이른다.이러한 사례들로 봤을 때 노숙자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한국과 일본은 타 선진국에 비해서 지니계수가 매우 낮은 편이다.


경제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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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균형잡힌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고, 독일보다 더 대기업 비중이 낮은 경제구조이다. 한국마냥 대기업 만세를 외치지도 않는다.

이는 2차대전 전후 맥아더의 재벌소탕작전으로 트러스트 자본주의가 파괴되었고, 다시 비대해진 대기업들은 1990년 버블폭락과 함께 도요타를 제외한 전자 대기업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발생한 효과인듯 하다.

Kor-Jap Business mens.jpg

이 사진을 봤을 때 일본은 90년대 버블폭락과 대기업의 부재로 새로운 기회가 생기면서 창업자들이 신부호로 등장하게 된 듯 하다.


역사적인 경제구조는 다음에 편집하겠음. 망해라

취업과 소득

취업은 존나게 잘된다. 아베노믹스로 꽤 경제가 잘돌아가서 그런것도 있지만 저출산 때문에 인력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면접생이 '왕'이라는 기사까지 뜰 정도다.

취업이 잘되니 연봉도 한국보다 높다. 2016년 기준 일본 국세청이 발표기준 월급, 보너스까지 포함해서 421만 6천엔이다.[[1]] 이는 한국국세청의 발표한 2016년 한국의 평균연봉 [[2]] 3360만원 보다 높은 수치이다.[35]

하지만 월 실수령액으로 가면 차이가 조금 좁혀지는데 싱글이라고 가정하고 실수령액을 계산할경우 일본같은 경우는 소득세 + 사회보험 (지역마다 틀린 주민세제외)[36] 월 35.13만엔, 실수령 29.1만엔 정도 되지만, 한국 같은경우는 월 270만원, 소득세와 4대보험을[37] 제하면 월 251만원으로 실수령액이 29.1만엔인 일본이 약 20%정도 더 많이가져간다.

하지만 이건 일본인들 얘기다. 한국인이라면 일본가서 쉽게 취업할 생각은 버리자. 능력이 없으면 당연히 힘들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요즘 일본취업은 일어만 잘해서 왼만하면 취업하기 힘들고 영어도 어느정도 공부를 해야된다.그 이유가 요즘 일본에 취업할려는 한국인들이 대부분 토익점수가 일본기업에서 요구하는 이상의 점수인 사람들이 많이 가서 그런것도 있고 일본에서 한국인들을 많이 채용하는 이유가 직장문화가 비슷하고 영어를 잘하기 때문이라고 일본기업 직원이 인터뷰한적이 있다. 여담이지만 일본직장 좋은점도 있는건 인정하는대 한국직장문화 않좋은거 죄다 일본에서 온것도 많고 그리고 일본도 한국처럼 학력차별 심하고 또 야근도 더럽게 많다. 아주 엄청나게 똑똑한 수재가이거나 그쪽 명문대(일본인들이 이름들으면 바로 아는) 출신 아닌이상 제대로된 직장을 일본이 주지도 않으니 거기서 취업해봤자 니인생이 활짝 피진 않는다.

근데 첨단기술 쪽에 유능한 애들은 잘 뽑힌다.실제로 일본 기업이 이런 거 잘하는 애들을 한국에서 스카웃 한다고 한다.

ㄴ 근데 디키질이나 쳐하고있는 니들은 관계없는 얘기니 생각할거 없다. ㄴ 애초에 첨단기술 쪽에 유능한 애들은 원래 취업 잘 된다. 가장 좋은 이력서가 상위권 공대 졸업장이란 말도 있는 것처럼.

산업

농업

일본의 농업은 토지집약적 성격, 그리고 자본집약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노동집약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일본 열도는 산지가 많은 지형이고 이에 경지 면적이 전체 국토의 13%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통적으로는 토지집약적, 노동집약적인 농업이 발전해왔고, 이러한 생산 메커니즘이 현재까지 일부 계승되어져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선진화로 인해 축적된 자본이 농업 분야에 상당량 투자되었고 이로 인해 자본집약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일본의 농업경쟁력은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일본 전체노동인구의 2.9%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농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선으로 그 생산성이 매우 낮다.

일본의 농업계는 그 노동인구비중과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그들이 행사하는 정치적인 영향력이 막강한 편이다. 그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아몰랑이나, 여하튼 일본 정부는 농업을 강력하게 보호해 왔으며,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일본은 해외에서 수입하는 농산품들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매기고 있으며, 농업 경영인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행하고 있다.

2015년 올해 일본 중앙정부가 책정한 농업 경영소득안전대책예산은 4000억 엔으로 이 예산이 모두 농업교부금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농업교부금 이외에도 지방정부나 농협지부로부터의 경영보조정책도 존재한다. 또한 농업인으로 공식 등록이 된 자들은 일본 중앙정부가 운용하는 저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이 서비스에서는 연 1.5%의 저리대출을 해 주며, 농업인은 최대 1000만엔, 농업법인은 최대 4000만엔을 대출할 수 있다.

일본에서 폭넓게 재배되는 작물은 이다. 이는 전통적인 일본의 주력 농산품이다. '일본'답게 일본에서 재배되는 쌀 품종은 자포니카 종이다. 쌀 이외의 주요작물로는 무, 당근, 양파 등이 있으며, 큐슈 남부지역에서는 고구마와 흑설탕 등이 주력작물로 재배되고 있고 시코쿠에서는 밀이 재배되기도 한다.

그 이외 축산업은 홋카이도와 큐슈 남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홋카이도에서는 유제품이 많이 생산되며, 큐슈 남부에서는 육류 생산업이 활발하다.

와규

일본 농업의 또 다른 트렌드로는 고급화 전략이 있다. 일본 국내에서 쌀의 소비량이 줄고 있고, 국내수요감소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농업계는 고급화를 통한 해외수출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일례로 고급화된 쌀 품종인 코시히카리와 사사니시키 등이 있는데, 이 작물들의 해외수출은 전세계적인 일식수요 증가와 맞물려 증가하고 있다. 카고시마 현의 흑설탕의 경우 일반 설탕과 차별화된 고급브랜드로 자리잡으면서 현의 농업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비단 농산품뿐만이 아니라 축산품도 고급화가 상당부분 진척되어 있다. 일본의 소 이름이자 쇠고기 브랜드인 와규(和牛 "일본소")는 일본 이외의 전 세계에서 고급 브랜드로 호평가받고 있다. 이미 화우 품종 자체가 호주 등지에 수출된 바 있으며, 코베규와 마츠자카규 등이 유명하다.


광공업

일본은 한때 귀금속으로 유명했는데, 특히 16~17세기에는 세계 최대의 은 생산국가였다. 그러나 귀금속은 에도시대 때 거의 고갈되어버리고, 귀금속의 뒤를 이어 일본의 특산품이 된 구리도 메이지 시대 이전에 매장량이 바닥을 찍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흥한 광업으로는 석탄 광업이 있다. 산업화가 진척됨에 따라 석탄의 수요가 늘어났던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에너지원 비중은 25%에 이른다. 2015년 현재 거의 대부분의 석탄광이 폐광되었지만, 홋카이도의 쿠시로 탄전, 루모이 탄전, 이시카리 탄전의 3개 탄전은 여전히 가동되고 있으며 연산 약 60만톤 체제를 이루고 있다. 반면 일본이 2013년에 수입한 석탄의 양은 200만톤이다.[38] 일본의 에너지원 수입의존도는 2014년 기준 94%에 달하며[39] 기타 주요자원들 또한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천연자원이 부족한 일본이지만, 천연자원 수입에 따른 무역적자를 메꿀 제조업 육성, 즉 수출산업 육성으로 부국의 대열에 올랐으며 일본의 제조업은 지금도 막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공산품들은 세계시장에서 쩌리 취급을 받았었다. 그러나 JIT(Just In Time)라는 혁신적인 생산체계가 일본에서 개발, 광범위하게 보급됨에 따라 일본의 제조업은 그 생산성과 품질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본도 고베제강 사태,도쿄전력의 만행,도요타 대량리콜 밎 혼다 녹 게이트 사건 등으로 품질의 신뢰성에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초기에는 천조국 자동차를 카피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일본 정부가 30년대에 GM과 포드를 일본 시장에서 추방시킨 이후, 닛산과 같은 일본의 선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카피 전략으로 어느정도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축적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 일본 자동차 업계는 역으로 미국에 수출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매출을 거의 올리지 못하고 철수하고 말았다. 그러나 60년대에 품질과 가성비가 비약적으로 향상된 일본 자동차는 다시 세계시장에 도전하여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으며 소형차가 주력품목이었던 덕에 7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날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일본 자동차메이커들은 점차 해외시장에서의 주력 세그먼트 라인을 중형차, 대형차로 확장해나갔고 1990년경에는 일본 자동차 3사가 각자 고급형 브랜드를 런칭하였다. 현재 일본 자동차업계는 유럽시장에서는 합계 점유율이 약 10%수준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북미시장에서는 40%선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며 아시아 시장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1978년형 닛산(닷썬) 페어레이디Z

일본의 전자 산업도 과거 일본의 성장을 견인했던 주요 축 중 하나였다. 60년대 소니의 트리니트론 TV로 세계시장에서 명성을 얻은 일본 전자업계는 특히 가전업에서 강세를 보여 세계시장을 석권하였다. 그 이외에도 자본재와 중간재 전자 산업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반도체 산업에서 일본 전자업체들이 저부가가치 산업인 D램을 대체할만한 비지니스 아이템을 발굴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고부가가치 반도체에서는 인텔 등 미국 업체에, 저부가가치 반도체에서는 삼성과 같은 후발국업체에게 밀리는 샌드위치 현상을 겪으면서 흔들거리기 시작하다가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로 침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소니는 방송용 캠코더, (쟁자들이 있긴 하지만) 게임기, 히타치는 중공업과 광학기기 기술면에서 아직까지 넘사벽이며 몰락했다는 전자기기계도 시가총액이 5개의 기업이 헬지 이상이다. 삼성과 헬지 현대에 치중되어있는 한국경제에 비하면 일본경제가 훨씬 안정적인 구조인 셈. 지금 한국의 삼성처럼 공룡 포지션이었던 노키아가 망한 뒤인 지금의 핀란드의 경제상황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금까지야 물론 유토피아지만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다. 근데 사실 현재 일본의 전자기업들은 8,90년대같이 순수 전자기업은 아니다. 다른 업종도 병행하고 있는겜.

그 이외의 주력 산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 일본의 철강업은 19세기 메이지시대부터 시작되었으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건 60년대부터이다. 조선업과 자동차 산업 등의 중공업이 일본 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하면서 철강의 수요가 증대하였고, 이로 인해 철강업 또한 발전궤도에 오르게 된다. 1970년에 연산 9억톤 체제를 완성하여 세계 제3의 철강제조국이 된 일본은 이내 서독과 미국 업체들을 경쟁에서 밀어내고 세계 최대 철강생산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최근 신흥개발국들의 거센 추격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에서 제2의 생산규모를 보유하고 있다.(최대생산국인 중국과의 생산력 격차는 심하다. 그렇지만 상품의 고부가가치화라는 척도에 있어서는 중국은 일본의 적수가 못 된다.)
  • 일본의 기계로봇 산업 또한 일본의 산업발전과 함께 성장하였다. 일본은 1960년대에 경공업 졸업반에 들어가 경공업을 아시아의 후배국가들에게 물려주는대신, 방직기와 같은 경공업에 필요한 B급 산업기계들을 아시아 신흥국들에 수출하여 쏠쏠한 재미를 본 바가 있다. 이후 중공업의 성장과 더불어 중후장대형 기계설비들도 일본의 주력생산품 중 하나가 되어, 지금도 해당분야에서 독일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로봇 산업은 현재 일본이 정부차원에서 밀어주고 있는 미래형 산업 중 하나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산업용 로봇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이며, 이 분야에서의 생산 및 수출량도 수위권을 다투고 있다.
  • 일본은 2차세계대전 당시 세계에서 세번째로 규모가 큰 해군을 거느린 바가 있다. 이러한 전통은 종전 후에도 지속되어 조선업에 활용되었다. 블록공법이라는 혁신적인 조선생산기술을 개발하여 영국의 조선업을 떡실신시킨 일본 조선업계는 수십년간 세계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 이웃국가인 중국과 한국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여 세계시장에서 입지가 흔들렸으나 중국과 한국의 임금상승으로 최근 일정의 경쟁력을 되찾고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상업

일본 경제는 상업 위주의 선진국형 경제이며, 제3섹터가 GDP의 3/4 가량을 차지한다.

종전 이후 소매업 분야가 눈부신 발전을 보여줬는데, 이는 농지개혁으로 인한 소농민들의 소득증대와 산업화에 따른 전반적인 경제수준의 향상에 기인한 것이다. 과거 소매업 분야의 주요 트렌드로는 1970년대에 주로 발생한 규모의 경제 추구현상이 있었다. 이 시기 일본 내 소매업계가 포화상태에 도달하면서 각 소매업체들이 경쟁력 향상을 위해 대형화를 추구한 것이었다. 일본의 버블경제시대인 8-90년대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 심화되었고 대형 백화점 건설붐은 이 때 일어났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버블경제가 꺼지고 경기침체 국면을 맞으면서 대형 소매업이 하락세로 접어든 대신 다시금 소형 소매업이 활황세로 들어섰는데, 이 때 편의점 사업이 전국적으로 유행을 일으켜 삽시간에 일본 전역에 퍼지게 되었고 일본의 대표적인 편의점기업인 Seven & I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으로 부상하였다. 현재 일본의 편의점 사업은 여전히 호황을 이어가고 있으며, 은행업 및 패스트푸드업 등으로 그 활동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최근 아베노믹스에 의해 대형 소매업이 부활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3년 대형 소매업계의 매상액은 30% 반등하였고, 이의 증가세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쇼핑 관광객이 늘어난 것도 이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17년 긴자식스 같은 대형 소매업을 확장시키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를 늘리려 하고 있다.

Culture Icon.png
일본의 세계 문화/콘텐츠시장 점유율
2009년
[40]
도서 잡지 신문 음악
비율 9.1% 12.8% 31.4% 16.7%
전자게임 영화 TV방송 라디오
비율 14.5% 13.0% 6.0% 26.2%

1952년 장기신용은행법이 통과되어 기존에 존재했던 일본의 정책용 특수은행들이 모두 보통은행으로 개편된 바 있다. 이로 인해 금융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전쟁 이전에 비해 크게 약화되면서 민간은행 설립이 활기를 띄게 되었다. 미쓰비시 은행이나 스미토모 은행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은행 이외에도 지방은행이나 도시은행같은 소규모 은행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일본의 금융 산업은 그 취약성을 줄곧 지적받아 온 바 있다. 과거 일본 경제가 호황이었던 시절에는 이와 같은 약점을 타개하기 위한 금융개혁이 지지부진한 편이었으나, 버블경제 붕괴 이후에는 금융개혁의 필요성을 인지한 정재계에 의해 개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금융개혁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정권은 과거 코이즈미 정권으로, 일본우정국 민영화와 일본 금융대기업의 3사체제로의 재편 등의 사업을 직간접적으로 해낸 바 있다.

일본은 세계 제2의 문화콘텐츠시장규모를 보유한 국가이다. 일본 국내에서 이 시장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다양한 문화상품들이 공급되고 있으며, 이렇게 생산된 문화상품들 중 일부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해외로 수출된 일본 문화콘텐츠 상품이 해외의 소비자들에 의해 확대재생산되어 이가 다시 일본 국내의 문화콘텐츠 산업 생산을 확장시키고 일본의 다른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 구조도 존재한다.


Tourism Icon.png
국적/지역별 외국인 방일관광객 수
2014년 기준
지역/국가 관광객 수
세계 13,413,467
아시아 전체 10,819,211
대만 2,829,821
한국 2,755,315
중국 2,409,158
북미 1,112,317
유럽 1,048,731
오세아니아 347,339
기타 85,209

일본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산업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신문 분야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신문 수요가 가장 많은 국가이며, 방대한 내수시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의 신문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자본력이 막강하다. 일본의 5대 민영방송사(닛폰TV, TBS, 도쿄TV, 후지TV, 아사히TV)는 모두 각 신문사들의 지배 하에 있으며, TV방송과 관련된 여러 문화콘텐츠 기업을 이의 계열사로 두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국내 시장의 위축으로 해외시장에서도 활발한 M&A를 해 나가고 있는데, 최근 괄목할만한 사례로는 일본경제신문의 영국의 FT 인수가 있다.


관광업

일본은 만년관광수지 적자국이였으나 아베노믹스 이후 최근(2013~ ) 엔저와 각종 홍보정책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수가 폭증하여 상업특수를 누리고 있다. 2016년 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약 2200만명으로 전년대비 22%나 증가했는데, 이는 관계경색 등으로 얼어붙어있던 중국인 관광객 수가 2014년에 전년대비 2배로 증가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2015년인 올해도 여전히 일본의 관광 산업은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16년이 되서는 한국에서만 500만 넘게 오고 만년적자였던 관광수지도 흑자로 바뀌었다.

특히 한국이 황사머니로 관광특수 누렸던것처럼 최근은 일본이 황사머니로 꿀좀 빨고 있다.

희한한것은 방사능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났는데도 갈수록 증가세라는거다. 엔저효과를 본것은 맞지만 그 이상으로 홍보나 관리가 잘되어가고 있다.

2015년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에 쓴돈만 해도 36조원이다. 아베노믹스의 가장 큰 효과중 하나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4000만명을 유치한다고 한다.

무역

일본은 약 30여년간 무역흑자국이었으나 리먼쇼크 이후 초엔고, 그리고 결정타인 동일본 대지진에 의하여 무역수지가 2011년부터 적자로 전환되었다가 2016년 47조원 흑자로 다시 흑자 전환되었다.경상수지는 2016년 기준 210조원이다.

쓰나미의 여파로 후쿠시마 현 소재의 다이이치 원전이 파괴됨에 따라 이로 기인한 각종 문제 발생 및 위협론 확산에 따른 압력으로 인해 일본 정부는 일본 전역에서 가동되고 있던 단 2기를 제외한 모든 원전들의 가동을 중지시켰다. 이로 인해 일본의 원자력에너지 생산량은 2010년 2,465페타줄(PJ)에서 2012년 137페타줄로 곤두박질쳤고 일본 정부는 에너지난 타개를 위하여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벌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에너지 공급량 감소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기에 충분치 못하였고 결국 원자력 이외의 다른 에너지원 수입량이 증가하여 이가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국화에 결정적으로 일조한 것.

비록 에너지 수입량의 증가세는 2013년부터 완화되었고 무역수지 적자폭의 증가세는 둔화되었지만 전체적인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여전히 증가 추세를 보였는데, 이는 일본 경제가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위축과 탈산업화의 영향으로 인해 자체생산기반이 옅은 소비형 경제로 이행하고 있고, 따라서 해외에서 생산된 자본재 및 소비재의 수입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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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상품 무역
2014년 기준
총 무역액 주요 교역품 무역
수출품 수출액 3대 수출 대상국 수입품 수입액 3대 수입 대상국
수출 73.093조엔 자동차 10.919조엔 미국(33.5%) 호주(6.4%) 중국(5.8%) 석유 13.873조엔 사우디아라비아(33.2%) UAE(24.4%) 카타르(11.0%)
수입 85.909조엔 철강 3.958조엔 중국(15.6%) 한국(15.5%) 타이(12.2%) LNG 7.849조엔 호주(20.2%) 카타르(18.9%) 말레이시아(17.8%)
반도체 3.691조엔 중국(27.0%) 홍콩(14.5%) 대만(13.9%) 의류 3.260조엔 중국(70.6%) 베트남(8.7%) 이탈리아(2.9%)
자동차 부품 3.451조엔 미국(25.4%) 중국(20.6%) 타이(7.6%) 반도체 2.871조엔 대만(32.0%) 중국(26.2%) 미국(10.1%)
원동기 2.539조엔 미국(29.1%) 중국(11.9%) 타이(9.0%) 석유제품 2.705조엔 한국(25.7%) 인도(10.7%) 말레이시아(10.5%)

다른 최근의 무역 트렌드로는 식료품 및 과학/광학기기 수출의 빠른 신장과 기계류와 금속류의 빠른 수입 증가세가 있다. 식료품의 경우 무역 신장세는 빠르나 무역 규모 자체는 매우 작은 편이기 때문에 절대값의 증가폭은 괄목할 만한 것이 못 되나 기기/기계류 무역의 경우 거래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의 빠른 증가세가 일본 전체의 무역수지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일본은 전통적인 주력 수출품인 기계류 분야에서 고부가가치 특화가 진행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기술집약도가 낮은 기계들을 외국에서 아웃소싱 내지는 수입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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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20대 무역 대상국
2014년 기준
무역 규모 순위 국가 수출액 수입액 무역 규모 순위 국가 수출액 수입액
1 중국 13조 3814억 엔 19조 1764억 엔 11 인도네시아 1조 5604억 엔 2조 7155억 엔
2 미국 13조 6492억 엔 7조 5426억 엔 12 홍콩 4조 393억 엔 1765억 엔
3 한국 5조 4559억 엔 3조 5313억 엔 13 카타르 1642억 엔 3조 5375억 엔
4 대만 4조 2316억 엔 2조 5675억 엔 14 러시아 9718억 엔 2조 6185억 엔
5 호주 1조 5012억 엔 5조 896억 엔 15 싱가포르 2조 2252억 엔 8339억 엔
6 사우디아라비아 8049억 엔 5조 152억 엔 16 베트남 1조 2527억 엔 1조 6307억 엔
7 태국 3조 3198억 엔 2조 2995억 엔 17 필리핀 1조 460억 엔 1조 763억 엔
8 아랍에미리트 1조 95억 엔 4조 3997억 엔 18 캐나다 8457억 엔 1조 1899억 엔
9 말레이시아 1조 4966억 엔 3조 866억 엔 19 영국 1조 1842억 엔 6753억 엔
10 독일 2조 178억 엔 2조 5514억 엔 20 프랑스 6274억 엔 1조 2127억 엔

현재 일본의 양대 무역 상대국은 중국과 미국이며 그 이외에도 인접한 주요경제국들인 한국과 대만과도 긴밀한 무역관계를 맺고 있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일본의 대아시아 무역의존도는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이와는 별개로 2010년대 들어 나홀로 경기회복을 보인 미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부쩍 높아져 최근 대미 수출량이 대중 수출량을 다시금 능가했다.[41] 현재 일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역대상지역은 (중동을 제외한)아시아로, 이 지역에 대한 의존도는 50%에 달한다. 그 이외 미국, EU 28개국, 중동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각각 10% 수준이다. 2014년 일본은 대미교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올렸고, 아시아에서는 소규모 흑자, 서유럽에서는 소규모 적자를 봤으나 원자재 수입대상지역인 중동과 호주를 상대로 한 무역에서 방대한 손실을 본 탓에 결국 13조엔에 달하는 무역수지적자를 올리게 되었는데, 이는 일본의 고질적인 원자재 대외전적의존에 기인한다.

과학기술

쓰래기국기.png 주의. 이 문서는 중증 파오후 일뽕이 작성했거나, 일뽕 그 자체를 다루므니다.
이 글엔 아마테라스 츠쿠요미의 은총과 씹덕의 향기가 가득하므니다.
이 글은 친일성향을 띈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존나 함유됐으므니다.
만약 당신이 정상적인 갓한민국의 애국자라면 이 글이 매우 역겨울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라므니다.
○○쨩 카와이하다능... 파오후 쿰척쿰척
타네가시마 우주 센터

전 세계에서 일본은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과학기술국가로서의 일본 대외 이미지는 일부 과장된 감이 없잖아있지만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특허출원량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수준이며 2014년에 특허협력조약(PCT) 기준을 충족한 특허의 경우 전 세계 특허에서 출원된 205,300여개 중 43,900여개가 일본에서 출원되어 전체의 22%를 차지하였다.

2013년 기준으로 일본의 정부와 기업, 그리고 기타 단체들은 연구 개발에 18조 1300억여엔을 지출하였다. 이는 일본 GDP의 3.75%에 달하는 금액이며 세계에서 최상위 수준.

작년인 2014년 일본에서는 84만여명에 달하는 인력이 연구분야에서 종사하였는데, 이 중 48만 5천여명이 기업 소속의 연구자이고 31만 7천여명은 대학 소속, 38,600여명은 NGO와 공공단체 소속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진(연구자 수 기준) 분야는 정보통신기기 기술분야였고, 자동차 기술과 산업기계 기술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연구비 투자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분야는 자동차 기술, 정보통신기기 기술, 제약 기술 분야로 연구인원 수 배분 상위 3항목과 연구비용 배분 상위 3항목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일본 기업들은 자국의 발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양질의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고 전 세계자의 소비자들도 일제 제품을 양질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원산지효과(COE)이론에 따르면, Made in Japan이라는 표식이 찍혀있는 상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한다. 조지아대의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일본산 셔츠와 전화기에 대해 인도네시아산 셔츠와 전화기보다 26% 더 높은 구매욕구를 보인다고 한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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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술무역
2013년 기준
기술 수출 기술 수입
기술무역액수 3조 3952억 엔 5777억 엔
무역 대상국
(비중)
미국 38.2% 미국 72.8%
중국 14.9% 덴마크 5.2%
타이 9.1% 독일 3.8%

일본은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 자동차(도요타 프리우스)를 상용한 국가이며, 전기 자동차 분야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 기술뿐만이 아니라 미래형 기술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휴머노이드형 로봇이 개발되었으며, 2015년 현재 일본의 제조업은 세계에서 가장 로봇화가 진척되어 있는 상태이다.

최근 일본은 미래형 기술 중 하나인 우주항공기술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우주기술수준은 미국이나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는 물론, 유럽이나 중국에 비해서도 열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은 하야부사 프로젝트와 카구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일본도 우주강국의 대열에 서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과시한 바가 있다. 현재 JAXA는 국제우주정거장(ISS) 계획에 멤버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 프로젝트에서 유럽 우주국(ESA)과 대등한 수준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에도 오랜 기간동안 일본은 실용적인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나 과학기반은 부실한 기형적인 구조를 가진 국가로 평가받아왔으나, 최근에는 기초자연과학계에서도 그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 일례로 일본이 보유한 과학노벨상 전체 갯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나, 21세기에 수상한 노벨상 수만 놓고 보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올해인 2015년에도 일본 과학계는 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여 그 저력을 과시하였다. 과거 구미열강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일본 치고는 장족의 발전인셈. 2016년에도 생리의학부분 노벨상을 받았다.

문화

문자와 언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한자가 일본어의 기반문자가 되었다.

일본은 기원전 2-1세기경에 한자를 수입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시대 일본은 크게 세 차례에 걸쳐 한자를 수입한 바가 있는데, 첫 한자 수입은 중국과 교류를 시작한 기원전~기원후 1세기 무렵에 이루어진 그것이고, 두번째는 후한 시대에서 중국의 혼란기 시대에 이루어진 한자 수입이 그것이며 마지막 세번째는 견수사, 견당사를 통한 수당시대 중국으로부터의 한자 수입이다.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덕분에 일본의 한자발음법이 지랄맞게 되었는데, 위에서 언급한 첫번째 한자수입 시대에 주로 확립된 일본의 한자음독발음을 오(吳)음계 발음이라고 하며, 두번째 시대의 그것은 한(漢)음계, 마지막 시대의 그것은 당(唐)음계라고 한다. 이 세가지 음계의 발음은 저마다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京(서울 경)은 음독으로 '케이'라고 읽기도 하고(ex: 京城/케이죠 : 일제시대 경성의 정식명칭), '쿄'라고 읽기도 한다.(ex: 東京/도쿄 : 일본의 수도) 전자는 오음계 음독이고, 후자는 당음계 음독이다.

여기에 더해 훈독이라는 고유의 한자독법이 존재한다. 훈독은 한자 문명권의 다른 외곽지대인 한국이나 비엣남에도 과거엔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들 지역에서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사라진 반면, 일본에는 아직도 훈독이 남아있다. 상기에 예로 든 京의 경우 훈독으로는 '미야코'라고 읽는다. 즉, 일본에는 京이라는 한 개의 한자를 읽는 방식이 세 가지 존재하는 셈이다. 사실 이는 약과고, 열 가지 이상의 음훈독으로 읽히는 한자도 더러 존재한다.

현재 일본어에서는 한자 이외에도 히라가나, 카타카나라는 고유 문자를 병용하고 있다. 카타카나와 히라가나는 과거 한자를 날려쓰는데서 유래한 만요가나가 진보한 버전으로 헤이안시대 궁중의 여성들이 개발한 문자라고 알려져 있다. 귀족문화가 융성했던 헤이안시대 당시에는 여자들이나 쓰는 문자 취급을 받았으나 사무라이 시대부터는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서민층이 애용하였다. 현재 공식 일본어표기법에 의하면 히라가나는 일본 토착어를 표기하는 문자, 카타카나는 외래어,외국어를 표기하는 문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이를 생까고 있다.

일본어가 일본어족(族) 언어권의 핵심언어이나 일본어족은 일본어만 포함하는 어족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일본에는 아직도 여러 지방의 방언들이 남아있다. 제국시대 초기에까지만 해도 큐슈 출신 사람과 토호쿠 출신 닝겐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일본 본토의 지역간 의사소통 장애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반면 일본 본토에 일본어와의 차별성을 주장하는 케센어(ケセン語)라는 일본어의 한 방언계 언어가 존재한다. 케센어는 에미시 언어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언어로 로마 알파벳을 주된 표기문자로 채택하여 일본어와의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일본 본토 4개섬 이외의 다른 일본 지역들도 일본어권에 포함되는데 대표적인 일본어족의 한 갈래로 류큐어족이 존재한다. 류큐어족을 일본어의 방언으로 취급하는 견해도 있긴 하지만 대개 일본어로부터 독립된 자생적인 어군(語群)으로 보고있다. 류큐어족은 오키나와어를 포함한 11개의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오키나와 본섬에서 통용되는 오키나와어를 제외하면 모두 사용자 10만명 미만의 비주류언어이다. 이들 언어는 모두 UNESCO에 의해 소멸위기언어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 본토 남동쪽에 위치해 있는 하치죠 군도에서 통용되는 하치죠어 또한 일본어족의 소수언어로 멸종위기언어 중 하나이다.

예외적으로 홋카이도의 아이누어는 일본어족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기타 일본 지역의 언어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계통의 언어이나 현재 소멸위기단계에 놓여있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아이누족은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다.


미학과 예술

일본의 고유미학은 미니멀리즘의 특색이 강하다. 괜히 일본이 세계산업계에서 소형화로 유명한건 아닌듯?

오리가미용 종이로 접은 나비

이러한 일본의 종특을 잘 보여주는 예술 중 하나로 오리가미(折り紙)가 있다. 문자 그대로 종이접기라는 뜻이고, 실제로 한국에서는 뜻에 따라 종이접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반면 서구권에서는 원어 그대로 Origami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오리가미는 고대시대부터 존재하던 종이를 접는 예술이 근세시대에 집대성된 것으로 일본 고유종교인 신토풍 결혼식 데코레이션용으로 접히던 것이 서민문화로 확산되어 확대재생산을 거듭한 결과 현재 지구촌을 대표하는 종이접기 문화로 정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리가미에서 대표적으로 접히는 동물은 학(츠루)인데, 이는 과거 에도시대 일본에 천마리의 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고 이가 오리가미의 전통에 반영됬기 때문이다.

이케바나식으로 어레인지된 화분

비단 종이뿐만이 아니라 자연계에 존재하는 식물 또한 일본의 미니멀리즘 예술의 주 재료가 되었다. 그 중 한가지 예술이 바로 이케바나(生け花)이다. '꽃을 살린다'는 의미로 서구권에서는 Ikebana라는 현지식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한국에서는 꽃꽂이라고 불린다. 이케바나의 핵심포인트는 곁식물을 잘 활용하여 화분의 주역인 꽃을 아름답게 '살리는'데 있다. 이케바나는 머머리 스님들이 만들어낸 전통인 만큼 불교 철학이 배여있는 예술이며 이 때문인지 불교전통이 강한 전통적인 일본에서 빠르게 보급된 바 있다.

본사이 나무

이케바나만 식물을 이용한 예술인 것은 아니다. 근세시대에 일본에서 이케바나 이상으로 인기를 끈 식물예술로 본사이(盆栽; 분재)가 있다. 본사이의 원류는 중국이지만 근세시대 일본에서 이를 집대성했기 때문에 현대의 분재문화는 사실상 일본문화이다.(실제로 서구권에서는 분재를 일본식으로 Bonsai라고 부른다.) 에도시대에 본사이는 고급관료로부터 도시의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큰 인기를 끌었고, 본사이 씹뜨억들이 대량 양산되었다. 당시 희귀한 본사이 품종은 수요가 넘쳤고 부르는 것이 값이었기 때문에 희귀품종을 창조해 내기 위한 품종간 교배가 활발히 이루어져 수많은 본사이 품종들이 이때 탄생하였다. 에도시대에 존재했던 본사이 품종의 수는 현재 전 세계에 존재하는 품종의 수보다 더 많았을 정도.

본사이는 일본 정원의 메인 데코레이션 중 하나이다. 전근대시대 에도는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 정원인 세계에서 제일 녹지비중이 높은 대도시였고, 이 곳을 방문한 서양인들에게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반면 지금의 도쿄는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녹지비중 종범 콘크리트 더미 대도시이다. 상전벽해.

여기까지 본 김에 일본식 정원 짤이나 마저 보고 가라.


근현대 문학

Samurai.jpg 이 글은 갓본의 자랑거리를 다루무니다.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 !!!!!!!!!!!!!

이러한 갓-본의 상황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에게 전세계와 우주가 경이로움을 느끼무니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일본은 근현대 문학에서 아시아 최고를 자랑하는 국가이다. 특히 인문학과 추리소설이 초강세를 띄며 추리소설의 경우 일본에서 아예 매년마다 따로 수상작을 발표할 정도로 그 관심과 수요가 대단하다.

참고로 2000년대 초반에 한일 문화개방때 한국이 가장 손해를 많이 본 분야가 바로 이 문학 분야다. 인문학의 경우 아예 일본에게 쓸려내려가다시피 했다고 한다.

대중가요

과거 2000년대 이전 JPOP은 해외에서도 상당히 영향을 주었고 실력파들이 충분히 공존하던 음악계였지만 1995년 이후 쟈니스, 모닝구무스메의 등장은 JPOP의 갈라파고스화와 수준저하에 큰 일조를 하였다. 또한 1970년대부터 이어지던 실력파 아이돌 야마구치 모모에-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 아무로 나미에로 이어지는 실력파 아이돌의 대가 끊긴 시점도 1990년대 이후이다. 이 현상으로 JPOP은 가창력, 춤실력 두개다 되지 않는 좆병신으로 바뀌었다.

이런 뽕빨에 실력안되는 가수들만 나오다 보니 가창력이 있는 가수들이나 일반인들은 똥시궁창이 되버린 JPOP을 버리고 JROCK으로 가거나 시부야계 같은 인디 음악계로 빠져나가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의 인디 음악의 규모는 상당히 큰 규모이다.아 그리고 일본은 노래가 전세계적으로 비싸다고 한다 노래 한곡당 2천원인가 그정도 한다고한다 미국은 900원정도이고

어쨋든 JPOP 아이돌,가수들의 가창력이 안되니까 90년대 이후 일본 뮤지션들은 작곡과 가사의 퀄리티, 장르의 다양성 등으로 승부를 보았고, 이 약빨이 2000년대 중반이후 수명이 다하니까 요즘은 캐릭터성과 물량으로 승부를 본다. 그래서 명색이 음악을 하는 아이돌인데 음악적 능력은 쥐뿔도 없고 오직 캐릭터성만 앞세운 AKB48같은 개떼거지 아이돌 그룹들이 존나 난립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일본의 가요계는 21세기 이전보다도 더욱 저질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브리트니 스피어스 마냥 춤을 잘 추면 메꾸어 낼수 있지만 90년대 이후 JPOP은 실력보다 예능,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 이것조차 되지 않는다.근대 잼있는거는 요즘 일본성우도 실력보다 외모만 보고 뽑아서 배테랑 일본인 성우들이 비난을 했다. 일본인들을 이것을 "성장형 아이돌" 로 미화하는 경향이 있으나 현실은 몇년이 지나도 0.1도 성장하지 않는 캐릭터성 아이돌일 뿐이다. 성장형인데 예능판에 자꾸 기웃거리는지?

이렇듯 실력이 있어도 안되자 일부는 한국의 연예기획사에 지원하여 탈일본을 하는 경향이 생겼다. 트와이스가 대표적인 사례. 일본의 아이돌만 이러는줄 아는데 아이돌이 아닌 일본의 JPOP가수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명색이 가수인데 실력보다 예능감과 캐릭터를 더 중요시하게 여긴다. 이러니 탈JPOP은 더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렇듯 일본의 팝인 JPOP은 세계의 주류와 뒤떨어진채 갈라파고스가 되었으며 싸이강남스타일로 전세계를 열광시키고 방탄소년단같은 한국의 아이돌들이 각국의 음악차트를 뒤흔드는 와중에도 21세기 이후 JPOP 아이돌,가수들은 그 어느 누구도 해외 가요계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반면 일본의 오리콘차트의 경우는 가요계가 세계화가 되고 나서는 툭하면 한국아이돌들과 미국의 팝가수들이 일본의 내노라하는 가수들을 다 제치고 짱먹는 사태가 발생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딱 한번 일본 가수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해먹은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1960년대였고 그 가수도 오래살지 못했다. 80년대, 90년대에 일본음악이 전성기였을때 일본에서 엄청 잘나가던 가수들은 거의 전부 해외진출을 시도했고 꽤 흥행해 90년대 JPOP 초반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권 국가에 꽤 영향을 주긴 했다. 이때는 확실히 실력파들이 견인을 했고 독창적이기도 했다. 문제는 90년대 중반 이후 쟈니스를 비롯한 소수 거대 엔터테이먼트사의 독점과 함께 안좋은쪽으로 열화되어서 그렇지. 좀더 자세한 내용은 JPOP을 보자.

유튜브에서나 동아시아에서나 일본음악이 JROCK을 제외하고 인기없는 이유도 이것이다. 가수들 가창력이 그모양인데 곡의 퀄리티가 아무리 좋아도 빨아줄 리가 있나... JPOP 가수들의 가창력이 이따구이다 보니 유튜브가 발전된 이후에도 엑소, TWICE, 빅뱅같은 한국의 아이돌들이 자신들의 MV가 유튜브를 통해 동아시아와 미국 등 거의 전세계에서 조회수를 끌어모으는 동안 일본아이돌들의 MV는 자국인 일본이 아니면 조회수가 거의 지리멸렬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ㄴ 진실 : 애초에 일본 아이돌 뮤비는 유튜브에 올라오는 경우가 적다. 혹은 해외에서 볼 수 없게 차단이 되어있다. 이유는 앨범에 뮤비를 같이 넣어서 파는 경우도 있고, 철저한 내수시장 공략이기 때문에 유튜브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

동아시아권에서 2010년대 초반쯔음에 나는 가수다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할때 일본에서만 오디션 프로그램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 가수들부터 가창력이 시궁창이니까 오디션 프로그램 만들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 만들어봤자 참가자부터 심사위원까지 쓰레기수준의 가창력들만 보여주며 5회를 못넘기고 조기종영할게 안 봐도 비디오다. ㄴ 있는데 무슨소리여

그렇기 때문에 일본 가요계는 립싱크를 처음으로 고안해서 가수들에게 정석화시켰으며 경제가 호황을 맞을 때에는 가요무대의 음향설비시설에 돈을 막대하게 쏟아부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수만이 일본 가요계의 이러한 실태를 보고 립싱크 도입이 자신에게 돈이 제대로 되는 것을 알고 그걸 진짜로 한국 가요계에 도입해버렸다. 이수만의 이 삽질은 현재 오늘날까지 한국 가요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젠장할.

오늘날의 일본은 그 어느 나라들보다도 보컬로이드 프로그램 개발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나라다.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의 원조는 영국이지만 그걸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고 세계에 퍼트린 것은 일본이다.

영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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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배우들의 연기력이 세계최악의 발연기로 악명높은 나라다. 그래서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의 해외 입지는 완벽한 똥시궁창이다.

일본의 문학계는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발전해 있어서 실사화를 하면 명작이 될만한 것이 여럿 있으나 배우들의 연기력이 앞서 말한것처럼 개판이고 시나리오 각본을 쓰는 사람들의 수준도 역시 개판이다보니 어떤것이든 영화나 드라마로 실사화만 하면 뜬금없는 대사와 발연기가 난무하는 난장판이 되어버린다. 배우들은 감정표현을 전혀 자연스럽게 할줄 모르고 배우들에게 해야 할 대사를 써주는 작가들은 어떤 연기와 대사를 배우에게 시켜야 적합한지조차 잘 모른다. 진짜로 애니메이션보다 못하다.

그래서 연기력이 안되니까 일본의 영화는 이로부터 전혀 공감을 이끌어낼수가 없었고 결국 원하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등장인물이 일장 연설이나 훈계를 하는 일이 빈번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는 '항상 억지 교훈을 주려고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게 되었다.

문제는 2000년대 이후 SM같은 한국의 대형 연예계 기획사들이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가 돌아가는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돈이 제대로 되는 것을 알고 그 좆병신 시스템을 그대로 한국에 수입해온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산소호흡기를 입에 달게 되었다. 이후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전세계에서 터키의 영화와 드라마보다도 평가가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 주범이 바로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 시스템이다.

한국 영화계는 이를 의식해서인지 리암 니슨, 쿠니무라 준 등 해외의 유명한 실력파 배우들까지 끌여들였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노력으로 철저한 실력검증을 통해 배우들의 연기력 평균을 끌어올리면서 일본 영화계 똥물을 어떻게든 치워보려고 하는 중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본의 좆병신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의 대형 연예계 기획사들이 버티고 있는 한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절대 회생할 수 없다.

하여튼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는 이 연기력 하나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개좆병신 취급을 당하는 중이며 한국의 최민식송강호, 이병헌이 헐리우드로 진출해서 세계적인 배우들과 영화를 찍고 설국열차부산행이 헐리우드를 포함한 전세계 영화계를 휘젓는 동안에도 일본의 영화와 배우들은 헐리우드 근처에조차 얼씬거리지 못했다. 드라마도 사정은 마찬가지라서 2000년대부터 한국의 겨울연가,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도깨비같은 드라마들이 아시아에서 한류붐을 일으키며 흥행하는 동안 일본의 드라마는 그 어떤 히트작들도 일본 밖의 국가에서 거의 인기를 끌지 못했고 한국의 배용준이나 김수현같은 드라마 배우들이 아시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으는 동안 일본의 드라마 배우들은 자국 바깥에서 눈꼽만큼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본 영화계의 현실이 이렇게 개판이다 보니 일본 영화계는 실사영화가 애니메이션 극장판에게 그야말로 잡아먹히는 아주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고 이 정도로 일본 영화가 좆망이다 보니 일본 국민들마저 자국 영화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도의 소규모 도시에서도 쉽게 영화관을 찾을 수 있는 반면 일본은 도쿄같은 대도시에서조차도 영화관 하나 찾기가 매우 힘들다. 이지경이기 때문에 일본의 극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들은 죄다 애니메이션 신작이거나 애니메이션 극장판들 뿐이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이 안되다 보니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는 배우들의 수준높은 연기력을 요구하지 않는 일상적이고 가벼운 소재와 내용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고, 영화의 경우 이 악빨이 2010년 이후 서서히 끝나가자 이제는 과거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영화화하는 실사 만화 영화가 빗발치게 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저런 실사 만화 영화판은 내는 족족 망하고 있다. 배우들은 물론 배우들에게 각본을 써주는 사람들도 수준미달인데 어찌 흥할 수가 있으랴.

그런데 이런 나라의 영화계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거장이 태어나서 잠시나마 세계에서 일본의 영화를 빛낸 적이 있었다. 그땐 하도 옛날이라서 가능했던 거긴 하지만.

그래서 일본은 아주 옛날부터 애니메이션과 만화책 등의 서브컬쳐 산업에 어느 나라들보다도 엄청나게 투자를 해왔고 그 결과 이쪽 분야들에서 전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제일 발전한 나라가 되었다.

클래식, 재즈, 뉴에이지

Samurai.jpg 이 글은 갓본의 자랑거리를 다루무니다.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 !!!!!!!!!!!!!

이러한 갓-본의 상황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에게 전세계와 우주가 경이로움을 느끼무니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일본이 문화예술부문에서 앞서나가는 분야중 하나가 바로 클래식, 재즈, 뉴에이지같은 장르들이다. 사실 극소수의 서양국가들을 제외한 국가들에서는 이러한 장르들이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뒤진 까닭도 있지만 일본의 클래식 시장은 세계 수위권이며 본고장인 유럽보다도 시장규모가 크다. 실제로 많은 클래식/뉴에이지 거장들이 일본에 포진해있으며 LP시장은 이미 서양을 따라잡은지 오래.

그런데 이분야들에서 이렇게 훌륭한 거장들을 가지고 있는데 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OST는 좆같은것만 쓰는건지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이 가수들의 가창력이 뒷받침이 안돼서 그런 모양인가 보다.

ㄴ애니메이션 OST는 애니송과 좆같은 뽕빨 거르면(심지어 일부 뽕빨물 마저도) 그럭저럭 괜찮은 경우가 많다. BGM이 말아먹는게 더 이상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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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 !!!!!!!!!!!!!

이러한 갓-본의 상황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에게 전세계와 우주가 경이로움을 느끼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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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
라멘

일본의 음식은 전세계의 다양한 문화권과의 접촉을 통해 아이템을 GET하고 그것들을 일본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확립되었다.

중국과의 문화교류를 통해 쌀과 같은 주요작물들이 전래되었고, 이 과정에서 중국의 요리도 함께 들어왔다. 그러나 일본이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면서 육식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자 중국의 일부 요리들의 일본화가 진척되었는데, 일례로 중국의 만두는 일본의 만쥬가 되었다.

16세기부터는 유럽 식문화로부터도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포르투갈에서 전래된 빵에 영감을 받은 일본인들이 카스테라를 개발해 냈으며, 유럽식 튀김법이 도입되어 탄생한 덴푸라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유럽의 영향은 개화기에 오히려 강화되어 일본인들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육식을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이때 유럽 요리들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의 세력권 하에 있던 지역의 요리, 이를테면 인도의 커리가 일본에 전래되어 이것이 일본화된 '카레'로 변해 오늘날에도 일본인들의 식탁에서 사랑받는 요리가 되기도 하였다.

근대 시대에는 중국 요리의 영향도 다시금 크게 받았다. 중국인들이 일본으로 이주해오기 시작하면서 중국요리가 다시 일본에서 그 인기세를 몰기 시작하였다. 이때 중국요리의 영향을 받아 라멘, 짬뽕 등의 요리가 탄생하였고, 이들은 일본화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일본의 음식문화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권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풍성해졌다. 17세기에 일본에는 이미 요리전문점이 등판하였고, 요리 레시피 책이 대량 출판되어 일본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1674년에 출판된 '에도요리집'이라는 베스트셀러에는 금수저 은수저들이나 먹을수 있는 요리들이 실려있었지만 18세기에 이르면 '두부백진'과 같은 수백종류의 두부 요리 레시피가 실려있는 진정한 의미의 가정용 레시피가 발간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일본인들이 길거리에서 먹을 수 있는 스시나 덴푸라가 발명되어 노점상에서 팔렸으며 우동과 소바가 그 인기를 구가했다. 오늘날 음식대국 일본은 이 시기에 이미 그 기반이 잡혀있던 것이다.

현대에 들어 한국에 영향을 받은 음식도 극소수이지만 생겨났다.(기무치, 야끼니쿠 등)

이러한 유구한 전통과 탄탄한 기반이 잡혀있는 문화인 일식은 두말할 것 없이 외국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만 한것은 아니며 반대로 막강한 영향력을 해외에 행사하기도 했다. 일본 고유의 음식들은 물론 이세계의 음식을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음식들(ex:카레, 톤카츠, 카스테라, 단팥빵 등)과 일본의 음식이 해외에서 현지화된 음식들(ex:캘리포니아 롤)이 일본 이외 지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일식의 계절성(Seasonality)와 자연 그대로의 맛을 강조하는 문화는 서방, 특히 프랑스에 수출되어 현지의 음식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도 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매 2년마다 '데쿠베르트 뒤 스시'(Decouverte du Sushi)라고 불리는 스시 요리대회가 열리는데, 이 대회에는 전 유럽의 스시장인들이 참가하고 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일본 음식들은 전반적으로 매우 단 편이다. 고기요리며 야채요리며 한국에 비하면 몇 배로 달다고 봐도 좋다. 한국요리가 소금덩어리면 일본요리는 설탕덩어리인셈.

ㄴ한국도 어지간히 설탕 넣는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존나 달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는 건 아예 설탕물 그 자체에 가깝다는 거다.

그리고 한국과는 달리 매운음식은 거의 먹질 않는다. 아니 못먹는다고 보는게 더 옳다. 일본의 가게에서 엄청나게 매운 라멘이라고 선전해놓은 라멘을 한국사람이 먹어보면 무슨 맹물맛이 나는게 현실이다(...).

그리고 나트륨 섭취량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높은 편이다. 음식을 되게 짜게 먹는 습관이 몸에 베여서인지 위암이나 고혈압 발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한국보다 더 높다). 이 때문에 국가 차원으로 국민들의 나트륨 섭취량을 대폭 줄이기도 했다.하지만 여전히 전세계 나트륨 섭취량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일식의 어두운면은 여기서 보자

세계문화유산

일본에는 UNESCO가 지정한 세계유산이 19개 있으며, 그 중 문화유산은 15개이다.

일본의 UNESCO 세계문화유산
문화유산 소재지역
호류지.jpg 호류사지역 불교건조물 나라 현
히메지 성.jpg 히메지 성 효고 현
킨카쿠지.JPG 고도 쿄토의 문화재군 쿄토 부, 시가 현
시라카와 고.jpg 시라카와 고 / 합장형 가옥집락 기후 현, 토야마 현
원폭 돔.jpg 원폭 돔 히로시마 현
이츠쿠시마 신사.jpg 이츠쿠시마 신사 히로시마 현
토다이지.jpg 고도 나라의 문화재군 나라 현
닛코사.jpg 닛코사(寺) 토치기 현
슈리 성.jpg 류큐 왕국 관련유산군 오키나와 현
콘코부지.jpg 키이지역 산간성지순례로 와카야마 현, 나라 현, 미에 현
이와미 은산.jpg 이와미 은광유적 시마네 현
모츠지 정원.JPG 히라이즈미 유적 이와테 현
후지 산.jpg 후지산 신앙과 예술의 원천 시즈오카 현, 야마나시 현
토미오카 제사장.jpg 토미오카 견직산업 유산군 군마 현
군칸지마.jpg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유산군 야마구치 현, 카고시마 현, 시즈오카 현, 이와테 현, 사가 현, 나가사키 현, 후쿠오카 현, 쿠마모토 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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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교육현황
2013년
문해율 99%+
고등학교 진학율 98.4%
대학진학율 53.2%

일본의 교육제도는 교육기본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교육기본법은 1947년 종래 제국시대의 교육칙어를 대신하여 제정되어 근래인 2006년에 21세기형 교육제도를 수립한다는 명목으로 개정된 바 있다.

기본적으로 유럽대륙식의 6-3-3-4(2)학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소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의 교육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최근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통합한 6년제 중등교육학교도 인기를 끌고 있으며, 아예 소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통합한 12년제 '일관교(一貫校)'도 교육열이 높은 부모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일관교 중에는 유치원부터 교육과정을 시작하는 일관교도 있고, 대학까지 진급이 가능한 일관교도 존재한다.

일본국헌법 제 26조는 국민들로 하여금 교육의 의무를 이행할 것과 의무교육은 무상교육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의무교육의 연수는 9년으로 이는 소학교~중학교 과정에 해당한다. 따라서 일본의 소학교와 중학교에서는 학비를 받지 않으나, 급식비나 수학여행비는 국가에서 지원하지 않으므로 학부모가 부담해야하는 부분이며, 사립학교의 경우 학비책정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학비를 받는 학교가 많다. 소학교는 일본 내 전체 소학교 중 1%가 사립학교이며, 중학교는 7%가 사립이다.[43] 사립학교는 학비가 비싼 편으로, 평균적으로 학생 1인당 연 70만 ~ 80만엔에 이른다.[44] 공립고등학교의 학비는 그의 반만 지불하면 되는 수준이다. 일본은 사립학교를 공교육 체제에 포함되는 기관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사립학교도 국가의 교육지침을 따라야 하고, 따라서 실질적인 교육내용은 국공립학교나 사립학교나 별반 차이가 없는 양태를 보인다. 따라서 사립학교는 대체로 시설이나 교사진의 우수성을 무기로 공립학교와 경쟁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교과서 검정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교과서가 학교에 보급되기 위해서는 문부과학대신의 검정을 받거나 문부과학성의 저작명의가 존재해야 한다. 공립학교의 경우 대개 시, 구, 정, 촌의 교육위원회가 해당지구의 공립학교들이 일괄적으로 채택할 교과서를 선정하며, 국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경우 해당 학교의 교장이 교과서 채택권을 갖게 된다.

일본의 교육이 다루는 과목은 크게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통합과학, 응용과학으로 나뉘는데, 이 중 인문, 사회, 자연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며, 일본의 수능시험인 대학입시센터시험에도 이들 과목을 시험과목으로 두고 있다. 인문과학은 일본어, 외국어, 예술, 종교, 도덕 과목을 아우르며, 사회과학은 역사, 지리, 공민, 자연과학은 수학과 각종 이과목들을 다룬다. 이 과목군은 비단 고등학교뿐만이 아니라 중학과정에서도 중시되어 국어(일본어), 영어, 수학, 사회, 이과는 5교과(五教科)로 묶여 총칭되고 있다.

일본은 교육분야에 공공재정을 적게 투입하는 국가 중 하나이나 그에 비해 교육 성취수준은 높은 편으로, PISA나 TIMSS등 국제학력평가에서 항상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곤 한다.

일본의 4년제 대학 평균학비
대학종류 입학료
(1학년)
수업료
(연간)
기타 납부비
국립대 282,000엔 535,800엔 +a
공립대 397,595엔 537,960엔 +a
사립대 269,481엔 857,763엔 187,007엔

대학진학율은 대략 50%로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근래 대학진학율이 증가하는 추세 하에 있다. 다만 대학진학율 증가보다 학생 인구규모의 축소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부실대학들이 통폐합되어가고 있다. 재미있게도 일본에서는 여성 대학진학율이 남성 대학진학율보다 높다.

일본의 대학교 학비는 그리 싸진 않은 편이다. 2015년 도쿄대를 포함한 국립대의 연 수업료가 535,800엔에 이르며 1학년의 경우 입학금을 내야 하는데, 입학금만 해도 282,000엔이다. 게다가 의대, 약대, 예대같은 학부에서는 따로 설비, 실습료까지 받기 때문에 실질적인 국립대 연간 학비는 최소 연 60~70만엔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공립대학의 학비는 국립보다 조금 더 비싸며, 사립은 국공립의 1.5배 수준이다.

일본의 대학학비는 국제적 기준으로 봐도 비싼 축에 속하나, 학자금 공공대출제도가 잘 완비되어 있어서 채무상태에 있는 학생 비중은 미국이나 북유럽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다.


일본의 교육체계는 그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최근에는 학생들의 무기력증이 일본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재단법인 일본청소년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중학생들이 하루 평균 학교나 집, 기숙사 등에서 공부하는 데 들이는 시간은 8시간으로, 중국 중학생(14시간)이나 한국 중학생(10시간)에 비해 낮지만, 교육 스트레스는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는 21세기 들어 실시한 유토리 교육으로 인한 폐해를 원상복구하기 위해 교과내용의 난이도를 올리고, 토요일 수업을 부활시키는 등의 정책에 따른 피로감으로 보인다. 교내에서의 따돌림(이지메) 문제는 고질적인 문제이다. 비록 일본의 교내 따돌림 문제의 폐해수준은 미국이나 중국, 한국에 비하면 완만한 수준이나[45] 여전히 큰 문제점 중 하나로 남아있으며, 최근 증가하고 있는 일본 내 등교거부 현상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그밖에 교육내용에 관한 문제 제기도 존재한다. 일본의 공공 교육이 정부 정책의 영향을 과도하게 받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패전 직후에는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민주주의 교육, 세계화 시대에는 글로벌 경쟁을 위한 경쟁주의, 애국심 교육에 치중하여 정작 개인의 행복과 복지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본 내에서 표출되고 있다.

사회제도

세금제도

일본은 일본국 헌법 제30조로 국민의 납세의 의무를 명문화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직접세 제도와 간접세 제도를 모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면 간접세보다는 직접세의 비중이 더 높은 편이다.

이러한 구조는 일본의 세제전통에서 유래한다. 종전이후 쇼와시대 일본의 법정최고소득세율은 75%였다. 그러나 냉전무드가 해소되고 세계화가 진척됨으로 인해 자산의 초국경 이동현상이 심화되었고 일본 정부도 직접세 인하의 압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80년대부터 소득세율을 점진적으로 인하하였다. 그러나 직접세의 인하는 정부재정에 압박요인으로 작용하였고, 일본 정부는 국고수지를 맞추기 위해 1988년에 종래에 없던 소비세를 도입하였다.

2000년대 말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신자유주의 사상이 퇴조하기 시작하자 일본은 다시 정부의 역할 확대를 추구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직접세 인상카드를 꺼내들게 되었다. 2015년에 아베 정권이 일본의 재정난 타개책으로 법정 최고소득세율을 종래의 40%에서 45%로 인상하였고 소득세율 누진구간도 6구간에서 7구간으로 확장하였다.

소득세율 또한 아베 정권에 의해 인상된 바 있다. 과거 3%의 세율로 최초도입된 소비세는 1997년에 5%로 인상된후 줄곧 그 세율을 유지하였으나 아베 정권의 재정개혁의 일환으로 작년인 2014년에 8%로 인상되었고, 근시일 내에 10%로 인상할 안이 수립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 이외에 지방세금제도인 주민세가 존재한다. 현재 최고 주민세율은 10%+5000엔으로 시,정,촌급 단위 지자체의 주민세율은 정률 3500엔과 최고소득세율 6%이며, 상위 지자체인 도도부현급 지자체의 주민세율은 정률 1500엔과 최고소득세율 4%의 세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률주민 5000엔 중 1000엔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재해복구 대책으로 입안된 특별법률에 의거하여 징수되는 특별세이다. [46]

일본의 직접세율과 간접세율은 OECD가맹국들 중에서 낮은 편에 속하나, 기업세율은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높은 36.8%에 이른다. 2016년에는 29%까지 감소하였다.


의료보험 및 부조제도

일본의 각종 의료관련지표는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최선두권을 다투는 수준이다. 이는 일본 고유의 의료보험제도가 영향을 미친 결과로 분석되어지고 있다.

일본은 제국시대인 1920년대에 의료보험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바 있으나 지금과 같은 제도를 도입한 것은 1961년으로, 이때 신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하여 현재까지 전 국민의 공적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일본 공적건강보험의 의료비 급부루트는 크게 세가지로 나뉘는데, 기본적인 국민건강보험과 일명 조합보험으로 불리는 피고용자 건강보험, 그리고 특수한 목적하에 존재하는 공적자금 의료급부인 '공비부담의료'가 그것이다. 일본 국민은 국민건강보험이나 조합보험 중 하나에 반드시 가입하여야 한다.

일본의 가장 대중적인 공적건강보험인 조합보험은 직장인들을 위해 설계된 보험으로 보험에 가입된 직장인의 가족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것이 특징이다. 조합보험은 2015년 현재 가입자와 그 가족 의료비의 70%를 커버해주고 있다. 부연설명하자면 의료비 청구가 1000엔이 나오면 피보험자는 창구에서 300엔을 지불하면 되는 시스템이다. 과거에는 커버비율이 더 높았으나 지속되는 고령화로 인한 재정압박으로 그 커버비율이 줄어들었다. 국민건강보험은 조합보험에 가입할 여건이 되지 못하는(비경제활동 연령대 인구, 무직 인구 등) 주민들을 위해 설계된 제도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보험과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험으로 나뉘는데, 전체 가입자의 90% 가량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보험에 가입해 있다.

공비부담의료제도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이다. 이 제도는 영유아~중학생의 미성년자, 장애자, 편부모가정의 의료비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로 병원의 종류마다 지급율이 다른데, 정신병원의 경우 의료비 커버율이 약 95%이며, 재활병원이나 육성병원의 경우 커버율이 99%이다.

급속도의 고령화로 인해 노인복지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면서 2008년부터 고령자의료급부제도가 신설되었다. 이 제도는 공비부담의료제도의 노약자 버전이다. 다른 점은 공비부담의료제도 예산의 5배에 달하는 예산을 퍼먹는다는 점 정도이다.

일본 의료보험제도는 혼합진료를 커버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선진적인 기술을 활용한 고급의료의 경우 선진기술 사용으로 인한 추가비용에 대해서는 의료비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아동수당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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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동수당제도
2015년 현황
출생순번 연령/학력 수당금액(월)
첫째&둘째 3세~중학생[47] 10,000엔
3세 미만 15,000엔
셋째 이후[48] 중학생 10,000엔
~초등학생 15,000엔

일본은 출산율이 크게 후퇴하기 시작한 시기인 1972년에 아동수당법을 제정하여 자녀를 부양하는 서민층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기 시작하였다.

초기 아동수당제도는 매우 짠 편이었다. 1986년까지 지원대상이 셋째 자녀부터로 한정되어 있었으며(자녀가 두명이면 아동수당을 아예 못 받고 세명이라도 셋째 한명 수당만 받을수 있었다는 소리), 지원금액도 월 5,000엔으로 사실상 국민들의 육아에 큰 보탬이 되는 제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고령화와 노동인구 위축의 심각성이 사회에 대두되기 시작한 90년대부터 첫째 자녀도 수당을 받을수 있도록 개편되었고, 2010년 일본 민주당 정권에 의해 지급수당금액이 대대적으로 상향되었다.

일본의 아동수당제도는 서민층 육아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소득제한이 걸려있다. 2012년 6월에 개정된 아동수당법 최신판에 의하면, 아동수당은 대상아동 부양자 소득총액이 6,220,000엔 + 부양자 수 x 380,000엔 + 노인 부양자 수 x 60,000엔 미만의 아동에 한해서 지급받을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아동의 부양자가 편부모와 외할머니라면 부양자 두사람의 소득총액이 6,660,000엔 (6,220,000 + 380,000 x 1 + 60,000 x 1) 미만이어야만 아동수당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중학생까지만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생활보호제도

일본의 도도부현별 피생활보호인구 비중

일본국 헌법 제 25조는 국민의 최소한의 문화적 생활을 누릴 권리를 명시하고 있으며, 생활보호법은 이 헌법조항에 근거하여 제정되어 일본 복지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생활보호제도는 생활보호법에서 파생된 제도이다. 생활보호제도란 최소한의 문화적 생활을 누리기 위해 요구되는 가계예산에 미치지 못하는 수입규모를 갖춘 각 가계에 정부가 (최저생활비-가계수입)만큼의 부조금액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최저생활비 계상은 크게 3가지의 부조항목인 생활부조(가계 인원수 등), 주택부조(주택의 규모), 교육부조(초중학생 가계인원이 있을시 합산)의 합산으로 이루어지며, 그 이외에 장애자 가계원이 있는 등의 특수 상황에 놓인 가계를 위한 최저생활비 가산제도가 존재한다.

최저생활비 계산은 피수급가정의 주거지역에 따라서도 각기 다르게 계산된다. 일본에서는 전국 각 지역을 물가수준 등을 고려해 1급지, 2급지, 3급지의 세 계층으로 분류하여 1급지에 가까울수록 더 높은 최저생활비 척도를 설정하고 있다. 1급지는 주로 도쿄나 오사카같은 대도시이며, 3급지는 대개 변방 중소도시나 농촌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경기회복 등의 영향으로 비고령 수급인구는 줄고 있지만, 고령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 고령 수급인구가 그 이상으로 늘고 있어서 전체적인 부조수급인구가 점진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다. 2015년 7월 일본의 생활보호대상자 수는 2,165,278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1.71%를 차지하고 있다. 대국적으로 볼때 이와 같은 추세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전체 인구에서 점하는 생활보호대상자 비율은 농촌보다는 대도시 지역에서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생활보호대상자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일본의 도도부현과 시는 각기 오사카 부와 오사카 시로, 오사카가 2관왕에 오르는 명예를 획득하였다.

종교

일본 신토교의 상징 토리이(鳥居)

일본국 헌법 제 20조는 국민의 종교적 자유와 모든 형태의 종교단체 설립을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투탑 종교는 대승불교와 신토이다. 신토는 일본의 토착 다신교가 고대시대 황실의 후원을 받아 조직화된 종교이며, 대승불교는 6세기경 한반도를 통해 전파된 종교이다. 두 종교는 그 발상지와 그 성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융합되어왔는데, 이는 고대시대 황실이 양 종교를 모두 필요로 했고, 이후의 막부 정권들도 이를 계승했기 때문이다. 비록 일본 제국시대에 국가신토라 불리는 이데올로기화된 신토를 국가사상으로 밀면서 강제로 불교와 신토를 분리코자 한 적도 있긴 하나, 일제 패망이후로는 불교와 신토가 다시금 원래의 자연스러운 유불습합으로 복귀하였고 현대 일본 종교문화의 틀을 형성하고 있다.

각종 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의 적게는 84%, 많게는 96%가 불교와 신토 중 하나 이상의 종교를 믿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는 일종의 문화활동으로서 신사나 절에 들르곤 하는 인구들일 뿐으로, 열성적인 신도의 비중은 이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미국에 소재지를 두고있는 조사기관인 퓨 리서치에 의하면 일본 인구의 57%가 무신인구로 무신인구 비중이 세계에서 최상위권에 속했다.[49]

일본에는 하츠모데(初詣)라는 매년 정월에 신사에 가서 참배하는 문화가 있으며, 각 지역의 축제인 마츠리(祭/祭り)도 절이나 신사와 연관된 것이 많다. 이처럼 불교와 신토는 일본인들의 일상생활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이외에 중국 종교인 유교(특히 성리학)나 도교 또한 일본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는 일본에 16세기부터 전파된 유구한 종교이나 역사적인 박해 등으로 인해 그 전통에 비해 신도 수는 많지 않다. 2015년 현재 기독교 인구는 일본 전체 인구의 1%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인구에 비해 이들이 일본에 미치는 문화적, 정치적 영향력은 큰 편이다. 일례로 일본에서도 크리스마스는 주요 이벤트데이 중 하나이다.(그러나 한국과는 달리 공휴일은 아니다.) 그밖에 일본 내 외국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다른 지역의 대형 종교들(이슬람, 힌두교, 시크교 등)도 그 교세가 확장되어가고 있다.

19세기 말 근대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 내의 신흥종교 창설 움직임이 활발해진 바 있다. 근현대에 창설된 일본의 대표적인 신흥종교로는 창가학회가 있다. 창가학회는 불교계열의 신흥종교로 신도 수는 최소 250만명, 최대 827만 가구(창가학회측 주장)에 이르며, 오늘날 이들은 일본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자유민주당과 연합여당을 구축하고 있는 공명당은 이 종교계열의 정당이다.

스포츠

도쿄 돔

일본은 우수한 스포츠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로, 2016년 현재 전 세계에서 2번째로 돔형 스타디움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일본의 돔 스타디움은 야구나 축구같은 대중 스포츠 경기장으로 주로 쓰이나, 거대한 공연장으로 쓰이기도 하고 격투경기장으로 쓰이기도 한다.

일본은 세계 주요 종합격투경기가 개최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비록 미국의 종합격투경기(특히 UFC)의 규모와 인기에 밀리는 콩라인스러운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라이진FF, 슈토, IGF챔피언쉽같은 경기는 국제적으로 어느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의 네임드 격투가들이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올림픽을 개최한 국가이기도 하다. 일본은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고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미국, 소련에 이은 종합메달 수 3위를 달성함으로써 전세계에 자국을 PR하는데 성공했고,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권도 이미 따낸 상태이다. 동계올림픽 또한 2016년 현재까지 2회 개최하였다.

또 다른 대규모 국제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 또한 2002년에 한국과 공동으로 개최한 바 있다.


무술

일본의 주요한 전통적인 스포츠 중 하나는 바로 무술이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무술의 나라로 알려져있으며 실제로 유도, 유술, ,아이키도[50], 카라테[51], 검도 등의 본국이며 다른 나라들의 무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본디 유도는 갑옷 입은 무사에게 타격기가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무사들이 상대방을 던져서 땅에 떨어지는 충격으로 데미지를 입히기 위해 만든 무술이다. 제아무리 갑옷으로 중무장하더라도 낙하해서 생기는 부상까지 갑옷이 막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며 이를 무사들이 이용해서 만든 무술이 바로 유도이다.

본디 카라테는 오키나와에서 발현한 무술로 오키나와와 중국을 오가는 상인들에게서 배운 무술을 일본식으로 어레인지한 것이다.

요즘 브라질 주짓수가 유명해졌는데 원래 일본 유술이 시초다. 주짓수란 명칭도 한자 유술의 일본발음 주지츠(주주쓰)에서 나온거다 마에다 미츠요 (콘데코마) 이 사람이 브라질가서 그레이시 가문한테 유술을 가르쳐줬고 브라질내에서 이렇게 발전한게 브라질리안 주짓수다. 일본은 너무 위험하다고 점점 금지하고 올림픽에도 진출할겸 유도 (주도) 중심으로 가게되었다. 물론 브라질이 현대에 굉장히 발전시켰기에 브라질 무술로 봐도된다.

러시아 삼보도 일본의 유도 영향 받아서 상의 도복과 유도 기술들이 있다

야구

일본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포츠 종목은 야구이다. 일본에서 아마추어 야구는 과거 제국시절부터 존재해 왔으나, 프로야구는 전후인 1950년 프로리그인 NPB가 창설됨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일본 메이저 프로야구리그에는 12개의 팀이 존재하고 있으며,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의 2개의 리그로 나뉘어져 있다.

그 이외에도 마이너 야구리그인 이스턴 리그와 웨스턴 리그가 존재하며, 일부 지역에서 깨알같은 독립리그 또한 개최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프로리그 못지않게 전국고교야구 토너먼트 또한 매 시즌마다 대중의 큰 인기를 사고 있다. 이 토너먼트에서는 각지의 선발전에서 승리한 고교팀들이 최종적으로 코시엔(甲子園)에서 그 자웅을 겨룬다.

국제대회를 졸렬하게 운영하다 한국한테 결승을 뻇기면 결승 생방을 취소하고 국뽕방송을 트는 선진 스포츠 강국이다

오타니가 설렁탕을 사와서 상까지 다 차리고 밥까지 다 말아서 숟가락으로 입에다 떠 줘도 못 먹는 팀이다.

축구

축구는 야구에 비해 일본에서 그 인기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두번째로 인기가 많은 스포츠이다.

1993년에 프로축구리그인 J-리그가 성공적으로 런칭됨에 따라 아시아 최대축구리그가 되어 유럽에서 퇴물이 된 선수들의 주요 노후자금 마련처가 된 바 있으나, 최근에는 돈을 무더기로 갖다바른 중국리그의 번창으로 그 지위를 빼앗겼다.

월드컵에 나가서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뜬금포 카메룬덴마크를 때려잡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나 그 이외에는 종범이다.

열도인들이 자기 나라 축구는 잘하는데 실전에 약하다며 바들거리는 분야이기도 하다. 아니 실전에서 못하면 못하는 거지...

이런 일본축구를 한국이 3대2로 역전패 당했다.

J리그 클럽의 경우는 대륙대회인 아챔만 나가면 힘을 못쓰고 광탈 당하는게 완전히 관습화 되었다. 일본인들은 도대체 왜 아챔에서 열심히 뛰지 않는거냐며 분통을 터뜨리지만 그건 열심히 안 뛰어서 진게 아니야.

그래도 J리그의 미래는 K리그보다 훨씬 낫다. 일본 클럽들이 제 아무리 대륙 대회에서 죽을 쒀도 셀링리그화 되버린 옆 동네의 K리그와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는 중. 최근에는 많은 돈이 걸린 중계 계약을 따는데 성공한데다가 리그 우승 상금도 대폭 높여 놓은 상태다. 그래서 그런지 포돌스키 같은 이름값 높은 선수도 영입하고 있다.

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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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 스포츠 중 하나로, 여전히 일본에서 세 번째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포츠이다.

최고의 스모선수에서는 요코즈나라는 칭호가 주어지는데, 요코즈나는 파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랑감 TOP 10에 항상 들고 있다.(스모선수들은 돈은 넘쳐나는데 살 때문에 병 걸려서 빨리 죽는다. 결국 죽으면 그 모든 돈은 아내한테 넘어가므로 인기가 많을 수밖에)

최근의 스모판에서는 외국인 선수, 특히 몽골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몽골인들이 10년이상 요코즈나 클라스를 독점하고 있다.

스모 선수가 다른 곳으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역도산.

스모 선수 되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일단 체급이 상당히 커야 된다.

하루 일과가 빡빡해서 먹고 바로 자고 일어나서 훈련 죽어라 하고 먹고 자고 일어나서 훈련 이런 식으로 체급을 죽어라 막대하게 키운다.

이렇게 키워도 프로도 못 되면 미래가 없다 봐야 된다

볼 거 없을 때 보면 은근 재밌는데 파오후들이 날렵하게 움직이는 것이 시청 포인트. 매일 NHK에서 오후 4시에 스모경기를 방영한다.

알아보니 승부조작이 있다 카더라...

관련 루머 및 여담

신분제 사회인가?

아직도 전근대적 풍습인 신분제가 남아있다. 법에서는 당연히 신분제가 없다고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신분제가 있다.

과거에 비해선 나아지긴 했다. 일례로 선거로 뽑힌 현 오사카 시장이 부라쿠민 출신이다. 부라쿠민 차별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현재까지도 암암리에 '부라쿠민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취직, 결혼 등에서 감당할 수 없는 불이익이 알 게 모르게 있다. 사실 지금의 '부라쿠민 문제'는 신분제 문제가 아니라 주거환경 문제이다. 과거 부라쿠민들이 살던 동네나 지구가 인프라가 열악하여 양질의 주거지에서 밀려난 빈민들이 이곳에 많이 거주하고 있고, 이 부라쿠민 동네에서 자란 애들이 사회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일본에서 '부라쿠민'은 본래 의미보단 구 부라쿠민 동네에서 자란 가난충들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인다.

일본 GDP가 얼만데 정부에서 빈민들이 달동네 산동네에 몰려사는걸 방치하냐? 그 돈 들고도 저렇게 방치하는걸 보면 차별하는게 맞다. 돈 많은 지금도 저 모양으로 방치하는데 돈 없었으면 무슨 꼴 났는지는 뻔하다.

인도 카스트 제도의 마이너 버전. 과거에는 훨씬 심했다. 조선시대보다 심한 신분제를 보여주던게 일본 에도시대다.

다만 신분간 접촉 및 이동 자체가 금지됐었다...까지는 명목상이고, 일본에서도 신분간 이동은 존재했다. 에도시대 중기에 이르면 사무라이들이 대거 몰락하게 되는데, 당시 부를 획득한 상인들이 몰락 사무라이들의 족보를 구입하고 사무라이행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굳이 이런 편법을 쓰지 않더라도 능력있는 죠닌들을 막부나 번이 관료로 채용하면서 사무라이 감투를 던져주기도 했었다. 애초에 메이지 유신 자체가 도시민에서 사다리타고 올라간 애들이 많은 하급 사무라이 집단과 상공인 계층이 연합해서 이루어 낸 거다.

법적인 신분제도는 일본제국 시대까지는 존재했다. 과거 일본제국은 종래의 전통적인 공가 및 사족 제도를 폐지하는대신 화족제도라 불리는 새로운 신분제를 도입하였는데, 이는 제국 신정부가 구 기득계층 집단을 회유하여 통치체제의 공고화를 꾀하기 위함이었다.

과거 일본제국의 화족체계

  • 황족 : 일본 천황가
  • 왕공족 : 구 조선왕조 ~ 대한제국 왕실
  • 화족(오등작): 옛 귀족 출신 가문
    • 공작 : 유력 공가들, 도쿠가와(에도 막부) 본가, 모리(쵸슈 번) 본가, 시마즈(사츠마 번) 본가, 이토 히로부미(구 일본제국 총리), 오오야마 이와오(러일전쟁 당시 육군원수) 등
    • 후작 : 구 류큐 왕실, 이완용, 호소카와 가, 쇼군덴노 대전 당시 황실 지지한 일부 가문들, 도고 헤이하치로(러일전쟁 당시 해군제독) 등
    • 백작, 자작, 남작 : 미만 잡

방사능 괴담

반일

야레야레 일뽕들이란.png 주의! 이 글에 일뽕이나 역센징분탕질을 치고 갔습니다.
씹덕 일뽕이나 역갤일뽕 냄새가 풀풀 납니다.

일뽕 씹덕이나 역센징이 싸지르고 간 폐기물에 대한 편집 취소를 미루지 마세요.
종종 역센징들이 이 글에 들러서 분탕질을 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들에게 위키의 좌표 대신 후쿠시마 원전의 주소를 가르쳐 주세요.

일본 문화 좋아하면 친일매국노 수꼴이라는 씨발새끼들이 있는데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김대중때에서야 한거다.

이유는 왜색문화를 차단하기 위한 군사정권의 잔재이다.

이 문서 쓴새끼들 일본을 정말 사랑하나보다 존나 읽다 너무많아서 쭉 내렸다 씨발 중국 글 읽고 거지같아서 일본 글은 어떤가 와봤더니 여긴 더병신이네

ㄴ ㄹㅇ

 ㄴ 드립 기대하고 왔건만 무슨 위키백과 온줄 알았네 씹노잼
ㄴ 병신 아님 좆병신임

ㄴ 역시 누구보다 일본을 사랑하는 디키러들...

http://www.npa.go.jp/sosikihanzai/kokusaisousa/kokusai/H25_rainichi.pdf 일본 경찰청 통계에서 나온 비율로 볼 때에도 인구 대비로 볼 때 유별나게 높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태국을 비웃을 자격도 없는 듯. 단, 옛날에 비해서 약간 높아지기는 했다. 문서 18페이지의 << 국적 지역별 위반법령별 검거상황 >> 표를 보면,

헤이세이20년에, 매춘방지법 검거건수로 1위 중국(81건), 2위 한국(18건), 3위 태국(17건), 검거인수로는 1위 중국(35명), 2위 한국(16명), 3위 태국(15명), 4위 브라질(1명)

헤이세이 25년에, 매춘방지법 검거건수로 1위 중국(50건), 2위 한국(36건), 3위태국(6건) 검거인수로는 1위 중국(31명), 2위한국(13명), 3위 태국(4명) 순이다

http://www.npa.go.jp/sosikihanzai/kokusaisousa/kokusai/H22_rainichi.pdf -> 옛날에 나와서 퍼진 이 자료에 의하면 원래 20% 정도였다.

平成22年中の来日外国人に係る売春防止法違反の検挙件数・人員は、144件・90人で、前年に比べ、件数で129件(47.3%)、人員で8人(8.2%)それぞれ減少している。 - 70 - 検挙人員の違反態様別ではいわゆる街娼型売春事犯である勧誘等が38人(構成比42.2%)で最も多く、国籍・地域別では、中国人が53人(同58.9%)、韓国人が18人(同20.0%)となっている。 검거 숫자에서 중국인 58.9%, 한국인 20%라는 뜻이다.


이런 사실들로 보아 한국놈이나 한국년이나 일본인들에게 위안을 얻는다.

Japan, Nippon 호칭

어떤 이상한 놈들은 한국이 Korea인 이유가 원래 Corea였는데 일본이 영미권 국가 올림픽 같은 데에서 자기들보다 먼저 나온다고 'K'가 되었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Japan' 대신 'Nippon'을 쓰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런 유언비어는 어디서 나오는지...... Japan이라는 말은 일본을 쭝국말로 읽은 지펀이 변형된 거라 짱개혐 쪽바리들은 별로 좋아하진 읺는다.

여행추천지수

종합 : 3.7(파오후 오타쿠들의 성지이다. 방사능 각오할 자신 있으면 가도 된다) 환경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치안이 한국 급으로 좋으므로 한 칸 올렸다. 최근 일본 내 한국인 관광객을 향한 혐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으나 다짜고짜 일본인들에게 봉변당해도 상관 없다면 가도 된다. 근데 자기가 어느정도 등치있으면 쪽바리새끼들도 긴다. 요즘 중국인들이 일본가서 잠적한다 하더라.. 일본이 더 낫다고 가서 살생각말고 여행까지만 다녀와라. 젤리같은 음식 무조건 거르고 단타로 다녀오던가 하는게 가장 좋다. 이 땅은 정말 미래가 없다.

관련문서


각주

  1. 일본 국토교통성 국토지리원 DB
  2. 일본 총무성 통계국 인구추계
  3. 그러나 실제로 일본 천황은 워낙에 권력이 거의 없어 실제로는 걍 없는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명색이 전세계 유일한 황제이긴 하지만 다른 군주국들인 영국, 스페인,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등의 왕들보다 권력과 재력이 전혀 없는 그야말로 이름만 황제이다. 실제로 일본을 다스리는 사람은 총리대신이다.
  4. 일본 내각부 GDP통계
  5. 일본헌법 제20조
  6. 신토불교 신자들이 많긴 하다.
  7.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중국 문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난건 아니다. 에도막부 말기인 19세기까지도 일본에서 중국 문물 수입은 주류계층의 지지를 받아 활발히 이루어졌다.
  8. 당시 미국은 일본을 식민지화할 계획 자체가 없었다. 페리 함대가 일본의 개항을 종용한건 대중국 무역로 중간의 석탄보급항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9. 그런데 일본인들은 천년동안의 막부 지배에 익숙했던지라 한동안 천황이 뭔지도 몰랐다.
  10. 테이코쿠서원 DB
  11. 일본 재무성 DB
  12. 중일전쟁 포함
  13. 영국은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으로 근동에서는 흑해에서 일어난 크리미아 전쟁, 중동에서는 영국식민지를 통한 중동방어, 극동에서는 일본을 통한 러일전쟁을 지원하고 있었고, 미국의 경우 만주철도를 얻고싶어했으나, 러시아가 무작정 만주를 쳐먹는 바람에 그것이 무산될 판이었다.
  14. 결정적인 사건은 러시아 발트함대의 전멸인데, 이는 영국의 공작이 꽤나 먹혀들었다. 영국은 중립을 선언했으나 일본에 자금지원을 해주었고, 극동에 함대가 없던 러시아가 발트함대를 동아시아로 파견하는 동안 러시아에서 요청한 영국항구에서 석탄공급(아마 인도, 중동쯤이라 생각된다.)을 요구했다. 영국은 좆까라고 했고, 발트함대는 마다가스카르(ㅋㅋㅋㅋㅋㅋㅋ)까지 가서 석탄을 공급받고 오는동안, 일본은 이탈리아에서 건조된 아르헨티나 소유 군함 두 척을 매입하여 영국 해군의 보호(...?)로 대러함대의 전력으로 포함시켰다. 그 이후 지칠대로 지친 발트함대는 똥송한 동해(혹은 일본해)에서 전멸당한다.
  15. 사실 일본이 우겨댄 것이다. 초기에는 영국은 웨이하이와 홍콩을 지키기 위해 일본의 군사력을 필요로 하여 참전을 독려했고, 실제 독일에 선전포고한 8월 4일에 일본에 이러한 사실을 전달했고, 8월 7일에는 일본해군의 출동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이 이에 준비했다는 듯이 물자, 영국은 일본의 의도를 의심(...?)하게 되었고, 일본의 참전을 취소할 것을 요구한다.(ㅡㅡ?) 중국도 중립을 선언하고, 독일도 자오저우만을 일단 중국에 반환할 것을 밝혔는데, 이렇게 되자 가토 외상은 전쟁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영국에 요청한다.(...) 이에 영국은 전투 지역을 일본의 해상무역 보호에 필요한 지역에 국한한다는 조건으로 일본의 참전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제한을 수용할리가 없었다. ㅋㅋㅋ -세계외교사, 김용구 지음-
  16. 1.모든 국가의 영토보전 및 주권존중 2.타국의 내정불간섭 3.통상기회균등 4.비평화적 방법에 의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현상변경의 반대 그리고 일본군의 중국주둔이 불법적인 것이라고 인정할 것.
  17. 사실 기습이라고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1941년 12월 6일 시게노리 외상이 7일 오후 1시를 기하여 진주만 폭격을 미국에 전달하라는 전문을 주미대사관에 발송했는데, 노무라 대사가 그 문서를 받은 것은 미국시간으로 2시 20분이었다. 그래서 진주만이 기습공격이 된 것이다. 하긴... 30분 전에 선전포고 하는 병신이 어딧니...
  18. 한국전쟁 연간특수규모는 당시 일본 GDP의 3.5% 규모 선으로 결정적인 요인 수준은 아니었으나, 경기회복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 출처 : 미와 료이치, '일본경제사'
  19. 오늘날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상호방위'관계이지, '동맹'관계가 아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
  20. 그러나 플라자협정이 바로 일본경제에 직격탄을 때린건 아니다. 오히려 플라자합의 직후엔 일본 경제에 미친듯한 버블이 끼면서 (환율 변동에 의한 착시지만) 일본의 경제력이 몇십% 뻥튀기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때 이 버블에 취해서 환율 변동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는 커녕 갈라파고스화가 일어나 스스로 몰락하게 되었다.
  21. 사실상 일본의 486 세대. 다만 대한민국의 486세대처럼 민폐는 끼치지 않는다
  22. 광역권 기준. 행정구역 상 인구는 제 3위.
  23. 기온은 평균, 강수량은 합계
  24. 일본 법무성 DB
  25. (天皇は、日本国の象徴であり日本国民統合の象徴であって、この地位は、主権の存する日本国民の総意に基く)
  26. (天皇の国事に関するすべての行為には、内閣の助言と承認を必要とし、内閣が、その責任を負ふ)
  27. 율령시대 행정구역명의 잔재이다.
  28. 이 조항은 현재까지도 폐지되지 않고 남아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29. 근데 정작 이렇게 우기면서 한반도에 자위대 상륙으로 논란이 발발할때 우리가 북한에 들어간다고 해도 우리의 승인이 필요한다고 했을때 "니네는 휴전선 이남만 니네 땅이잖음" 이라는거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30. 원래는 납북일본인 해결로 화해무드를 탈려는가... 싶더니 돼지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고 점점 북한이 배쩨라는 모습을 보이면서 관계개선은 시궁창으로 갔다
  31. 출처 : 2015년 일본 국방백서
  32. 일본에서는 호위함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33. Allianz Global Wealth Report 2014
  34. Credit Suisse Wealth Report 2014
  35. 한국과 일본 모든 근로소득세 납부자를 표본으로 잡아서 신뢰성이 높은편이다
  36. 사회보험은 한국의 4대보험과 성격이 같다고 보면된다.
  37. 1인기준, 국민연금, 고용보험, 건강보험, 산재보험을 제할경우
  38. 재단법인 일본 석탄에너지센터
  39. 독립행정법인 JOGMEC
  40. 1차 출처 : PWC(2010)
  41. 단, 대홍콩 수출을 대중국 수출에 포함시키면 대중국 수출량이 더 크다.
  42. 조지아대 COE 논문
  43. 문부과학성 / 사립학교
  44. 문부과학성 / 사립학교 학비
  45. 조선인터뷰
  46. 일본세리사연합회
  47. 일본의 연령은 한국의 연령과는 달리 출생시 0세부터 시작한다.
  48. (설명충)예를 들어 자녀가 세명 이상일경우 셋째자녀부터는 이 기준의 적용을 받지만, 첫째와 둘째는 위 기준의 적용을 받는다.
  49. 퓨 리서치
  50. 한국의 합기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최용술이 다케다 소가쿠의 양자로서 배운 대동류 합기무술을 열화시킨 것이 합기도. 스트리트파이터로 비유하자면 고우켄, 가 쓰는 풍림화산류랑 히비키 단의 최강류의 차이라고 보면 될 듯
  51. 오키나와 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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