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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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고화질.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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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서울에선 그이를 보기 위해 인파가 몰려들어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시 많은 한국인들과 국뽕들의 저주로 사회적 매장을 당해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본 대상을 찬양하셔도 좋으나 너무 나가진 마십시오.
태극기.jpg
태극기.jpg
대한민국의 승리!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펄럭-
갓재규.jpg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분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이 문서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거나 안타깝게 명을 다하지 못한 분을 다룹니다. 진짜 뒤져야 하는 놈들은 안 뒤지고 이런 사람들만 돌아가시니 정말 마음이 아파옵니다.
헤븐조선.png 이 글은 갓한민국의 자랑거리를 다룹니다.
- !!!!!!!!

이러한 갓-한민국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전세계와 우주가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키아~ 주모오오!! 국뽕 한사발 더!!

해돌이.png
이 문서는 대한민국 해군 그 자체를 다룹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고 있는 인물은 대한민국 해군의 상징이자 영웅이며,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깐다면 용왕신의 저주를 받아 바다에서 꼬르륵할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必死則生必生則死!
고마워요 필승해군!
해군마크.png
세종대왕.jpg 이 글은 갓조선의 자랑거리를 다루옵니다.
한국역사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

이러한 갓-조선의 세상에서 살아갔던 조상님들에게 당시 전세계와 짱깨 들이 경이로움을 느끼옵니다.
나랏말싸미 듕긕에다라!!

3553122735 61d0427d.jpeg 주의! 이 문서는 클라스가 다른 것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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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문서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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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랍게도! 이 문서는 디시위키 문서임에도 의외로 정밀하고, 적당한 양식을 갖추었습니다.
또 고급스러운 언어유희와 필력까지 겸한 상질의 문서라 읽는 이로 하여금 뜨거운 감동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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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 수작 부릴 생각 마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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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의 인물은 그야말로 전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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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히 이야기 하는데 절대로 까지 마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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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대첩을 이끌었거나, 그에 준하는 쾌거를 이룬 세계 각국의 명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의로움과 지혜, 문무까지도 겸비하여 진정한 군인, 무인(武人)이라 할 만한 인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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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깐 눈물좀 닦고 ㅠㅠ 이 문서를 보고 광광 우럮따 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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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캐도 사망할수 있지만 이 캐릭터는 매우 강하므로 사망하는법이 절대로 없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강해서 사기캐를 뛰어넘는 위엄이 돋보입니다. 만약 이 캐릭터를 픽하시면 그냥 마음껏 하십시오!
하지만 남이 쓰면 궁극강캐지만 당신이 쓰면 이길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호세의 참교육.jpg 이 문서는 참교육에 관련된 것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참교육의 은혜를 다룹니다.
만일 참교육을 거부할시 성적은 개좆망행이니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헤이, 영쑤!! 돈 두댓!"
참교육.png
한국의 위인 TOP 4
세종대왕 이순신 안중근 유일한
대한민국 9대 명장
을지문덕 시득 강감찬 이순신 안중근 김신 손원일 채명신 김재규
한국의 인간흉기
지략 첩보전 고자샷 오함마 발터ppk 쌍권총 빠따
이성계 척준경 이순신 무타구치 렌야 상하이 조 제너럴 조 재규어 김상옥 이호성
이순신.jpg
이순신(李舜臣)

Sunshin "the Saint Hero" Yi

"불멸(不滅)의 성웅(聖雄)"

인물 정보
생년 월일 1545년 음력 3월 8일[1]
초명 응칠
출생지 조선 한성부 건천동

(현 서울시 중구 인현동 1가 31-2)

순국일 1598년 음력 11월 19일[2]
국적 조선
본관 덕수 이씨
시호 충무(忠武)
여해(汝諧)[3]
기계(器溪), 덕암(德巖)
벼슬 사후 영의정 추존
업적 한반도와 한민족, 그리고 나라를 구하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 이순신

[4]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必死則生 必生則死
 
— 이순신

[5]

싸움이 급하다. 부디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戰方急 愼勿言我死
 
— 이순신

광복절에 이 문서 보니 국뽕이 치사량까지 차오른다 ㅠㅠ 장군니뮤... 부디 환생하셔서 썩어가는 이나라를 구원해주소서....

ㄴ 안돼 이순신 장군님이 헬조선을 보시면 얼마나 슬퍼하시겠어

ㄴ 당시 조선도 지금 만큼 썩었었으니 상관 없다.

소개[편집]

생전에는 명장, 사후에는 전설.

당신이 알고 있는 세계구급의 명장, 이순신

성웅(聖雄)[6] 이순신(李舜, 1545~1598 왜놈흉탄에 서거)원래는 신하臣이다.

이름을 풀이하면 중국 전설속의 황제라 불리는 순임금의 신하가 되라는 뜻인데... 왕이 선좆인 바람에 엄청난 고난을 거친다.

이미 어릴때부터 정직한 면모가 보이셨다. 친구들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있을때 왠 틀딱충이 와서는 "어린 놈이 공부는 안 하고 쳐놀고만 있다."라며 틀딱질을 시전하자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우리는 오늘 할 만큼의 학습을 모두 마치고 남는시간에 노는 것인데 그게 뭐가 잘못된거냐"며 팩트를 던졌고 이에 자동아닥된 틀딱은 보통 아이가 아니라며 그대로 뒤돌아갔다고 한다.

헬조선식 열정페이 인재 대우를 이기고 나라를 구한 인물

28전 28승의 전승을 이룬 장군

조선의 몇안되는 급 인물이다. 갓순신,갓갓신,갓갓갓, 순신 더 씨 리, 에드미럴 리, 장군니뮤, 名將 등등 무슨 수식어가 붙어도 부족함이 없는 영웅이다. 디시위키에서도 유일하게 진심으로 존경하고 결코 까지 않는 해전의 패왕이다. 현실 가상 안따지고 물어뜯는 험난하고 가혹한 디씨위키에서 모두들 인정하는 얼마 없는 영웅

그러나 애미없는 일본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어 위키백과로 이순신을 검색하면 명군에 합병됐다느니 명량해전 이기고 그냥 존나 후퇴만한 병신이라느니 심지어는 노량해전에서 포위당해 일개 졸병들에게 도륙당했다고 나온다. 참고로 임진전쟁을 검색하면 갑자기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며 심지어는 이 사실을 한국인만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서술한다. 우리가 패배한 전쟁을 배우지 않는거 처럼 일본도 승리한 전쟁만을 기록하는건 이해할만 하지만 역사왜곡까지하는 만행을 저질르고 있으니 일본어 할줄아는 디시인은 당장 반달해서 참교육을 시전해주자.

ㄴ물론 일본 사학계는 도요토미가 말년에 노망들어 지랄했는데 웬 자연재해급 괴물한테 탈탈탈 털렸다고 순순히 인정한다.

근데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남긴 평같은걸보면 그 당시 적군마저도 인정하는 갓이다 크으... (구한말 때 왜놈들 장군인 것처럼 왜곡하며 관장사한 건 용서가 안되지만.)

그는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도 나라를 생각하며 마지막 승리까지 생각한 장수다.

만약 이 영웅에게 조금이라도 반심이 든다면 매국노의 기질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 문서는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열정적인 찬양만 있으므로 자신이 매국노라 차마 갓본을 생각해 읽을 수 없다면 뒤로가기를 누르자.


몇몇 덕들은 치트공이라고 부른다. power overwhelming이라도 친게 아닌가 싶다.

사실 명량해전은 치트키 쓰신거 아니면 설명하기가 겁나 곤란하다. 팩트만 깨놓고 상황설명을 해주면 거의 열이면 아홉이 '헛소리하고 있네. 아무리 이순신이어도 그건 뻥인데?'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실록과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 따위를 아무리 읽어보아도 그게 사실임에도 대충 반응들이 저지경이다. 진짠데 안믿어주는 사람보고 너무 머라하진 말자. 그렇게 만든 사람이 충무공 본인이시다....물론 충무공 본인이 난중일기에 이 승리는 운빨이었다고 인정하기도 했지만, 운빨만으로는 절대로 못 해낼 일이었다.

여하튼 까는것에 특화된 디시위키러들도 함부로 키보드를 놀리지 못하게하는 위엄을 가진 짱짱 갓 영웅이심.


조선 삼도수군통제사와 명나라 정1품 도독을 동시에 맡은 원 오브 더 제너럴[7]

명나라 벼슬로는 선조와 동급이시다...진짜다....


개씹쓰레기 마인드에 뒷통수 전문 상사[8]능력치 개좆망에 팀킬 전문 술꾼 동료를 두고도

전무후무한 나홀로 원맨 극강 하드 캐리 연승을 보이며 망해가던 나라를 구한 군신(軍神)이다.

세종대왕과 함께 조선의 성인

그가 쓴 난중일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최전방 지휘관이 무려 7년간이나 일기를 썼다는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케이스.

당시 해군으로 치면 무려 쓰리스타정도 되는 동명이인인 이순신 (무의)장군도 훌륭하시긴 했지만 이 문서의 이순신 장군님이랑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무의공이나 이억기 같은 분들 억울하시겠지만 할수 없다. 직장동료가 이순신일지 어찌 아셨겠냐만 팔자다.


마이.png 이 문서는 롤독충들이 좋아합니다.
이 문서는 롤독충들이 좋아하는 문서 입니다.
만약 PC방 주변에 롤독충이 있다면 키보드 자판을 컵라면에 싸서 먹이십시오

급식충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롤로 생각해보자. 우리팀 진영 3억제기 날라가고 울팀 실력은 브론즈5 씹 양아치 부활하자마자 계속 적쪽에 다이브해서 돈주는 고의트롤러(원균), 하는것도 없으면서 이순신을 향해 정치질하는 멘탈쓰레기 (선조, 참고로 니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정철새끼도 있다.), 그 외 쩌리 브실골들이 팀인 상태라고 보면 된다. (아이템은 코어 2개정도?) 그나마 이억기, 최호, 권율, 김시민, 곽재우와 같은 골드1~2급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몇몇은 고의트롤러가 사지로 내몰아 팀킬했다. [9]

상대방은 3바람+2화염+장로드래곤 버프에 바론 버프, 레드, 블루 다 먹은 상태. 3.5코어템에 전 지역 1밀리 오차없이 앞마당까지 전부 와딩되있고 넥서스 빼고 싹 다 털리고 실력은 마스터급 이상들이 포진되어있는 프로롤쟁이들이라고 보면 된다.[10][11] 이제 곧 넥서스가 밀리고 식민지가 되서 역사적으로 훨씬 오래 전부터 일본어나 배우고 갓본징을 찬양해야 할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그걸 한명의 풀템제라스가 바텀과, 탑을 넘나들며 5대1을(혹은 헥사킬모드처럼 6:1 아니면 그 이상되는 쪽수를) 기습과 포킹,낚시..심지어 바로 점멸유체화로 안빠지면 죽는게 확실한 6:1의 정면 한타조차도 가장 가까운 적과의 거리 900~1300을 유지하면서 극한의 카이팅으로 찍어눌러 한타를 이겨버린 뒤 바론을 스틸하고 혼자 넥서스를 부신다면 넌 믿겠는가? 최악과 극악인 상황에서 한때는 학익진과 거북선으로, 다른 한때는 고작 12척의 판옥선을 가지고 떼거지로 달려왔던 일본의 쟁쟁했던 무인들을 상대로 참교육을 시전한 것이다. 알다시피 당시 한반도에서 싸우는 것은 해전을 이기는 쪽이 승리하기 때문에 섬나라인 일본에서도 해전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것인데 치트키써서 다 밀어버렸다. 그는 그냥 군신(軍神)이다. 그가 나라를 지키자는 애국심에 군신이 와서 빙의했다라는 말도 있다. 너무나 기적과 같은 일이라 다른 창작물에서나 이순신에 관하여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 쓰거나 그리면 신화 판타지가 돼버려서 사람들이 안믿기 때문에 이야기 진행 명목하에 상식안으로 이순신을 표현한 것이다.

근데 그게 이순신장군님의 업적인거다...... 신이 트레이너 돌려서 게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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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시계로 한번 해본다

이 맵은 일리오스 맵이고 우물은 울돌목. 정치질하는 선조, 궁낭비하는 원균, 천상계 권율, 갓갓갓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남은 2명은 게임에 빛이 없다고 생각되어 중간에 겜 끄고. 선조는 정치질하느라 바쁘고 원균은 궁낭비. 권율은 선조 보이스에 멘탈이 갈려나가는 중이다. 원균은 상대팀 1~2명을 피해 우물쪽으로 왔고, 라인도 2~3명에게 밀려 우물쪽으로 모였다. 그때 루시우가 힐궁을 쓰고 5명을 어그로해 우물쪽으로 빠지게 했다. 루시우는 벽타기로 빠져나왔고, 상대팀이 1명이 남은 상태이며 그 1명은 개피. 루시우는 당연히 풀피이다. 그리고 상대팀 1명은 루시우한테 죽었다^^ 명량 끝.


의료선러시당해서 본진까지 털리고 gg칠 상황에 미친놈이 꼬불쳐둔 포풍함가지고 의료선 다 뿌셔서 살았다고 보면된다.

스1으로 따지면 맹스크 원균이 배틀 12부대를 가지고 그냥 싸우면 될것을 ㅂㅅ같이 느려터진 배틀로 도망만 가다가 ㅈ도안되는 저그 히드라 12부대한테 다 털리고 테란은 ㅈ망할 위기에 처했는데, 우리 프로토스인 테사다르 순신느님께서 겨우 하템12마리와 셔틀 4개를 데리고 ㅁㅊ듯한 신컨의 천지스톰으로 히드라 12부대를 조지고(+참교육) 테란을 구했다고 보면된다.

좀더 적절하게 포현해 보면 스타1에서 1vs1을 뜨는데 초반 일꾼 4마리 핸디켑과 초반러쉬 10분 제외를 가지고 게임하는데, 조선은 테란으로 겨우 바이오닉과 탱크 1~2마리 뽑고 앞마당을 먹고 있을때, 일본인 저그는 4~5멀티에 울트라 소때마냥 뽑고 처들어온다. 그걸 순신느님께서는 ㅁㅊ듯한 피지컬과 컨트롤과 전략으로 역전했다고 보면된다.

전쟁에서 중요한게 식량인데 이순신은 그걸 알고 짜장면 배달하는 보급선들을 오는 족족 파.괘 해버림 짱깨를 시켜도 치트키쓴 이순신이 길막하고있어서 못옴

식당도 없고 짱깨도 안오니 수많은 왜군들은 그자리에서 다 굶어뒤짐. 본진까지 털린 조선은 갓순신덕분에 gg못치고 짱깨기다리다 굶어뒤진 왜군들은 저승에서 짬뽕이나 시켜먹은거지

ㄴ 엄밀히 말하면 왜군들은 식량은 거의 현지조달하려 했다. 본국에서 실어오기로 한 건 병사랑 무기지.

ㄴ제발 보급이란 말이 먹는 것이다 라는 생각 좀 벗어나시기길...ㅠ

ㄴ이 시기쯤에 쓰인 경념이란 왜군 종군 승려의 일기에 따르면, 이 전투 이전에는 서울 칠 궁리나 하고 있었는데, 이때 와장창된 이후로 왜성이나 쌓는 식으로 거점 마련한 후 월동준비 걱정이나 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굳이 식량이라고 할 것 없이, 조총용 화약과 야전용 월동 장비등이었을텐데, 그게 묶이고 남해에 가라앉은 셈이다.

어느 비이버 지식인에서는 스타로 따지면 저글링 한부대로 골리앗 탱크떼 쳐바른거랑 비슷하다고 했다.

겜충이들 말 씹고 한화와 류현진 생각하면된다.

사실 비유할 것도 없다. 걍 1:50의 전설 뭐 이런걸로 하면 이해할 거 아냐. 14척vs300여척 이니까 에휴 결론은 원균이 개씹핵노답이란거지

한줄요약하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보급로를 찰지게 끊으심

사실 조선에 태어날만한 인물이 아닌데 번지수 잘못 찾아서 이 땅에 강림하셨다

이 분 정도 되는 사람은 세계사 찾아봐도 몇 없다. 아테네랑 페르시아와의 살라미스 해전에도 버금가는 전투를 보여주셨다

ㄴ 근데 살라미스 해전은 300 vs 1000이라 14 vs 300으로 붙은 명량 해전보다 훨신 사정이 낫다.

ㄴ 근데 화포수는 조선군이 더 많았잖아

ㄴ 배의 수를 봐라


류승룡이 동내형이었다.그리고 이사람 때문에 발탁되고 또 천거되기도 하였다.

ㄴ 류'성'룡이다 ㅄ아.

ㄴ 시계드립 쳐 보려다 망한 드립인 듯

이순신은 능력에 비해 승진이 늦었다.그때 당시,그니까 임진왜란 이전에는 무장의 승진의 조건은 윗사람들한테 얼마나 제물의 양을 많이 바치느냐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뇌물을 돌리지 않았다.또한 아예 뇌물을 돌리지 얺고 승진할 기회를 차버리기도 하였다.

이이가 만나자고 한것도 재상에 있을때를 한에서는 만나지 않겠다고 하고 한번은 활을 쏘는데 한 재상의 눈에 뛰어서 그 활을 주지 않겠냐는 것도 거절하였다.

또한 그때의 장군들이 많이 하던것쳐럼 군인들을 막노동에 동원하지도 않았으니 참장군이라 할수있다.사람됨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다.

이런 시대에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높은 관직에 올라라간데다가, 권력이 있는데도 조금도 자신의 사욕으로 사람을 부리지 않고, 자신의 책무를 아주 꾸준히 성실히 하는 갓갓갓을 본받아야 하고 찬양해야 한다. 괜히 나라 구한 갓이라고 존경 받는게 아니다. ㄴ 오 신이시여ㅠㅠㅠ

그런데 이런 쪽발 일본놈들은 이순신 장군님이 무방비의 보급선을 공격하고 도망만 치는 졸렬한 놈이라고 하더라.

애초에 제일 중요한 보급선이 무방비인게 문제아님? 좆병신 인증잼

일본위키를 안가봐서(사실 가도 일어를 몰라서...;;) 잘 모르지만 일본애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조상님을 겁나 멍청이로 생각한다는 결론이 난다. 일본수군은 도선+백병전 형태로 싸우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이순신과 붙었던 장수들의 면면을 보면 알수 있고, 일본도 나름 섬나라라 해상전이 없지 않았으며 한반도 남쪽이 왜구들에게 털리느라 늘 골머리를 앓았다는 기록들과 을묘왜변까지 생각한다면 일본군이 그 중요한 보급선을 무방비로 운행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자기들 조상님 팀킬밖에 안된다. 일본수군이 단지 드랍쉽이었다면 칠천량에서도 원균이 이겼어야 한다. (다만 이 대장균같은 놈은 바다에 떠서 싸울 생각을 안하고 수군을 다 상륙시켜서 일본군에게 횟감으로 바쳤던게 문제라서 무방비 드랍쉽이었어도 이길수 있겠긴 했다 카더라...;;) ㄴ이때 왜군들이 싸운 해상전이라는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해상전을 생각하면 안된다. 맞닿아서 쌈박질하는 해상백병전을 생각해야한다.

이순신의 업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편집]

위에서 롤충들이 설명했지만 현실은 어땠을까?

흔히 매체물에서는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에 대해 열세였던 것으로 묘사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당시 삼도통제사 휘하의 조선수군 병력은 1만여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일본수군 전체병력인 9,500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래서 미디어에서는 병력 대신 선박 척수를 가지고 일본수군이 우세였다는 뉘앙스로 설명하곤 하지만 이는 북괴 해군이 한국 해군보다 강력하다는(선박 수를 가지고 숫자놀음) 헛소리와 동급의 개소리다. 더 정확하게 따지면 그 1만의 정예 군사를 누가 육성했는가를 따져야 하는데 경상수군은 개전 초기에 트롤러 두명이 깡그리 말아드셨기 때문에 전라수사인 이순신과 이억기가 육성한 군사들이 병력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철저한 군율 관리, 실전같은 훈련[12]으로 이순신은 부임 초기 흐트러졌던 전라좌수군의 기강을 바로 잡아 강병으로 육성했는데 예로부터 명장의 조건 중 하나에 강병의 육성이 들어간다는 것을 따져본다면 이순신의 공적은 의심할 바가 없다. 거기에 명량 해전의 불리한 전세만 놓고 보면 확실히 대단한 장군인 것이다.

일본 수군의 주력 함선은 중소형함인 코바야와 세키부네이고 판옥선과 동급인 아타케부네는 소수였던 반면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은 대형함(동아시아 기준)인 판옥선이었고, 병력 수가 비슷한 이상 당연히 조선 수군의 함정 수가 더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수도 있겠지만 숙련도에서도 조선수군이 우위에 있었다. 조선수군은 '전문화된 수군', 즉 해상전에 특화된 수전훈련만을 받은 군대였다. 반면 일본 수군은 육군과 수군 간의 경계가 없었다. 일본의 주요 수군장수들(ex:도도 다카도라[13], 와키자카 야스하루[14], 구키 요시타가[15])은 모두 육전에 필요할땐 육전에 투입되었고, 해전에 필요할땐 해전에 투입되는등 육전과 해전을 병행했다. 임진왜란을 통틀어 조선 최악의 패전으로 꼽히는 용인 전투는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작품이다.

일본에서 그나마 전업수군에 가까운 부대로 '무라카미 해적'이 존재했으나, 얘네는 정규군도 아닌 용병 왜구이다. 따라서 일본 수군은 사실상 육군이 배에 올라탄 부대나 다름없었다. 일본군이 전국시대를 거치며 단련된 군대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일본 내 내전이나 육전에 특화된 집단이었을 따름이다. 바로 옆동네 영주를 공격하는데 수군은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일본 군대의 역량은 섬나라 군대답지 않게 기형적일 정도로 육군에 올인되어 있었다. 바다를 건너온 쪽은 일본군이나 전체 병력에서 수군이 점하는 비중은 오히려 조선이 더 높았고, 그나마 일본에 수군이라고 있는 부대도 해상수송업무를 겸한 육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ㄴ누가 쳐들어오지도 않았으니, 수군을 전문적으로 양성되지도 않았거니와 통일된 정부가 있는것도 아니니 당연히 대규모 해군이 양성 될 수도 없다. 결국에는 자기네들끼리 치고받으면서 적당히 조운선같은거나 삥뜯는 해적이 생길 수 밖에. 전문적인 해군을 양성하는데에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다만 수전의 수준이야 어쨌건 전국시대도 수전은 벌어졌으며, 일본 수군은 전국시대를 거치며 (그게 땅에서였건 바다에서였건)실전 경험을 겪어본 부대임은 잊어선 안될 것이다. ㄴ조선 수군도 실전경험 측면에선 절대 무시할 수 없던애들인게 허구헌날 왜구와 쳐싸워댄게 얘들임 물론 비정규군이랑 싸운거지만 ㄴ왜군의 해전 개념은 지나가는 함선의 삥뜯는 약탈함대 수준이거나, 공성전을 해상전으로 치르는거고 좀 더 나쁘게 말하면 화포 개발한 고려시절의 최무선때와 전략전술의 차이가 별로 없는 셈이다. 차이점 정도라면 철포/조총가 생겼다 정도. 그리고 비정규군이다 뿐이지, 싸우면서 전공하나 획득하거나 무사, 영주들의 눈에 띄면 출세하기도 쉬운게 전쟁이니 그럴수 밖에.

전술적인 측면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조선수군은 일본수군보다 우위에 있었다. 백병전은 일본 수군의 거의 유일무이한 전술이었으나, 위에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선은 대개 중소형 함선이었는데반해, 조선수군의 선박은 대형함이었기 때문에 일본수군은 사실상 공성전과 비슷한 느낌으로 백병전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패널티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백병전은 일본수군 뿐만이 아니라 조선수군에게 있어서도 주요 전술이었는데, 고지에서 전투에 임하는 측이 저지대에서 싸우는 쪽에 비해 유리한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왜선이 접근시 저쪽은 화살과 조총이나 쏘는데 이쪽은 조선판 클레이모어인 조란환으로 갑판을 쓸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ㄴ근데 판옥선이 세키부네보다 높았을텐데 어떻게 근접사격함? 당시 총통으로는 조란환 하향사격 못할텐데.. ㄴ꼭 내쪽 함선이 쏠거 없이 내가 탱킹하는 동안, 다른 함선이 쏘게 하면되지.

화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인 이시이 켄지에 의하면 코바야선은 화포를 장착할 수도 없었으며, 세키부네는 선박 당 화포를 1문 그것도 경량포인 불랑기 밖에 달고 다니지 않았었다. ㄴ불랑기를 달면 다행일거다, 소모를 건조가 못 따라가서 도요토미가 직접 건조를 감독할 지경임을 생각하면 그렇게 구조방어력이 좋다고 할 수도 없을거다. 그리고 포술도 발달하지 못한 왜군인데 불랑기를 달기 보다는 오오쓰츠나 달았을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이, 조총의 사이즈나 늘린 물건을 대포취급하니까.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동시다발적인 수송작전이나 혹은 전쟁의 목표물(조선 국왕)을 탈취하기 쉬운 지점인 한강 유역에 대한 기습전략 등을 감행하지 않고 부산포에 병력을 몰빵으로 떨군 이유는 일본측이 그걸 원해서 그런게 아니라 일본수군의 능력이 그것밖에 안되서 부득이하게 그랬던 것이다. 16세기에도 일본은 여전히 중국인 기술자들을 고용해서 선박을 건조하는 수준이었으며, 일본의 항해술은 사실상 계절풍에 의존하는 원시적인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군에게 있어서 처음부터 수륙병진작전은 논외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양을 개전 한달도 채 안되서 점령한 일본군이었지만, 한양의 입구인 강화도나 한강 하구, 또는 교통의 요충지인 한강 상류의 조선군 진지는 그냥 노터치로 놔둔 것이고, 칠천량 전투에서 승리한 일본수군이 그 기세를 몰아 조선 해안가를 장악하긴 커녕 경상도 해안지역에서의 약탈행위를 하는데 주력하여 조선 수군이 재정비할 여유를 갖다준 것이다.

다만 이게 이순신을 까내릴 근거는 되지 못하며, 실제로 사학계에서도 이런 점을 가지고 이순신을 까대진 않는다. 당장 이순신이 지휘할때 빼곤 조선수군은 일본 수군에게 단 1승도 챙기지 못했다.[16]

이순신이 승리한 전투 중 불리한 상황에서 치른 전투라고 할만한 것은 원균이 병력을 홀라당 까먹고 난 뒤에 벌어진 전투인 명량 해전 정도 뿐이다. 오히려 100척 이상을 두번이나 깨먹은 원균이 대단하다고 봐야할 정도.[17]하지만 아군에게 유리한 전장만을 20여회 연속으로 잡을 뿐만아니라 사상자가 거의없는 승전으로 이끄는 것도 보통 장수가 엄두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또한 각 전투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부대가 입은 피해도 경미한 수준이다. 이것만으로도 이순신이 명장임은 반박불가능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미지보다 더 대단한 명장인 것이다. 안과 밖에서 모두 포위를 당한 상황에서 이겨버린 카이사르보다 단순 회전을 이겨낸 한니발이 군사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최대한 승리 확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전쟁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전쟁 일지를 보면 그가 지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전투를 몹시 싫어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제독과 장군은 질 변수가 있는 전쟁을 싫어하지만 이순신은 정말 전장에서 모든 변수를 지우는 능력이 탁월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왜군들을 본인이 원하는 전장으로 끌어들여서 본인이 원한 그림대로 전쟁을 진행해온걸 알 수있다. 일본 수군보다 한단계 진일보한 화력과 기술, 엄격한 균율과 통제, 철저한 정보수집, 엄청난 량의 훈련, 적을 원하는 전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최대한 패배의 변수를 지워내고 이기는 전장에서 이기는 전투를 해왔음을 알수 있다. 말로는 겁나 쉽게 느껴지는데 이게 얼마나 어려운건지는... 실제 전쟁은 문명이나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다. 물론 원균과 선조의 하드트롤로 맨주먹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던 명량해전과 결사항전 했던 최종 전투인 노량해전은 제외. ㄴ단순하게는 병력의 훈련도와 무기의 준비만 생각 할수도 있지만, 통제사께서 싸운 곳은 바다. 그것도 복잡한 해역인 남해였고, 초임지가 북방 여진족과 맞닿은 지역임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것이다.

손자병법에도 나오지만 애초에 명장은 두가지 종류가 있다. 이길 수 있는 전투만 골라서 하는 장수와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이기는 장수. 제대로 된 병법서라면 당연히 하나 같이 전자를 진짜 명장으로 꼽는다. 전쟁이 얼마나 힘과 물자를 소모하는지 생각해보면 이길 수 없는 전쟁은 본래 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전쟁만 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이순신도 이런 류의 장군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명량해전으로 이길 수 없는 전쟁도 이겼으니 명장의 두 가지 종류에 다 포함된다. 그냥 사기캐 먼치킨, 진정한 명장이다.

이순신 장군은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덕장으로 알려진 이미지와는 다르게 엄격한 군율과 법에 의한 법가 통치자에 가까웠다(요즘으로 따지자면 초 FM군인). 기록상 이순신이 나간 전쟁에서의 전사자보다도 군율을 어긴자에 대한 참수자가 더 많았다고 한다. 사실 이건 어쩔 수가 없는게 옆나라에서 전쟁 준비를 뻔하게 해오고 있고 1년도 안되서 처들어 올께 뻔한데 한명, 한명 하는말 다 들어줘 가면서 나빼고는 답도안나오는 전장을 승리로 이끈다는거 자체가 넌센스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그런 군인으로써의 통치를 본인이 참수한 병사보다 전사자 수를 적도록 하는 말도안되는 연승기록을 통해 책임졌기 때문에 이걸 근거로 이순신을 깐다는건 말도 안된다.

인격적으로는 글을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단아한 선비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술도 많이 마셨고, 승정도 놀이나 활쏘기도 엄청 즐기셨다.

그리고 앞서 말한 명량 해전에서 13척 가지고(사실상 대장함 혼자서)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일본 함대를 격퇴한 시점에서 어지간한 명장들을 초월한거다.

위에는 이순신 장군님의 군사적인 역량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는데 이순신이 더욱 대단한 이유는, 중앙 정부로부터 어떠한 원조도 받지 못한채로 전시에 군수보급, 물자보급, 전투훈련, 대민지원, 정보작전에 이르기까지 단 한부분도 소홀한 부분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니, 도리어 일선에서 전쟁을 치르던 와중에 사정이 어려운 최후방 정부에게 공물을 바치기까지 했다. 그렇게 힘든 업적을 해낸 와중에 주요 공직자들의 충성심을 얻어내고 말단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군기 단속을 성공한것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이순신 장군님의 통솔력의 한계가 어디인가 생각해보게된다.[18]

현대전으로 따지면 최전방에 배치된 부대가 중앙 국방부의 아무런 원조도 받지 못한 상태로 모든 군수품과 보급품을 자급자족하고, 그러고도 군수/보급품이 남아서 상황이 안좋은 국고로 환수하는, 그러면서 전투에서도 승률 100%를 자랑하는 그런 부대라고 생각하면 좋다. 방산비리로 군자금 때먹을 생각이나 하는 한국군 장성들은 이순신장군님을 생각하면서 좆잡고 반성해야할 필요가 있다.

업적[편집]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맹활약하며 만나는 일본군마다 남해에 싸그리 수장시킨다.

얼마나 압도적이었냐면, 당시 일본군따라 온 승려 케이넨이 지은 『임진왜란 종군기』를 보면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을 발견하면 신나서 소리를 지르고 좋아했다고 적혀있다.

대략 1만명에 육박한 규모의 병력를 갖춘 일본 수군을 상대로 탁월한 전과를 올렸다. 덕분에 수륙 병진 작전도 무산되고 진주성에서 탈탈탈 털렸다.

하지만, 진짜 적은 앞이 아닌 뒤에 있었으니. 과연, 한반도 최악의 세대답게 의심쩌는 윗대가리와 자신을 시기한 어떤 개찌질이새키 때문에 그간 모아두었던 한방 병력은 다 잃어버리고, 정작 본인은 억울한 옥살이에 고문까지 당한다. 이때의 후유증으로 병환을 앓게 되는데 사실 병환이 문제가 아니라, 개찌질이씹새가 좀 늦게 말아먹었어도 윗대가리 개새가 진짜 죽였을 거다.[19]그 때 윗대가리는 진심으로 죽이려 들었다. 안 죽게 편들어준 오리정승정탁 할배한테 그저 굽신굽신.

복귀 후 사실상 소멸 수준이던 해군을 이끌고, 인간 수준이 아닌 능력을 선보이며 정유재란 당시 침략자들에게 요단강 익스프레스(삼도천 특급열차)단체행을 하사하신다. 게다가 왜성에 틀어박힌후 더욱 괴로워 졌다.

다 쓰러진 국가의 운명을 개인의 의지와 노오오오오오오오오력으로 바꾼, 세계적 레전드급 인물이다.

일생[편집]

관직 진출[편집]

재수끝에 무과에 합격했다. 처음에는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점수가 크게 깎여서 낙방했지만 2번째는 합격했다. 까짓거 재수할 수 있지 뭘그래. 재수해서 서울대 가는게 재수 안하고 서잡대가는 것보다 나은 거지, 안그래?

이순신은 식년무과에만 응시해 2번만에 합격했다. 조선은 무과에 있어 정기시인 식년시로 정예를 선발하고 그외 부정기무과로 여타의 무인을 충당했다. 재수해서 서울대 갔다라는 말이랑 그닥 매치는 되지 않으나 이해하긴 빠르겠다. -_-;;

한번은 상관인 서익이 원칙에 어긋난 인사를 지시했고, 거절했다.물론 나중에 트집잡혀서 파직된건 덤이다. 그 이후 녹둔도에 이일의 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여진족이 쳐들어오자 이일은 도망치고 이순신은 이경록과 둘이 남아서 주먹질한 끝에 여진족을 무찌르고 조선 백성 60여명을 구출했다. 지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분 녹둔도 전투 전적 보면 무력으로 최소 털린다는 소리는 쏙 들어갈 각, 애시당초 기초적인 무예가 있어야 무과에 급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문제는 이일새끼가 그 군공을 지가 가로채고 이순신이 도망갔다고 서로 뒤바꿔서 날조해서 장계를 올렸다. 이 때문에 이순신은 군공을 쌓고도 오히려 백의종군했다. 나중에 여진족 우울한 우을기내를 깨고 사면되었다.

류성룡이 어디 쓸만한 장수 없나 기웃기웃 거리다가 류성룡의 매의 눈에 포착되었다. 그때 류성룡은 이순신, 원균, 권율을 선조에게 천거했다.

지금생각하면 이때 류성룡은 저기서 원균을 조졌어야한다.

조졌으면이야 좋았겠으나 류성룡은 노스트라다무스 횽아가 아니다. 단지 결과론이다. 원균이 그래도 무장인데 젊어서 아무 공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시원찮았을 뿐;;; 또한 왜변대비를 위해 마음이 급했던 조정은 원균정도의 무장도 훌륭해보였을 것이다. 문제는 조선이 지금처럼 북쪽이 꽉 막힌 나라가 아니다. 오랑캐들과 일상적으로 사소한 전투들이 벌어졌던 나라이니만큼 무관이 많이 필요했단 소리다. 그래서 성품이 좀 그렇다손 치더라도 무관으로 임관시키고 '잘 싸우기나 하렴' 식이었다. 하도 이순신같은 완전체 코디네이터만 보다보니 조선시대 무관이 다 그럴거라고 생각하진 말자.

북쪽 변방 오랑캐 방어에, 오만 왜구한테 털리고 왜변까지 결국 시기가 하 수상해지자 조정은 해안방비를 서두르게 된다. 실제 왜란이 터지고 몽진한 선조가 전쟁대비용(이라고 말하진 않았다...)으로 성을 쌓을수록 백성의 삶이 힘들어졌음을 몰랐다고 탄식하며 내린 교서가 있을 지경이다.[20][21]

원균 역시 급한 마음에 오용된 무인 중 하나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리고 음으로 양으로 원균이 바친 뇌물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카더라..


이 때 이순신은 처음으로 권율을 만났는데 서로 마음이 잘 맞아서 이후로도 계속 편지를 주고 받았고[22] 급기야는 이순신이 자신의 수군에서 쓰던 함포 중 몇 개를 권율에게 뗘다 줬다. 권율은 이걸로 행주대첩의 결전병기로 활용했다.[23]

그리고 원균에게는 지금까지모은 병력을 전부 반강제로 주게되었는데 그원인이 조선왕조실록 역사상 희대의 씹노답새끼 선조다. 브론즈5 원균은 챌린저가 쓰던계정을 먹고 자기가 챌린저라는 자기최면에 빠져 챌린저계정을 브론즈5로 만들어놓는다.

그 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느껴진 선조는 갓제너럴을 다시 소환하고 양학방송을 킨다.

그래봤자다. 나름 임금님이신 선조, 이연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원균을 앉혔다.

그런데 이순신의 파직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파직시키고, 원균앉히고, 칠천량에서 조선수군과 군비를 깡그리 수장시키기까지 일년도 채 안걸렸다.

그제서야 '내가 죽을수도 있겠다' 싶어서 치트키를 입력하긴 한다. 치트키가 상당히 웃긴 한문인데 일명 '상하언재(머 할 말이 있겄니;;)교서'다. 나름 임금이란 사람이 제손으로 쫓아낸 공무원에게(곱게나 쫓아냈나...) '할 말은 없는데..;; 다시 와줘 징징징' 스킬을 구사하신 거다. 이 얼마나 모양빠지는 일인지 대충만 봐도 그림이 나온다.

그런데 징징대는 척 하며 삼도수군통제사 임명교서를 내린 건 좋은데 품계를 정2품 정헌대부에서 종3품 절충장군으로 강등해서 내린 것이다. 이는 ' 내가 겁나 급해서 널 다시 오라고는 했는데 너 사실 맘에 드는건 아니야' 하고 무언으로 시위한거다. [24]

좀 지나니 이연은 수군을 폐하겠다며(잘나가던 수군을 하루만에 쳐말아잡숫더니 이시점에 거의 미친듯....그럼 통제사 임명교서는 왜 내렸냐) 헛소리를 한다. 사실 이게 이연만의 문제도 아닌게 비변사 당상이란 시키들이 계속 부추기기도 했다. [25]

난이 또 터져서 왕이 다시 몽진간다 치더라도, 시간을 벌려면 최대한 수군이 서해를 막아주길 바래야 하는게 상식이다. 비록 전멸하더라도 말이다. 도로사정이 병맛같았던 조선땅이고 보면, 서해가 뚫린다는건 바로 마포나루에 비단이불 깔아놓고 일본군을 맞이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물론 일본이 수륙병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는 볼수 없는 행태를 저지르긴 했지만 이건 그냥 결과론이다. 전쟁흐름상 최악을 가정할 수 밖에 없다. 이순신은 이를 우려한 때문에 그 전력으로라도 바닷길을 막아보고자 필사적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행보라고 밖에 볼 수 없다.[26]

그런 상황에서 수군을 폐하라는 헛소리가 작렬하자 이순신은 장계를 하나 써 올린다. 일명 상유십이 장계.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전선이 남아있습니다. 전선의 수는 적으나, 미천한 신이 죽지 않고 있으니 적들이 감히 우리를 얕잡아보진(도모하진?? 침범하진?? 해석은 많다. 한문음은 '불감모아의'다.) 못할 것입니다.[27]

같은 상자 돌림이라도 격의 차이가 현격하다. 이연의 상하언재 와 이순신의 상유십이. 그리고 더 웃음이 나는 것은 상유십이 장계를 받아본 의심병 환자의 표정이다. 이연은 아마 왜적보다도 이순신을 씹어먹고 싶지 않았을까 ㅋ

전란중 분조와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분발한 아들 광해조차 의심해서(이것도 겁나 웃긴게 그렇게 하라고 했던게 이연이다.[28])오만 난리를 피운 이연이라 이순신에게도 그랬다.

명량해전 후 어사육, 주를 내리는데 이순신이 이를 받고 엄청 민망해하는 내용이 난중일기에 실려있다.(다만 충무공께선 먹었다고 기록하시진 않았다. 아마도 안드신 모양..) 모친상 중이던 이순신에게 '고기쳐먹어' 하고 어사품이라며 내리는 이연의 심리상태를 보면 아들들이 왜 다 그 꼬라진지 알수가 있다.[29]

(유교사회에서 부모상이 괜한 일이 아니다. 3년간 부모님의 무덤옆에 초막을 짓고 거기서 풀만먹고-부모상 중에 술먹고 고기먹다 걸리면 난리나는 거다- 사는 것이 바로 3년상이고 상제가 해야할 의무이며 그 기간동안 임금이 불러도 즐때릴수 있는, 엄청난 일이다. 조선조에 재위기간 짧은 왕들 중 상이 연달아 나서 건강을 해쳐 정작 재위기간이 짧은 왕들이 종종 있을 지경이다. 그 대표격이 완전체의 아드님이시자 본인 또한 완전체이신 문종.

충무공은 죄도 없이 파직되어 고문당하고 건강까지 해친 마당에 이연이 뭐 할말이 없소 라고 모양 빼가며 교서를 내려도 '울엄마 돌아가셨셈!!!'[30]한마디면 다시 그 징글징글한 통제사 안하셨어도 됐다. 그것이 조선사회다.

근데 하셨다....ㅠ)

조선 조정 파벌 싸움질은 거의 일본 제국 대본영 수준이네ㅋㅋㅋ ㅗㅜㅑ 수도 털리는 와중에도 치트공 견제 오짐 ㅋㅋㅋ

전략, 전술[편집]

헥토파스칼 킥.jpg 주의! 이 기술은 좆나 개씹사기라 게임을 노잼으로 만듭니다.
이 문서는 심하게 사기 포스를 풍기는 미친 기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게임에서 이 기술을 쓴다면 다른 놈들까지 다 이걸 하거나 너프를 먹거나 할 것입니다.

태풍 민들레는 중심기압이 985헥토파스칼, 최대 풍속이 초속 23미터인 중형태풍으로 많은 피해가 많은 피해가 우려되오니 미리 대피 하시길 바랍니다.

이순신은 16세기 당시까지 세계 어디에서도 없던 수준 높은 군사적 전략 전술을 발휘한다. 포위섬멸전으로 알려진 그의 대표적인 학익진 전술은, 일반적인 학익진이 아니었다. 후퇴하는 척 하다가 180도 선회, 반전하며 적을 포위하는 것은 대단한 훈련과 기술, 지휘 통제가 없다면 불가능한 전술이었다.

16세기 말부터, 서양사의 입장에서 볼 때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해전의 양상이 바뀐 시기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동서를 막론하고 해전이라면 '충각+도선+백병전'으로 끝장내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화약과 화포가 발전하면서 멀리 있는 배를 화포로 박살내고 잔여의 적을 정리하는 형태로 서양의 해전 트렌드가 바뀌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서 이런 전술을 쓴거다. 이순신이 이런 서양의 트렌드를 알아서 그랬을까?? 아니다. 서양이야 해양쪽으로 워낙 난리 치다보니 연구한거겠지만 조선은 그런 국가가 아니다. 그리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다. 그런 트렌드가 전래되려면 못해도 백년은 걸린다. 거리문제도 있고 실제 이랬다더라 들었다 한들 실험해보고 하는 시간이 엄청났을 것이다. 이순신은 화약과 화포가 발전하는 양상을 선구적으로 해전에 응용한 거다. 또한 명중률이 낮던 당시 화포를 개량하려는 노력이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고, 군사훈련에 심혈을 기울인 모습을 통해 해전의 신, 나아가 적들에게 있어 자연재해로까지 보이는 불패신화를 만들었다. ㄴ사실 조선수군이건, 왜선이건 서로가 화약(화포/조총)을 쓰기도 하지만, 나무로 만드는 배다 보니까 화공이 어느쪽이든 효과적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화포로 방패들을 깨부수면서 왜군들을 헤집으면서 화공을 갈기고, 여기에 불을 끈다고 노출이 되는 왜군들을 다시 화포와 화살로 쏴버리면 매우 효과적인셈이다. 대신에 군사들 입장에서는 저기 수급이 둥둥 떠내려간다고 입맛다시겠지만.

또한, 상당수의 전투에서 조선 해군이 일본 해군에 비해 숫적으로 매우 부족하여 불리한 경우가 많았다. 현대에 정립된 란체스터 법칙에 따르면 전투 시 약간의 숫적 불리함도 치명적인 단점이 되어버린다. 이순신은 이때문에 기발한 전략 전술과 기습 공격, 그리고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 함선과 화력을 집중 투입하여 전체적인 숫적 불리함을 극복해낸다. 예를 들어 10척으로 적 20척과 싸운다면, 적의 20척이 한 번에 전선에 나서지 못할 상황을 만들고, 아군 10척으로 소수의 적을 차례로 압도, 수색 섬멸 작전으로 축차소모시켰다. (물론 명량 해전처럼 집중할 화력조차 전무한, 제대로 된 전략 전술의 실행이 불가능한 전투에서도 이순신은 승리했다. 이건 '뛰어난 전략 전술' 정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해낸 것이기에 딱히 할 말이 없다. 이순신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었다.[31]) 가끔 혐한, 일뽕 파오후들은 보급선이나 털어먹은 겁쟁이라고 병신승리를 하고는 하는데 이순신은 본진 지원도 못받은 채로 멀티 하나에 의존, 병력을 최대한 보존하며 적은 병력으로 최고의 효율을 유지하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무능한 본진에 지원 물자를 보내기 까지 하였다.[32]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지휘관의 기본중의 기본이다. 게다가 나중에는 부산포 얻어 터지고 이순신 털려고 공격했다가 역으로 대판 털린건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가진건 있는데 눈뜨고 당하고 역으로 털리는 놈이 병신이지ㅋㅋㅋ 당장 해전이 아니라 롤이나 스타 같은 게임만 보더라도 이길 수 있는 전장에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하는 것 자체가 명장을 만드는 대단한 판단력의 결과물이다. 이거 못해서 유리한 상황에서 꼬라박고 지는 경우가 한두번 있는것도 아니고.. 이걸 그저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한 겁쟁이네 하는 건 빡대가리 새끼들이나 들고 나올 논리[33] 이자 장수에게 할 수 있는 큰 칭찬을 모욕인 줄 알고 하는 짓거리인데 이딴 소리로 갓갓갓 장군을 깎아내리려는걸 보면 혐한이네 일뽕이네 걸려서 헛소리 하고 다니는 애들 대가리 수준도 짐작이 가능하다.

근대 이후의 화약무기와 달리 적 함선을 부수려면 적어도 십여발 이상의 함포를 명중시켜야했고, 숫자는 상당히 열세였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즉, 화력으로 숫자를 무력화시킨 것인데 이는 앞서 언급한 란체스터 법칙을 수세기 이전에 해전에서 실행한 것으로 대단히 시대를 앞선 것이다. 일본에 비해 조선 해군의 사상자가 극도로 적었던 것도 이런 뛰어난 전략 전술 때문이었다.


불멸의 이순신의 영향으로, 충무공이 그저 화포빨로 빵야빵야하자 왜군들이 녹아내린거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좀 있다. 근데 당시 화포기술상 흔들리는 배 위에서 최대사거리에 있는 적을 정확하게 쏘는건 거의 불가능하며, 함상에서 화포가 높은 명중률을 보이려면 70m이내에는 적이 들어와야 한다. 또한 100m가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명중률이 존나게 급락하기 시작한다. 근데 조총의 사거리는 50m이므로 50~100정도의 거리를 항상 유지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설명 안해도 알 것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했듯이, 당시 화포는 한방 명중시킨다고 적선을 격침시키는 그런 무기가 아니다. 갑판을 맞춘다고 하더라도 드라마나 영화처럼 포탄이 폭발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적만 죽는다. 쉽게 말해 화포빨 드립은 개소리다. 물론 화포가 전공에 영향을 준거는 맞는데, 화포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상쇄시킨건 순전히 제독의 능력이다. 화포가 그렇게 씹사기 무기라면, 원균은 몰라도 이억기 정도의 능력이었으면, 충무공과 연합 안하고 단독으로 전라우수영 함대 이끌고 왜군을 썰고 다녔어야 했다.[34] 게다가 민중사관쪽 병신들은 이순신만의 힘이 아니라고 까내리지만 단지 이순신이 원균으로 교체되었는데 칠천량해전이 터진 건 해명을 못한다. 원균이 세상에 둘도 없는 상병신이라 그렇다고 하지만 그게 지들이 까는 영웅주의 사관론과 뭐가 다른가?

민중도 고생했지... 근데 고생도 이순신 밑에서 했으니 살아남기라도 한거다. 원균 밑에서 하다간 뼈도 못추린다. 민중사관도 좋지만 이런 특이한 경우엔 좀 갖다붙이지 마라. 공부안한거 티난다. [35]


그리고 불멸의 이순신 감독이 말하길, 화포로 적선이 와장창 깨지는게 잘못인지 알지만 보는 맛이 있고, 시원시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든거라고 한다.

또 이런 전략 전술을 달성하려면 필연적으로 군대의 정예화가 필수였기 때문에 임지에서 병졸이나 휘하 장교들 졸라 갈궜다. 죄질 안 좋으면 모가지 뎅강. 이거 가지고 이순신 까들이 ㅈㄹㅈㄹ 거리는데, 요즘 헬조선 똥별들처럼 사소한 것까지 흡집 잡아서 갈구기 위해 갈군 게 아니라 진짜 필요한 거라서 부대 엎은 거다. 당시 조선 수군은 실제 전투훈련보다 세금 실어나르는 드랍쉽 질만 하는 등 개판이었고. 실제로 능력은 있지만 게을러서 뺀질거리던 김완 [36] 같은 애들도 이런 과정을 통해 발굴해냈다. 구르는 입장에서야 ㅈ같지만 이런 혹독한 단련 덕분에 이순신이 지휘하는 수군은 전사자보다 비전투손실(질병, 사고 등)이 훨씬 많았다.

그분의 어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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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1579년)

내가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섰는데 어찌 감히 권세가에 의탁하여 승진을 꾀할 수 있겠는가? [37]

밑에 있는 사람을 부당하게 위로 올리고 위에 있는 사람을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은 공정한 처사가 아닙니다. 법은 지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8]

(47세, 1591년)

해적을 막는 데는 수군만한 것이 없으니, 수군과 육군 중 어느 한 쪽도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 [39]

(48세, 1592년)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나아가 싸우는 것뿐이니 감히 다른 맘을 품는 자는 목을 벨 것이오. [40]

자주 이기게 되면 반드시 교만해지기 쉽다. 그러므로 장수들은 항상 조심하라. [41]

왜적에게 사로잡혀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구출해오는 일은 왜적의 목을 베는 것과 다름없는 공로이므로 왜선을 불태울 때에는 특별히 살펴서 찾아내고, 조심하여 함부로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 [42]

(48세, 1592년, 옥포 해전을 앞두고 장졸들에게)

너희는 경거망동하지 말라. 너희는 태산과 같이 진중하라.

(53세, 1597년)

“죽게 되면 죽을 따름이지 어찌 도리를 어겨가면서까지 살 길을 구하겠느냐.”[43]

비가 오다 개다 하였다. 아침에 흰 머리털 십여 오라기를 흰 머리털인들 어떠랴마는 다만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44]

(53세, 1597년 4월 11일)

나라에 충성하려 했건만 이미 죄를 얻었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려 했건만 어버이 또한 돌아가셨구나. [45]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에 나 같은 이가 또 어디 있으랴!”[46]

(53세, 1597년 9월 15일)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하였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의 사내들도 겁을 낸다(一夫當逕, 足懼千夫)’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오늘의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은 결코 살려는 생각을 품지 마라!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 [47]

(53세, 1597년 9월 16일)

“적이 비록 1천 척이라 하더라도 우리 배를 쉽게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동요하지 말고 힘을 다해서 적을 쏘아라!” [48]

(54세, 1598년)

순천 왜성의 고니시 유키나가로부터 포위를 풀어달라는 뇌물을 받은 명나라 수군 진린 도독과의 대화

진린: 나는 잠시 이곳의 행장(行長:고니시)은 내버려두고 먼저 남해에 있는 적들을 토벌하러 가고자 합니다.

이순신: 남해에 있는 자들은 모두 적에게 포로로 잡혀간 우리 백성이지 왜적이 아니오!

진린: 하지만 이미 적에게 붙은 이상 그들 역시 적이오. 이제 그곳으로 가서 토벌한다면 힘도 안 들이고 머리를 많이 벨 수 있을 것이오.

이순신: 귀국 황제께서 적을 무찌르라고 명령하신 것은 우리나라 백성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소. 그런데 이제 구해내지는 않고 도리어 그들을 죽이겠다는 것은 귀국 황제의 본의가 아닐 것이오.

진린: 우리 황제께서 내게 긴 칼을 내려주셨소!

이순신: 한번 죽는 것은 아까울 게 없소. 나는 대장으로서 결코 적을 놓아주고 우리 백성을 죽일 수는 없소!


(54세 1598년 11월 18일)

“이 원수들을 섬멸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此讎若除, 死則無憾)!” [49]

(54세 1598년 11월 19일)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戰方急 愼勿言我死)” [50]


결전 노량해전으로 이순신은 54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순직하였고 이날 수군은 무사히 왜군을 쫓아내며 왜란은 종료된다.

남자인데 반했다 인생이 핵간지

그를 평가한 글귀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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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우익들이 어디서 원균 명장론따위를 주워쳐듣고 만들어진 영웅이라고 헛소리를 찌그리지만, 조선시대 내내 넘사벽급의 갓갓으로 평가받았던 분이다.

  • 당대의 평가
 사신은 논한다. 이순신은 사람됨이 충용(忠勇)하고 재략(才略)도 있었으며 기율(紀律)을 밝히고 군졸을 사랑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겨 따랐다. 
 (중략)
 부음(訃音)이 전파되자 호남(湖南) 일도(一道)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여 노파와 아이들까지도 슬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국가를 위하는 충성과 몸을 잊고 전사한 의리는 비록 옛날의 어진 장수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조정에서 사람을 잘못 써서 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다 펴지 못하게 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만약 순신을 병신년과 정유 연간에 통제사에서 체직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왔겠으며 양호(兩湖)가 왜적의 소굴이 되겠는가. 아, 애석하다.
 <선조실록 106권 중 노량해전에 대한 기사>
 공은 엄하고 진중하여 위풍이 있는 한편 남을 사랑하고 선비에게 겸손하며 은혜와 신의가 분명하고 
 식견과 도량이 깊어 기쁨과 노여움을 잘 나타내지 않았다. 일찍이 하는 말이 
 “대장부 세상에 나서 쓰이면 죽을 힘을 다해서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살면 또한 족한 것이니 
 권세있는 자에게 아첨하여 뜬 영화를 탐내는 것은 나의 부끄러워 하는 바라”하였다.
 <조선시대 인조때의 승지, 최유해>
 절개에 죽는다는 말은 예부터 있지마는
 제 몸 죽고 나라 살린 것 이분에게서 처음 보네.
 <조선시대 제19대왕, 숙종>
 우리 역사상의 장수들로서 보통 때에 조그만 적을 만나 공로를 세우고 이름을 날린 이는 많았지만
 공과 같은 이는 나라가 쇠약해지고 전쟁을 꺼려하는 때에 천하에 더할 수 없이 강한 적을 만나 크고 작은 수십 번 싸움에 모조리 다 이겨내어 
 ...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근본을 삼은 것이니, 저 한때의 공을 세운 신하들로서는 따를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의 몸을 세우는 절개와 국란에 죽는 충성과 또 행군하고 용병하는 묘리며 복잡한 사무 등을 처리하는 지혜는 이미 다 보고 아는 일이라
 비록 옛날의 명장이나 어진 장수들로서 백년에 한 둘 밖에 나지 못하는 그런 인물로도 이 분을 넘어설 이는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 인조때 대제학,이식>
 이순신(李舜臣)의 사람됨을 신이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었고 한 차례 서신을 통한 적 밖에 없었으므로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전일에 원균(元均)이 그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고 한 말만 듣고, 그는 재간(才幹)은 있어도 진실성과 용감성은 남보다 못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이 본도에 들어가 해변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모두가 그를 칭찬하며 한없이 아끼고 추대하였습니다. 
 또한 그가 4월에 고금도에 들어가자 만사를 적절히 조치하여 불과 몇 달 사이에 민가와 군량이 옛날 한산도에 있을 때를 능가한 것을 알고 
 비로소 그 역량이 남보다 뛰어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좌의정 한음 이덕형(李德馨)의 장계에>
 “왜적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이순신의 해군입니다. 그를 가둬서는 아니 됩니다. 원균을 대신 보내서는 안 됩니다.”
 <도체찰사 오리 이원익>
 “이순신의 화평하고 어진 덕과 과단성 있게 일을 처리하는 재능 그리고 상과 벌을 곧바로 주는 용기 같은, 
 만일 다른 사람이 이런 정도의 분이라면 백세에 이름을 날릴 사람이라 하겠지만, 
 이순신에게 있어서는 그저 당연히 해야 할 하찮은 일로 여겼을 뿐 공명을 바라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영의정 백사 이항복> 

누구의 평에서든 간에, 글쓴이의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흘러넘치는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글귀들만 읽어 보아도 엿보이는 이분의 헌신에 감격의 눈물이 절로 흘러넘친다. 편집하면서도 놀랐다. 이정도로 후빨받기 진짜 힘든데... 빨지 않을 수가 없다 ㅠㅠㅠㅠㅠㅠ

세계사를 통틀어 봐도 명장으로 평가받을지언정 인성이 글러먹어 말년을 그르친 지휘관들이 천지인데 이분의 행적은 시기심이 생길 정도로 혼자 깨끗하다. 다른나라도 아니고 헬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서도...


  • 후대의 평가

육군에서 날고 기던 사기캐(알렉산더라던가 칭기스칸이라던가 나폴레옹이라던가)들을 제외한 수군 제독 중에서는 전세계 명장 순위 에서도 10위권 안에 드는 치트키 사용자 학자나 훗날 군사전문가들 중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독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순신은 서양 사학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원칙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의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영국인에게 Nelson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이순신이 동양의 위대한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영국 해군준장,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서양에 넬슨 동양에 이순신이라는 위인이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 있었다라는 것에 위대함을 느끼면 된다. 캬 ㅆㅂ 막걸리 더 가져와
ㄴ이미 윗쪽에서 다마셔서 없음

넬슨은 프랑스 나폴레옹을 격퇴한 영국 전설의 제독이다.

다만 넬슨은 사생활이 별로여서 좀 까이는 면이 있다. 갓순신니뮤는 그런 거 없다.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감에 일생을 외롭게 싸워온 이순신에게는 안타까운 마음도 나지만 그러기에 그의 업적은 길이 빛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찬사를 아끼지 않은 다른 추모어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국사람으로서는 넬슨과 어깨를 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란 항상 어렵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인정될 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는 한 번도 패배한 일이 없고 전투 중에 전사한 이 위대한 동양의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 영국 해군 제독 '알렉산더 발라드(Alexander Ballard) 저서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1921) 중 [51]

까고 싶어도 깔게 없다. 세종대왕도 고기를 너무 좋아했다더니, 흉년에도 고기를 먹었다더니 또는 장영실 숙청과 같은 약간이라도 비판거리가 있는 반면 성웅께서는 인성, 군공, 행실 등 모든 면에서 까는 것이 불가능 하다. 역사학자들이 기를 쓰고 깔거리를 찾았지만 결국 못 찾고 GG를 쳤을 정도.

고기먹는 이야기는 충무공껜 하지말자. 명랑해전 후(모친상중) 어사육 받고 마음이 힘들었다고 기록하셨다. 진짜 행실쪽으론 당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일본은 뭍에서 성공을 거둔 반면, 바다에서는 일대 타격을 받았다. 한반도 사람들은 항해에 능한 민족이었고,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략가, 전술가이며 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계 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아시아의 해군 전술은 여전히 화살공격을 가하고 배를 들이받아 적선에 올라타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으며, 대포는 배에 장착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순신 장군은 어떤 공격에도 버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단한 방어력을 지닌 배를 고안했다. 그 배의 선체는 속도를 낼 수 있고 작전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갑판 위에는 거북등처럼 철갑을 씌워, 불, 화살, 탄환 등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며, 적이 배에 올라타지 못하도록 철갑 위에는 큰 못을 박았다. 뱃머리는 공격적으로 적선을 들이받을 수 있도록 강화했으며, 둘레 전체에 포문이 설치되었다. 일본 선원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이순신 장군의 철갑전함에 저항할 수 없었다. 조선이 바다에서 승리를 거둔 결과 히데요시의 지상공격은 마비되고 말았다. 1597년 히데요시는 다시 한반도를 침략했지만, 이번에는 조선 사람들과 중국인들이 지상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싸웠고, 일본인들은 바다에서 또다시 패배를 맛보았다. 히데요시는 1598년에 사망했다. 한반도를 무모하게 침략해 실패함으로써 결말이 좋지 못했지만, 그의 모국에서의 군사적, 행정적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다."

- 버나드 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 책세상 95년 1판 1쇄/2004년 개정증보판 1쇄 -

ㄴ정작 자기는 끝까지 북 아프리카 전역이 독소전쟁급의 전역이라고 철썩같이 믿었으며 엘 알라메인 전투가 스탈린그라드 전투 급의 격전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주코프에게 개쪽을 당했지 북 아프리카에 전개된 독일군이 몇백만이 되었나 봅니다?

ㄴㄴ버나드 로 몽고메리 이 양반 마켓 가든 작전에서 자기 탓(만은 아니었지만)으로 패전한 거 부하한테 뒤집어씌웠다. 그 부하는 연금도 못받고 죽을때까지 공장에서 일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인성의 상태가?



"역사를 통틀어 정면 공격과 기습 공격, 병사를 뭉치고 산개시키는 전술에 모두 뛰어났던 장군은 몇 되지 않는다. 육군에서는 정복전의 대가였던 나폴레옹이 그런 장군이었고, 해군 중에는 더욱 천재적인 전술가로 동양에서는 한국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순신은 조선에서 태어났기에 서양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임진왜란의 기록이 부족하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상급의 지휘관이다. 누구든 이순신과 비교되기 위해서는 네덜란드의 미힐 더 라위터르(Michiel de Ruyter)보다는 뛰어나야한다. 호레이쇼 넬슨은 인간성과 성실성 측면에서 이순신만 못하다. 이순신은 거북선이라고 알려진 뚜껑 덮인 배를 발명했다. 그는 진정으로 위대한 지휘관이었고 300여년 전 해군 전술의 달인이었다.

-사토 테츠타로 제독, (A Military History of the Empire (Japanese: 帝國國防史論), p. 399, by Admiral Tetsutaro Sato of the Imperial Japanese Navy)



고루한 학자들 말고도 현대 갓양키형님들에게도 개간지 상남자로 인정받았다.[52]

절대간지와 남다른 포스를 자랑하신다.

소인배 새끼들은 깔게 없으니 난중일기에서 남들 뒷담화만 존나 까는 치졸한 인간이라 까지만, 알고보면 전부 까일만 해서 까인 놈들이다. 원균은 말할 것도 없고, 김억추배설이니 하는 휘하장수놈들도 이순신의 평가처럼 실제로 이순신 없던 칠천량에서 병신인증 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김억추는 참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다. 실록에 임진년 기사를 보면 그 전란중에 오죽이나 무능하면 쫌 갈아치우라고 계속해서 말이 나온다. 어디 장군질 좀 할사람 없냐고 눈에 불을키고 찾고 엔간한 의병장은 몽땅 벼슬주고 하는 전쟁중에 저런걸 보면 무능하기도 했거니와 겁이 진짜 많았나보다. 그런데 이런 횽아라도 후손들은 우리 할아버지가 명량에 참전하였다며 역대급으로 미화시킨 행장을 쓴다. 꿈에 관우가 나와서 이래저래 하면 이길수 있다고 했다나;;;; 후손들이 난중일기를 읽기는 읽은 모양인데 본인들 할아버지가 이순신한테 하루가 멀다하고 겁나 욕쳐먹는건 안읽고 이순신이 명량 전날 꿈꾼 일만 읽었나보다;;;) 휘하장수란 놈들은 죄다 이순신이란 상관 잘 만나서 역사에 이름 남긴 거고 그냥 헬조선 평균 장수수준이었다.

아니 그리고, 일기쓸때 넘한테 보여줄거야 하고 쓰는놈 있음 나와봐라.(변태색이가트니라고...) 난중일기는 철저히 개인이 남에게 밝히지 않고 간직하려한 기록이다. 말그대로 '일기'이다. 그런데 참으로 불가사의하고, 그렇기에 이순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수 있는건, 거의 7년을 넘는 개인의 기록이고, 그 개인은 오만 부당한 탄압에 시달렸던 사람이다. 그런데 임금님 원망 한줄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이것이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이순신이 까일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 선조가 이순신을 시기하거나 두려워할만했다. 생각해보자. 나라는 파탄났고 전쟁중이라 임금이 피신해야할정도로 국가 막장 테크를 타고있는데, 전방전선에서 지원도 없이, 아니 오히려 조공을 바치면서 자급자족하고, 자신만의 배도 구상해서 만들고,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고, 단 한번의 큰 피해보고도 없다고?? 전략전술을 100% 완벽하게 구사하고, 당시 화포의 한계도 극복하고, 기동성이 더 우수한 배를 상대로 접근전조차 허용하지 않는 역량이라고??

그뿐이냐? 전쟁으로 떠돌이가 된 백성들을 돌봐주고 그들로부터 엄청난 신뢰와 신망을 얻은 장수가 바로 갓갓갓이다. 백성들이 피난을 전라좌수영으로 온다. 말 다했지 뭐;;;;

선조는 이순신의 역량이 너무나 거대해서 두려워했을 것이다. 초반에 밀어준건 역량이 대단한 장수라고 밀어줬지만, 너무나 거대한 역량에 임금으로서의 지위에 위협이 될정도였으니... 잊지말자 조선이란 국가는 고려말 유능한 장군 이성계가 세운 국가였다.

니체.jpg 이 문서는 명언과 관련한 문서나 사람을 다룹니다.
명언으로 자신의 병신력을 뽐내는 명언충 놈들과 관련된 문서입니다.
링컨 대통령께서는 인터넷에 떠도는 명언 대다수가 사실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명인의 명언을 인용할 때는 해당인이 실제로 그 말을 했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랐다.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 둘의 늦은 나이에 과거에 겨우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장교로 돌았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불의한 직속 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 세 번 싸워 스물 세 번 이겼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마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 이순신 (영웅)

ㅠㅠ

그러나 이순신은 이런 말들을 한 적이 없다. 역시나 병신새끼들이 지맘대로 각색해서 어록이라고 뿌리는 것이다. 어휴..

우선 이순신은 역적 가문도 아니었다. 애초에 역적 가문 출신은 문과고 무과고 과거시험 자체를 못 본다.

이 디키만 해도 내가 이런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면 분명 이순신이 이런 말을 했다고 여러 곳에서 깝치고 다녔을 것이다.

이순신이 이런 말은 한 적이 없지만 뒤에 있는 것들은 전부 사실기반이다.

이 말은 실제로는 칭기즈 칸이 했다.

ㄴ 개소리다 실제로는 김종래라는 기자가 쓴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말인데 병신들이 이순신이나 칭기즈칸이 한 말이라고 떠들어대는거다.

자기가 겪은 삶의 고통을 남에게 대입해서 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입하고 싶어하는 꼰대새끼들이 이순신의 이름을 팔아다가 만들어낸 창조적 개소리일 뿐이다.

이순신이 저 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순신을 은근슬쩍 꼰대질이나 하고 다닐 옹졸한 인간으로 생각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쓰시마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가 이순신을 존경한다느니 했다는 카더라가 있으나 ㅈ도 근거가 없는 국뽕용 인터넷 구라다.

ㄴ 출처가 국뽕은 아니고, 오히려 일제시대 관장사에서 파생된 거다. 개색희들이 남의 나라 장군을 한일합방했다고 자기네 제독으로 족보세탁 시도.

호칭[편집]

이순신 장군이라는 호칭이 제일 많이 쓰이는데, 해군 장성이였으므로 이순신 제독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근데 어차피 '이순신 장군'이든 '이순신 제독'이든 조선시대에는 이분보고 그런식으로 안불렀고 당시 이순신은 정2품 상계 정헌대부라, 대감이라고 불러야 했다. 따라서 정식 호칭은 통제사 대감 또는 통상대감이었고, 백성들은 통제사또, 같은 급의 동료들은 영공 같은 식으로 불렀다. 그러니까 그냥 자기 꼴리는데로 부르고, 남이 부르는거에 제발 정색빨지 말자.

대신 배박이들이 테토쿠라고 부르면 그냥 죽여버려도 된다. 갓충무공께서 배박이들의 행태를 보신다면 당장 거북선으로 대가리를 날려버리려고 들 것이 분명하니 테토쿠 지랄을 듣는다면 당장 장군님의 뜻을 이어받아 배박이새끼들 대가리를 날려버리도록 하자.

┗테토쿠가 무슨 뜻인데? (진짜 몰라서 묻는 거임)
ㄴ '제독'을 일본말로 부르는 거. 만날 배박이질하면서 "테토쿠, 야라레마시타"(제독, 당해버렸습니다) 이따구 대사나 외우다 보니 역센징 사촌들이 다 되더만.

시호가 충무라서 충무공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근데 이분 인지도가 너무 넘사벽이라 다른 충무공들(김시민 등등등등)이 충무 시호 받은거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정도로 사기캐릭터. 당장 한국사에서 충무란 시호를 받은 분이 이분 포함 9명이다. 근데 이분이 최강. 참고로 중국에 제갈량도 시호가 충무이다. 게다가 죽은 나이도 이충무공과 같은 54세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한국에서 성웅이라는 말은 오직 이분에게만 허락되어있다.

기타[편집]

원래 이순신은 문과로 가려고 했지만 장인이었던 방진의 설득으로 무과로 전과한다. 활쏘기는 평균은 하는데 다른 뛰어난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못한다는 인식이 박힌 적이 있었다. 오해하면 안되는게 이순신 장군이 합격한 식년무과는 정시로 열리는 시험으로 전국에서 딱 28명만 뽑는 정식 무과 시험이다. 특채가 아닌 정식으로 무과시험을 합격했다는거 자체가 이미 무예 실력은 검증된 셈인 거다. 게다가 당시 합격한 사람들 태반이 현역 군인들인 것을 감안하자

백원짜리 앞면을 보면 이분이 계신다. 근데 처음엔 지폐였다가 동전이 되면서 작게 표현되거나 갑옷이 없어 구분하기 어렵기도 하다.

이분이 없었다면 우리는 수백 년 전부터 이걸 쓰고 있었겠지.

때문에 씹쓰레기 파오후 일뽕 역갤러 병신들이 싫어하는 분이기도 하다.

당시 대빵이 선좆이 아니라 세종대왕님이었으면 오는 병력 다 털어먹고 역러시가서 일본 땅에 제대로 알박아놨을것 같다.

명량과 같은 영화를 본 후에 "아무리 이순신이지만 무슨 대장선 한 척으로 떼로 몰려오는 적군을 막냐? 과장이 심하다"는 관객의 평이 있기도 한데, 실제 명량해전에서 전투 중반까지 대장선 혼자 무쌍난무를 펼친건 엄연히 사료에 기록된 사실이다. (다만, 영화에서 나온 백병전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는 일본군의 주력 세키부네와 그보다 높이가 훨씬 높은 판옥선이 공성전 개념으로 싸운 것으로 알려진다.)

사학자들이 아무리 팩트를 말해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뻥치시네' 한다. 하긴 오전 내내 역류받으며 대장선 한척으로 그 많은 적을 막고 있었다는데 어느 일반인이 믿겠나..;;;

ㄴ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명량 해전 당시 물살이 전투 초반에는 왜놈들한테 버프주는 상황(조선군에겐 역류)이었다가 서서히 바뀌었다는데, 이거하고 마다시 모가지 딸 때 전투 양상을 조합하면 농성전도 아니고 초반에 혼자 광하다가 안위하고 김응함이 가세해서 1법사 - 2탱커 조합으로 3인 공대 레이드 뛴 게 된다. 진짜 무슨 치트 돌리신 거 아닐까...

영화에서 하향해서 표현됐다 사료에는 사상자가 2명이라고 적혀있는데 영화에서는 백병전을 벌여서 아무리 봐도 수십 명 단위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쯤되면 정사대로 영화를 만들었다간 수백 척을 상대로 싸우는데 한 척에서 사상자가 2명 나오는 판타지 영화 취급을 당할지도 모르기에 일부러 하향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보통은 전쟁이나 역사영화가 과장하여 표현하는 프로파간다 적인 면이 있는 것에 비하면 심하게 너프 먹었다.[53] 그런데 이걸 실제 기록대로 했다간 안 그래도 OP 중에서도 넘사벽이신 위대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판타지"라며 달려들 급식충들을 고려해 안타깝게 너프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정도로 극단적으로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고 판타지 수준의 승리를 보인 인물.

애국심이 충만한 우리 어린이 여러분들은 이분의 노고를 잊지말고 하루 3번씩 장군님의 사진앞에 오체투지하고 머리를 땅에 박는 예의를 보이자.

문명5에서 위인중 하나인 위대한 제독으로 나온다. 이름뿐이지만 자랑스러울 것이다. 근데 조선으로 플레이하면 이순신잘안뜸 ㄴ헬조선에서 또 태어나라고?

문명 6에서도 나오신다. 효과는 위인 사용시 철갑선(거북선 영향인듯)을 꽁자로 준다.

전쟁중에 난중일기를 작성하셨다.

역시 이순신님이 작성하신거답게 국보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이순신장군님의 두 개 검에는 글이새겨져있는데 이것이 검명이다. 일본인들이 보면 히이익하며 요괴라고 생각할 정도.

- 삼척서천 산하동색 三尺誓天 山河動色

- 일휘소탕 혈염산하 一揮掃蕩 血染山河

- 석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산과 강의 색이 변하리로다.

-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산하가 피로 물 들으리오다.

웃긴건 이 칼에 빨간색 칠이 칠해져 있는데 보기엔 좆간지이지만 알고보니 현대에 누가 몰래 페인트로 칠해 놓은 것이었다. 지우기로 결정함


鑄得雙龍劍 千秋氣尙雄

盟山誓海意 忠憤古今同

쌍룡검을 만드니 천추에 기상이 웅장하도다.

산과 바다에 맹세한 뜻이 있으니 충성스런 의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도다.

쌍룡검에 써져 있다. 쌍룡검은 이순신 도검이다.

참고로 쌍룡검 없어진지 100년이 넘었다.

창작물에서 나올 법한 기상과 패기를 현실에서 이루는 분이다. 파오후들도 존경해야 한다.


참고로 이 사람은 덕수 이씨인데 이분 때문에 덕수이씨 중에 충무공 직계인 충무공파 남자들은 재능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무과에 지원하는 전통적인 군인 가문이 되었다.

이분의 후손으로 이봉상이라는 분도 있는데 이분도 군인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했다가 충청도 병마사 시절 이인좌의 난때 포로로 잡힌 후 이인좌가 난에 합류 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하자 살해당했다.

조선은 이순신 장군님 한명이 없었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이 불가할 정도로 평화를 사랑한 민족이었다. 육지에도 네임드 장군님들이 계셨지만 일본군 보급선이 안 끊겼다면 어땠을까? 조선은 평화를 너무 사랑해서 훗날 오랑캐 병신이라고 깔보던 야만인이 침공했을때 힘도 못쓰고 땅바닥에 머리를 쾅쾅쾅하며 또 털리는 굴욕을 격는다. 이때는 장군님같은 인재가 없었다. 하늘에서 실력은 좆도 없는 조선이 씹사기캐로 두번 해먹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나보다.

승경도라는 조선판 부루마블을 즐겨하셨다. 난중일기에도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은 날에 이 놀이를 장교들과 함께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나도 순신갑이랑 부루마블 하고싶다.

또한 서울에 있는 충무로도 다들 너무 잘 알겠지만 이분으로부터 유래됐다. 일제강점기에 그쪽이 일본인 집거지였는데 해방되고 나서 다시는 쪽바리새끼들 발붙이지 말라고 충무로라 이름붙였다 한다.

이순신을 보면 왜 한국인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잘 하는지 알 수 있다. 이순신은 왕은 도망가고 통치 체계 자체가 무너진 상황에서 식량을 보급하고 자원을 모아 배를 건조하였고 군사를 단련하였다. 국정 운영 능력이 한반도 반만년 역사 이래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사람과 핏줄을 공유하는 민족이 아무리 못해도 평균 이상은 가는게 당연하다.

한국인들 중에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전략/전술 능력 면에서 특출난 인재들이 유난히 많다. 당장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전쟁 영웅에 행정 오류로 메달 오브 아너를 못 받은 대신 2계급 특진을 받은 김영옥 대령만 봐도... 반만년 내내 외세로 인해 혼란스러워서 그런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난관을 헤쳐나가는 능력만 반만년동안 진화한 것 같다.

이 보다 더 먼 옛날 대월의 명장인 진흥도 장군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조선군은 완전히 이순신 장군님으로 시작해서 이순신 장군님으로 끝나네 ㅋㅋㅋㅋㅋ 해전도 장군님 혼자서 트랜디하게 바꾼거고 그뒤로 내가 아는 배나오는 사건은 신미양요, 병인양요, 운요호 사건인데 셋다 방어진지가 공격측 포격에 ★폭발☆ 심지어 병인양요는 불란서군이 한강따라 기어 올라오는데도 대책 없었고 이렇게 보면 임란때 조선 수군이 강력했던게 아니라 장군님 혼자서 거지같은 개병신 군대 멱살잡고 하드캐리 ㅋㅋㅋㅋ 원균이 씹트롤 한것도 있었던 것 같긴한데 원균말고 다른 평범한 장수가 지휘했었도 일본군한테 무난하게 털리지 않았을까 싶다. 보면 장군님 밑 다른 장수들도 이순신 장군님이 존나 갈궈서 끌고 나온것 같고

ㄴ왜란 당시 조선수군이 개판이었던건 맞다. 사실 조선수군은 화물선 크루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긴 했다. 다만 왜구 때문에 기본적인 전투경험은 있는 부대였고, 당시 지휘관들도 능력있었다. 이억기(이분은 왕 종친), 정걸(정유년에 팔십 노구로 한산도 진영에 계셨다;;), 무의 이순신, 정운, 이운룡, 이언량, 어영담, 김완(난중일기 기록과 드라마 영향으로 겁나 게을렀다고 생각들 하지만 이분도 대단한 분이다. 칠천량 생존자이심;), 안위(거제 현령이었다가 명량대첩이후 파직된 김억추를 이어 전라우수사가 된다. 전후 파직됨.), 송여종 등등... (후일에 이운룡은 통제사를 했고 안위는 병자호란 때 70 노구로 전장으로 간다....만 가는 사이 인줘가 머리 3회 쿵쿵쿵...;;) 다만 동시대의 지휘관 중 1ㅅ이 이순신이라 떨어져 보이는 거다. 이순신의 특출함은 이들을 재훈련시키고 적합한 일을 맡겨 수군 조직력과 전투력을 최강으로 이끌어 낸 점에 있다.

그리고 조선은 양요사건 이전엔 수군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호란 당시 강화도가 홀랑 먹힌 때엔 인줘 라는 최강개똘 때문에 육해공(공???은 아니고 암튼;;) 의 병력이 다 약해졌던 거다. 왜란과 각종 양요사건간에 이백년 이상의 갭이 있고 그 사이 서양제국주의가 미쳐서 오만 무기개발에 군사력 특히 해군력 발전이 비약적이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그 이백년 사이 조선이 쒯한건 사실이긴 하다. 문제는 그 쒯도 경신대기근이라는, 전무후무한 자연재해 즉 소빙하기 때문에 그랬다는 정도... 뭐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전후 복구 중인데 소빙하기가 덮치니 이건 뭐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명이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국제정치도 복잡했다. (대비되는건 이때 청나라는 강희제라는 먼치킨이 소빙하기고 나발이고 다 모르겠고 중국통일... 중국 세제를 개편해서 최대 세수를 징수하더니만.... 아들마저 옹정제라는 먼치킨이라 그거 계속 유지하다 못해 더 걷음... OTL)

구글 이순신 검색결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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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이게 지금 뭐하는거야.jpeg
성웅모독.jpg

이순신 장군니뮤가 안나오고 웬 듣보잡 드라마가 나온다

드라마 이름 지은새끼 부끄러운 줄 알아라.

ㄴ 니새끼가 잘못친거다 븅신아, YI SUN SHIN 이다 어휴 빡대가리새끼

ㄴ YI 'SOON' SHIN 은 어떤 양키 만화가가 이순신 주인공으로 만든 만화 이름이지 공식적인 이순신의 영어이름이 아니다 븅신아.

ㄴ 그 만화 나오기 전부터 YI를 사용했다.

글고 넌 이순신을 이썬신이라 부르니?

이씨들이 자기 영어 이름을 Lee라고 하기 시작한건 이승만이 지 이름을 미국인 마냥 Lee라고 하기 시작하면서 그랬다. 그 전 인물들은 보통 Yi로 쓰는게 맞다.

ㄴ Lee는 중국 성 이씨를 그렇게 써서 따라 쓰는 거고 이승만은 본인 성을 Rhee라고 썼다. 이순신은 Yi로 쓰는 게 일반적.

┗ Admiral Yi라고 쳐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온다. 참고로 영문 위키피디아는 Yi Sun-sin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ㄴ 딴지 하나 걸자면 중국인의 성시 이(李)를 쓸 때는 예외 1도 없이 무조건 Li로 쓴다.

이순신을 소재로 한 작품[편집]

<칼의 노래>- 이순신의 1인칭 시점으로 글을 써 내려간 작품인데 문학적인 면에서는 감탄스러울 정도이지만 간간히 고증 오류가 보인다('옥수수'가 나온다던가...). 사실 고증오류 겁나 나온다. 김훈 쯤 되는 작가가 왜 이랬나 일부러 이랬나 싶을 정도다. 좀만 더 나갔으면 시뻘건 매운탕도 등장했을듯....(여기까진 안갔지만...;;; 암튼 겁나 많이 나와서 읽다보면 턱턱 걸린다. 1인칭 시점소설 특히 칼의노래는 엄청 잘 쓴 1인칭이기 때문에 완전 몰두하게 되다가 이놈의 고증오류 때문에 툭 끊긴다;;;)

<천군>-남북한 군인이랑 과학자 한명이 혜성하나때문에 이순신이 쩌리시절로 있던 곳으로 시간이동하는 이야기. 마동석의 데뷔작이다.

<명량>-조선 수군이 전부 먼치킨화 되어서 일본군을 백병전으로 참교육을 시켜준 영화다. 영화 자체도 그리 나쁘진 않지만 개봉 시기도 좋아 대박쳤다.

<불멸의 이순신>-아재들한텐 옛날 '조선왕조 오백년' 시절 故 김무생 씨 이순신과 비교도 당했지만 김명민의 미친듯한 열연과 시원시원한 해전씬만으로도 값어치를 하는 드라마다. 문젠 원작불멸의 원균맹장론이나 이순신가문 역적론같은 잘못된부분을 따라하는 바람에 김명민의 열연이 오히려 이를 감추는 독약으로 취급.

<이순신의 나라>-'이순신이 노량에서 안 죽었다면' 하고 가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가상소설. 선좆하고 조선 왕족 새기들 관광당하는 건 좋은데 소설이 좀 밋밋함. 그리고 가장 좆같은 게, 정원군하고 이종 새끼가 살아남음. 씨발... 제일 중요한 의의는 두번쨰로 유명수군도독이 가지는 의미를 전달함.

<격류> - 이순신 관련 소설이면 이것도 들어가야지. 명량해전 때를 다룬 소설. 근데 김경진이 자기 소설 <임진왜란>의 한 파트로 통복사 해서 흡수시켜버림.

<임진왜란>(이순신) - 임진왜란 전반을 다루어, 주인공이 아니라지만, 사실상 전면전 자체에 대한 이해 능력이 탁월한 인물이 누구였는가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유명수군도독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첫 작품이다.

<Yi Soon Shin: Warrior and Defender> - 미국 만화가가 그린 이순신 만화. 미제라서 그런지 그 동네 히어로물 삘이 난다. 헬조선엔 2권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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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여기서 왜 싸워 병신들아. 니들 싸움 흔적을 위키에 왜 남기는 거냐구 좆노잼인데

마지막으로[편집]

do.jpg 해라.
하라고 할 때, 할 수 있을 때 해라.

지금당장 모니터 앞에서 이순신장군님을 향해 절해라, 지금. 당장. 해라


매일 한다. 폰 배경으로 충무공 초상화를 깔아놔서 뵐때마다 절한다. 이런 남자를 기록으로라도 만나뵈어 감사한다.

각주

  1. 양력으로는 4월 28일
  2. 양력으로 12월 16일
  3. 여해는《서경》에서 따온 말로, "오직 너(汝)라야 세상이 화평케(諧) 되리라"란 뜻이다. 과연 갓갓갓에게 어울리는 자라고 할 수 있다.
  4. 13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5. 울돌목에서 부하들을 스파르타 300도 짜질 천하무적 정예병사로 만든 대사다. 누가 "정작 장군님은 죽도록 싸우다 죽었다" 개드립을 쳤는데, 누가 들으면 장군님이 명량에서 전사하신 줄 알겠다?
  6. 유신시대 이순신 성웅화 프로젝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용어로, 성인영웅을 합쳐서 만든 말. 즉 영웅의 최고등급. 이순신 제독 이외에는, 한국인이 다른 영웅보고 성웅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그냥 성웅이라는 말 자체가 이순신 제독 전용 칭호라고 보면 된다.
  7. 지금으로 따지면 해군참모총장인 동시에 미해군 원수...
  8. 부산왜영방화사건을 다룬 장계가 군왕을 기망한 거짓장계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이 장계건은 실록을 보면 선조가 결국 장계가 사실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9. 그중 권율의 경우는 골드를 넘어 다이아1~2급이다. 행주대첩에서 포탑과 억제기 타워까지 다 밀어버리는 수준으로 하드캐리하여 이에 쫄아버린 좆본이 GG치고 철수하는 등 위엄을 떨쳤으나 개전 초기부터 다이아는 아니었고 실버에서 성장한 것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권율 뿐만 아니라 육해를 안가리고 싸운 백전노장 최호, 젊고 비전넘치던 장수 이억기 또한 여러 해전을 겪고 성장하면서 충분히 골드를 넘어 마스터급까지 될 수도 있는 재목이었지만 고의트롤러 새끼의 트롤짓에 휘말려 칠천량에서 희생되었다.
  10. 드라마나 영화에선 일본군이 병신같이 나오지만 이들이 절대 병신일수가 없다. 인구수부터가 차원이 달랐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전쟁을 통해 전투감각을 익히고 뛰어난 인재들이 전략을 세우고 전쟁에 나섰다. 명량만 해도 그들이 밀물과 썰물시간을 정확하게 재고 유리한 시간에 들어왔고 그들의 전략역시 백병전에 강하므로 기동성이 높은 배를 통해 달라붙는, 당시로서는 당연한 전략이었다. 다만 적이 우리의 치트공이었다는게 문제지.
  11. 일본은 배의 수량은 많았지만 개개의 전투력은 판옥선보다 딸리므로 풀템으로 보기에는 뭐하다. 대신 수군간 병력격차까지 다합치면 5:1을 넘어 헥사킬모드의 6:1 그 이상까지 간다. 특히 속도가 빨랐기에 드래곤은 바람으로 표현.
  12. 500여년 전에 이미 적군으로 가장한 대항군을 따로 창설해 부대장에게 직접 임명장까지 주었으며 이를 통해 실전과 같은 훈련을 했다, 현대 한국군이 KCTC 만든게 2000년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로선 엄청나게 선진적인 훈련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13. 통제사 승점 자판기. 첫 패배는 옥포에서 노략질하다가 걸려서 된통 깨지는게 시작이다. 근데 이 사람 행적을보면 싸움꾼 사무라이보다는, 행정관료, 요즘으로 치면 도시기획가에 가깝다
  14. 시즈가타케의 칠본창이라는, 창들고 앞서나간 7명으로 손꼽히면서, 용인 전투에서 수천으로 수만을 무찔렀다는 명성을 얻고 남해로 내려가고는 한산도에서 와장창 개박살난다. 하사받은 영지에 해적들이 있어서 그런거지 전문적인 해전 지휘관은 아니다.
  15. 이놈은 이름이 아예 아홉 귀신이란 뜻이다. 어쩌다가 대장군전을 득템한 이후 그걸 잘챙겨서 도주했다(...)
  16. 이런 문제로 이순신을 깐다는 럿이 겁나 멍청한 소린게, 당시 일본군의 전략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상유십이 장계에서 왜군이 서해를 통해 한양까지 범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고 했었다. 적의 의중을 전혀 알수 없을 경우 최악을 설정해 이에 대비하는 것은 군인으로서 기본중의 기본이다.
  17. 말아먹기도 이정도면 예술의 경지다
  18. 당시 전라방면으로는 왕에 버금갔을 것이다. 군대의 보전과 훈련, 보급은 그렇다손 쳐도, 전라좌수영에 물자가 좀 있다는 소린 어디서 들었는지 망할 조정은 종이 좀 보내라고 공문까지 보냈고, 이 종이를 받는다.(제정신이 맞나 싶다. 더 심각한 건 이 종이 이외에도 각종 물자들이 후방의 조정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순신이 부리는 군대가 나가는 족족 이기니 아예 피난을 좌수영으로 오는 백성들이 늘어나 이들을 무인도에 들여보내 둔전을 개간하고 이를 총지휘했다. 난중일기에는 피난민이 살 무인도를 물색했던 기록과 이후 이곳의 둔전에 무씨를 심었고 이것을 감독할 이를 정해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이쯤되면 왕, 즉 선줘가 무서워할만 하다. 아니 무서워 할 수 밖에 없는것이다. 통제사를 중심으로 뭉친다면 나라 하나 만드는건 순식간이었으니까.
  19. 물론 그 윗대가리, 즉 선조가 처음부터 이랬던건 아니다. 전쟁준비를 위해 사상 초유의 속도로 이순신을 승진시켜 좌수사로 앉힌 것도 그다. 그러나 전란이 너무 길어지고 요동망명 쇼, 광해의 분전, 이몽학의 난 등등 왕좌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본인 왕좌 사수에 미쳐버린 이후 가토기요마사가 바다를 건넌다는 첩보(말이 첩보고 선조 스스로도 알았을 듯한 교란용 정보)가 입수되자 이순신을 시험해본다. 부산앞바다를 막아서 가토의 대가리를 짤라 오라고 한건데...이순신은 여러 사정상 늦게 출정하게 된다. 일부러 미루었을 수도 있다. 명령 자체가 교란용 정보에 의했음을 알았고 또 그 시기 몇날 며칠을 물 위에 떠서 적만 기다리는건 똥멍청이 짓이기 때문이다. 가토가 이미 조선에 상륙했다는 보고가 날아오자 선조는 완전 미쳐 날뛰게 된다. 이 의심병 환자가 이순신을 의심하게 되자마자 본인 인생의 최강병크를 저지르고 만다. '한산의 장수는 뭘 하고 있냐???" 라며 대놓고 까고, 심지어는 "이제 가등청정의 목을 따가지고 와도 용서가 안된다. 레알 역적임. 꼭 쥑일그야!!!"라며 펄펄 뛴다. 잡아오라고 금부도사를 보낼때는 이순신이 무인이라 반항할 것을 염려해서 전투가 없을때 잘 해서 잡아오라는 말까지 한다. 이쯤되면 거의 병이다.(임진년에 이순신에게 내린 각종 명령들에서는 '나가 싸우긴 싸워도 전장 상황에 맞게 스스로 잘 판단하고 너무 명령에 좌우되지 마삼' 이라고 했었다. 근데 뭐 정유년엔 알짤없었다 카더라.
  20. 사실 모르지는 않았지만 민심을 달래기 위한 교유서이다 보니 립서비스 한거라고 보면 된다. 대규모 토목사업은 백성들에게 원성사기 딱 좋고 나아가 왕권마저 실추되는 일이었지만 전쟁준비상 무리하게 강행했다. 특히 경상 방면에서는 대규모 축성공사에 유생까지 동원하여 진행해왔으며, 유생들은 원래 축성공사 같은 역에 동원되지 않는 이들인데 지역의 여론을 형성하는 지위에 있다보니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실제 전란이 일어난 후 영남관찰사이던 김수가 도망했다고 해서 지탄을 받고 유명한 의병장인 곽재우의 경우 상소를 올려 '김수의 죄는 머리털을 뽑으며 세어도 모자란다'며 극악하게 까다 못해 직접 잡아죽이겠다고 난리친 일이 있을 정도이다. 이같은 지방 여론때문에 도저히 함께 싸우지 못할 상태가 됐을 수도 있다.(그럼에도불구하고 도망간건 정말 잘못한 일이 맞다.)
  21. 그러나 급한 전쟁준비도 그렇지만 선조의 이미지 실추는 이 외의 일들도 있다. 이 인간은 의주로 튄걸로도 모자라 사직이라 일컫는 종묘의 신주는 아들인 광해에게 맡기고 조정도 반갈라서 나눠준 후 알아서 하라고 해놓곤 정작 본인은 요동으로 망명가겠다며 징징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강을 건널 기세로 혈안이 되자 정철과 류성룡은 '왕이야 강 건너갈거 같고, 가고나면 연락이 안되니깐 걍 광해한테 왕 물려주라고 할까??'라고 의논하고 윤두수 횽아는 '너 거기가면 걍 동네아저씨 돼'라고 막말까지 퍼붓기에 이른다. 여담으로 미친듯이 개성으로 갔다가, 완전 미쳐서 평양까지 가서 4일 후 한다는 소리가 '어선을 풍족하게 하라'반찬투정였다....

    조선왕이 망명오겠다는 공문을 받은 명나라는 이뭐병 싶기도 하고 막상 대놓고 오지말라고는 못하겠고... 결정적으로는 조선에 왜놈들이 쳐들어왔다고 보고가 올라가자마자 곧바로 조선왕이 망명하겠다고 하니까(이건 미친듯한 왜군의 진군속도도 한몫했다. 개전 후 평양성 털리기까지 불과 며칠 안걸렸다. 부산 상륙해서 죽자사자 걷기만 해도 힘든데 탄금대를 비롯한 육상전투까지 병행해서 온 속도다;;;) 예전 소문대로 '이 쉐들이 진짜 왜놈들이랑 짜고 쳐들어 올 모양임???'하고 의심을 풀지 않았다. 하니 '정 오고싶음 오는데 수행원은 백명만 데려오셈^^'이라고 답을 보내고, 배도 전부 자기쪽 나루에다 묶어두어서 헤엄이라도 쳐서 올래?? 식으로 대응했다. 왕은 사냥한번만나가도 수행원이 이삼천은 된다;;; 결국 명나라도 못 오게 막은거다. 이러다보니 임란 후반부로 갈수록 왕의 권위가 땅바닥서 굴러다녔다 카더라.... 신하들이 '광해에게 선위하심이 어떠심??'하고 갈궈도 보통때 같음 역모라고 난리칠 일임에도 그 말 한 신하들을 처벌도 못했다니 말다했음;;;

  22. 사이가 좋았다기보다 충무공과 권율은 서로 예를 갖추고 공무에 최선을 다 하는 사이였다. 난중일기상 군인 징발 문제로 충무공께서 권율을 까는 기록이 있다.
  23. 전란중의 공무원으로서 개인적인 군공만 탐하지 않고 서로 최선을 다 했기에 이런 장면도 나올 수 있는거다. 원균 시키는 명나라에서 보낸 1,000정이 넘는 화약무기를 혼자 사용하겠다고 난리를 치는지라, 뭐 저런 새끼랑 큰일을 같이 하겠냐며 충무공께서 한탄하신 바 있다.
  24. 이후의 정황들이 흠좀무하다. 난중일기를 토대로 하면, 충무공께선 명량 승전 후인 정유년 10월에 접어들어 아산 습격을 인지했고 14일에 아들 면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아들이 죽고 부친으로서 미칠것같은 상황(게다가 정유년 초엔 본인이 서울로 압송당해 고문당하고 불과 얼마 후인 4월 10일 전후로 모친인 변씨부인마저 사망하신 상태였다.)인 11월 중순에 명량승첩에 대한 조정의 군공기를 읽게 되는데 부하인 안위가 통정대부로 본인과 동급에 가자됨을 알게 된다. 충무공께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일인지 그냥 그랬다고만 적으셨지만 일반인이라면 피꺼솟...(더 대단한건 이래도 임금 욕 한 줄을 안 쓰셨다;;;; 그노무 임금시키땜에, 혈육들이 사망했음에도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상복도 못 입는 상황에 내몰렸는데도;;)공교롭게도 군공기를 읽은 다음 날 면사첩을 수령했다고 기록하고 계셔서 떡밥중 하나가 되기도 하지만 면사첩은 '칼의노래'에서 증폭된 대표적 떡밥.
  25. 구차한 쉴드 하나 치자면...이연이나 비변사 당상들이나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 그랬다. 전선 열두척뿐인데 제아무리 이순신인들 뭘 우짤라고 이랬던거다. 말그대로 데우나 엑스 마키나인걸 몰라서 그랬다카더라.....
  26. 이 내용이 바로 그 유명한 상유십이 장계의 주 내용이다. 하도 열두척이 유명해서 열두척으로 잘해볼게염 이라고만 했다고 생각하지만, 장계 전체의 맥락상 '서해를 눌러 막아야 한강침탈도 막을수 있으니 열두척으로 전멸하더라도 막아보겠음.' 정도로 읽는게 맞다. 뼛속까지 유학자이셨던 충무공이시다보니 암만 엿같은 왕이어도 최우선으로 지켜야했다.그래서 열두척이나마.... 하고 고집피우신거다. 말그대로 여기서 죽겠음.
  27. 완전 빡치신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미천한 신' 이란 말은 워낙 자주 쓰이는 관용구일 뿐이고, '잘난 내가 살아있으니까 함부로 못올거요'라는, 약간은 거만해보일 수도 있는 말을 왕에게 직접적으로 하신 것이니...;; 하지만 평소 인품상 그러실 분이 아니긴 해서 '그냥 죽을때까지 막아 볼테니 그동안 도망이라도 잘 가시쇼' 정도로 읽는게 나을듯;;;
  28. 이래놓고 본인은 중국으로 망명가겠다고 찌질거려서 왕으로서의 체통따윈 똥딲은 휴지쪼가리가 되었다. 그나마 왕실의 명예를 지킨 이가 스무살도 안된 광해이고 그외 장성한 아들 3놈은 싸이코패스다. 임해군/순화군 두놈은 전란중에도 하도 개막장 짓거릴 해대서 백성들이 일본군에 그냥 넘겨버리는 사태까지 겪다보니, 광해 저놈도 내 아들인데 다른 아들놈들과 달리 왜저리 잘났는지 몰라서 의심했다 카더라....
  29. 사실 세종도 황희에게 이런 적이 있다. 황희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어사육을 내렸다. 그런데 상황이 매우 다른게, 황희는 고령으로 사직상소를 주기적으로 올렸지만 결국 윤허가 안되었다. 모친사망시에도 고령이라 세종은 진심으로 황희의 건강이 염려되어 죽어버려서 일 못시킬까 봐... 고기를 내린 거였다. (결국 황희는 본인 나이 팔순이 넘어 조선초기에 팔순이면....왕도 그 나이까지 못살았다;; 초 장수만세하신 황희님 세종이 죽은 다음 해에 겨우겨우 사직할 수 있었고 바로 사망.... #유정현# 과로사 수준임;;;) 그런데 충무공께서는 불과 몇달 전에 본인을 파직시키고 죽여버리겠다고 고문하고 앙앙댔던 왕이, 싸움 한번 이기니까 특별히 챙겨준다며 모친상중인 충무공께 고기를 내렸다. 말그대로 이 뭐 병.... 놀리냐??? 세종대왕과 이연은 이리 다르다...
  30. 게다가 충무공 모친이 돌아가신 상황이 매우 공교롭다. 모친이신 초계 변씨 부인은 당시 굉장히 고령이시긴 하셨다. 그런데 아들 형제 중 요절한 2명을 대신해 셋째아들인 순신이 어머님을 가까이서 모시려 하다보니 여수 모처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들이 서울로 압송되고 더 이상 여수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아산의 본가로 가기위해 배를 타고 오시다가 안흥량 쯤에 내려 사망하신걸로 보인다. 충무공께선 모친의 임종을 못 지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떤 놈 때문이다;; 여담으로 변씨부인께선 본인이 사용할 관곽을 배에 싣고 오셨다. 워낙 고령이고 병중이라 오래 살지 못하실 것은 아셨겠지만 관을 싣고 오시다니 예감이 있으셨던 듯.
  31. 실제로 이순신 장군도 난중일기에 승리한것은 하늘이 내린 행운이라 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전투였다
  32. 난중일기에 따르면 비변사에서 공문이 내려와 '종이'를 보내라고 했다 한다. 충무공께선 종이를 보내긴 하는데 짊어지고 갈 사람이 너무 힘들겠어서 우선 이것만 보내야겠다고 기록하신 바 있다. 전쟁 전반을 지휘해야 할 비변사라는 최고 기관이 가장 후방에 앉아서, 최전방 야전의 장군에게 기껏 한다는 소리가 '종이 좀 보내라'인건 코메디인데, 종이를 보내며 지고가는 사람이 너무 무겁겠다며 걱정한 충무공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참 웃프다.(이 망할 비변사 새끼들, 즉 당시 조선 조정은 충무공껜 쌀 한 톨 지원안해 준건 충격과 공포라 할만 하다. 그래놓곤 원균한테는....암튼 비변사는 맨날 뭐 좀 보내달라고 했다. 실록에도 선조가 '전라도에서 온 종이'를 육군에 나눠주고 종이옷-비옷 정도로 쓰이는 지의를 말함-을 만들어 입히라 한 기록이 있는데 충무공이 보낸 종이인지는 불분명하나 아마 맞을 것이다.) 충무공도 장계에서 '조선이 그나마 폼이나마 나라랍시고 유지하고 있는건 전라도가 아직 갠츈해서 글코요, 이건 오로지 수군의 힘임요'라고 쓰신 바 있다. 그리고 뭐 하나 좀 보내달라고 요청하신 일이 없고 다만 수영에 이질이 돌아 수군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자 '의사 좀 파견해 주세요' 라고 요청한 것이 다다. 조선수군은 전투에서의 사망보다 굶어죽은 아사와 이질로 인한 병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피난을 좌수영으로 오는 백성들이 늘어서 '무인도 하나에 피난민을 정착시켜서 농사짓게하고 군량도 걷으면 어떨까요?'하고 장계하기도 하셨는데, 그 전란중에, 그 당연한 일까지 임금의 허락을 구하는 모습을 보면 충무공은 진정 유자(儒者)셨다.

  33. 이런 논리로 충무공을 까는 아이들에겐 손자병법을 읽어보길 권한다. 충무공을 까려면 사실 기본적인 밀리터리 지식은 있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수 없는 분임을 명심해라. 까려고 공부하다가 오히려 충무공 동상만 봐도 절하는 놈이 생겼다 카더라...
  34. 이억기나 무의공(이분도 이름이 이순신;; 당연히 한자는 다르다) 같은 당대의 수군장수들은 뛰어난 지휘관이었지만 동료 중 하나가 God이시니 어쩔 수 없이 좀 급이 떨어져 보인다;;; 매우 안타까운 일.
  35. 글고 민중사관 님들아... 난중일기 좀 처음부터 끝까지 꼭꼭 열번이상 씹어가며 정독 한 후에 그런 소릴 해라. 그 시절에 그래도 양반인 충무공이 개인적으로 일기를 쓰면서 본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던 노비며 천민들의 이름은 죄다 기록하셨다. 말그대로 일기에, 남 보여주려고 쓴 글도 아닌데 말이다. 다른 양반님네 기록들에 이런 천민들 이름 간혹가다 나오기야 하겠지.. 근데 그건 일기가 아니고 그냥 후대에 남기려고, 말그대로 남 보라고 쓴 글이기 때문에 난중일기랑은 차원이 다르다. 어찌보면 충무공이 민중사관의 원형인 분이다. 함께 고생한 민중들 안잊으려고 일기에 적으신 거란 말이다. 그런걸로 충무공 까려면 먼저 난중일기부터 읽고 공부좀 해라. 겁나 빡친다.
  36. 게을러서 아마 구를때 정말 힘드셨을거라고 생각되는 분이다. 그러나 김완장군은 그때 구르는 바람에 칠천량에서도 살아남아 포로로 잡혀갔다가 탈출까지 해서 돌아왔다. 그래서 해소실기 같은 저서를 통해 칠천량 해전에서 대장균의 활약이 어떠했는지를 절절히 남겨주셨다.
  37. 훈련원 봉사가 되었을 때 병조판서 김귀영이 첩의 딸을 소실로 보내려 하자
  38. 훈련원 봉사로 근무할 때 병부낭중(서익)의 불공정한 인사 조치를 보고
  39. 수군을 폐지하고 육전에 전력하자는 조정 여론에 맞서며
  40. 첫 출동을 앞두고 결의를 불태우며
  41. 연승으로 인한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42. 전투에 임하는 장졸들에게 전공만 좇지 말고 조선인 포로들의 신변보호에도 각별히 신경써줄 것을 당부하며
  43. 압송되어 하옥되었을 때, 감옥 담당 관리가 조카(분)에게 ‘뇌물을 바치면 죄를 면할 수 있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44.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45. 감옥에서 나와 백의종군 길에 올랐을 때 어머니 부음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46. (백의종군 종착지로 떠나야 했기에)어머니 빈소를 떠나며.. 빈소도 오래 있어주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는 말이다. ㅠㅠ
  47. 명량해전을 앞두고
  48. 명량해전 때 두려워 떠는 군사들을 타이르며
  49. 결전(노량해전)을 앞두고 하늘에 기원하며
  50. 적의 총탄에 맞아 치명상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 남긴 마지막 명령
  51.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1921) 알렉산더 발라드
  52. http://www.badassoftheweek.com/admiralyi.html
  53. 이순신은 사극이나 소설에 등장하면 이런식으로 하향먹는 경우가 많다. 실제 역사 그대로 나왔으면 십중팔구, 평면적 캐릭터가 주연먹는 노잼 작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균은 평면적인 노잼 악역이 안되기 위해서 어느정도 버프를 먹여주는 경우가 있다. 즉 충무공은 픽션보다 더 픽션같은 평면적 사기 캐릭터이고, 원균은 픽션보다 더 픽션같은 평면적 좆병신이다.